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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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들과 함께 영어를' 시리즈는 정말 오랜만이죠?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 하면 영어와 관련되어 특별히 말씀드릴 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승호는 여전히 영어 동화책 읽는 것을 싫어하고 있고, 비디오도 영어로 된 것은 잘 안 보려하기 때문입니다(새로운 비디오를 말하는 것입니다. 옛날부터 봤던 것은 봅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흘러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제가 더 재미있게 책도 읽어 주고 이벤트도 마련해야겠지만 시간과 능력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우리말을 어느 정도 하는 아이들을 상대로 영어를 즐겁게 받아들이게 하는 일은 무척 어려우면서도 부모에게 굉장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고심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저요? 저도 물론 고심이 되긴 하지만 워낙 처음에 세워 놓은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괜히 무리하다가 오히려 승호가 영어에 대한 반감만 가지게 될까봐 자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연극을 이용해서 영어와의 접촉을 유지하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이거 저번에도 연극에 대한 글을 올렸었는데 오늘도 역시 연극이 소재가 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1) 어린이집에서 연극 공연할 때의 승호
어쩌면 저렇게 나랑 똑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년 12월 승호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아빠와 함께 하는 날 행사에 참석하고 나서 말이지요.
지금의 승호가 어릴 적 저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숫기가 없어서 잘 나서지 못하는 승호..
승호는 'Big carrot' 연극을 잘 해냈지만 시종일관 얼굴에는 긴장한 표정이 떠나지 않았고 연극을 즐기기보다는 '잘 해야 할텐데..', '실수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고 걱정하는데 더 신경쓰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하는 공연인데다가 대사도 영어니까 긴장이 안 될 수가 없었겠지요.
집에서 엄마, 아빠와 연습할 때는 그렇게 재미있어 했는데(29회 다이어리, 아들과 함께 영어를 24 : Practising an English drama에서 소개했죠) 막상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려니까 떨렸는가 봅니다. 승호 뿐만 아니라 연극을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두 긴장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웃으면서 쾌활한 모습으로 임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전 승호가 그렇게 해주기를 내심 기대했던 것입니다. 어렸을 때 부끄럽고 겁나서 아는 것도 안다고 이야기 못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던 저의 옛 모습을 승호에게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승호는 철저히 저를 닮았더군요.
이걸 기뻐해야 하나요, 슬퍼해야 하나요..
2) 책 활용하여 연극하기
작년 12월말에 영어책 4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순수 창작 동화는 아니고 reading을 위한 단계별 책 4 권이었습니다. 세 권은 가장 초보 단계의 책이었고 한 권만 2단계 수준인가 그랬습니다. 2단계 책은 과연 글씨가 많더군요. 처음에는 4권의 책을 승호에게 슬쩍 그림만 보여주었습니다. 승호가 여전히 영어 책을 안 보려하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죠. 그래도 새로 들어온 책이니까 무슨 내용인가 궁금한지 처음에는 대충 보더라구요.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전 2단계 수준의 책을 제외한 나머지 세 권의 책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한 권은 개구리와 악어 이야기고, 또 한 권은 돼지와 늑대 이야기고, 나머지는 공룡 이야기였습니다. 이걸 어떻게 읽어주어야 승호가 흥미를 가질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승호가 연극 놀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어린이집에서는 꽁꽁 언 상태로 연극 공연을 했지만 그건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랬던 것이고 저랑 연극 놀이하는 것은 아무 부담이 없어서 그런지 무척 좋아하거든요. 요즘도 저랑 뭐 내기해서 승호가 이기게 되면 'Big carrot' 연극 한 번 해주어야 하는 것이 제가 받아야 할 벌칙인 경우가 많을 정도입니다.
'그래, 이 책의 내용을 연극으로 꾸며서 노는 거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책을 다시 보았더니 공룡 책은 연극으로 꾸미기가 어려울 것 같았고 개구리랑 돼지 책은 비교적 쉬어 보였습니다. 일단, reading을 위한 초급용 책이기 때문에 글 자체가 별로 없었습니다. 따라서 연극을 하더라도 대사가 거의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승호는 별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으로 꾸민다고 하니까 뭐 대단한 작업하는 것으로 오해하실 분들도 있을텐데 절대 그런 것 아닙니다. 제가 그렇게까지 시간이 많거나 정성을 들일만큼 여유가 있지 않거든요. 이 점은 다른 모든 분들도 마찬가지 일겁니다.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뭐든 완벽하게 해주려고 하면 스트레스만 쌓이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일단 부모가 놀아주기만 해도 좋아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면 훨씬 마음이 편해질 것입니다.
우선 'Hop right on' 이라는 개구리와 악어가 나오는 책을 첫 번째 연극 놀이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번 살펴볼까요? 악어 한 마리가 헤엄치다가 물가에서 파리를 잡아 먹고 있는 개구리 세 마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악어는 개구리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Want a ride?"
오호.. 엽기적입니다. 악어가 개구리를 보고 자기 등에 타라는 이야기잖아요. 치사하게 설마 악어가 조그만 개구리를 잡아 먹으려는 것은 아니겠죠?
개구리들은 "Okay" 하고 대답하더니 악어 등으로 폴짝 뛰어 오르죠.. 바로 hop right on한 거죠. 자, 그리고 나서는 물의 세계로 여행이 시작됩니다. 악어는 물 속으로 잠수하기 시작하고 등위에 타고 있던 개구리들 역시 차례차례 물 속으로 잠수하게 되는 거죠. 그 때 개구리들이 내뱉는 소리가 "Glub, glub, glub" 이라는 의성어입니다. 물밑까지 내려갔으면 이제 물위로 다시 올라와야 겠지요? 예전에 반토막 났던 주가가 요즘 다시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앗!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즐거운 이야기를..). "Splub, splub, splub" 하면서 개구리들은 물위로 떠오릅니다. 그 다음 날 똑같은 상황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말이지요. 세 번 째 날에는 악어가 개구리들에게 등에 타겠냐고 묻는 장면까지는 똑같은데 개구리가 대답을 생각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납니다.
연극이란게 뭐 별겁니까? 역할 분담해서 극본에 따라 말하고 움직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제가 악어를 맡았고 승호는 개구리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전 마루에서 헤엄치는 흉내를 내고 있었고 승호는 혀를 내밀고 파리를 잡아 먹는 시늉을 냅니다. 일부러 굵직한 목소리로 제가 물었죠.
"Want a ride?"
"Okay!"
승호가 대답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제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승호가 제 등에 뛰어 오를 때는 "Hop right on!" 이라고 제가 외쳐주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가고 나올 때 내는 소리는 함께 냈습니다. 승호는 그 와중에 악어가 더 덩치가 크기 때문에 개구리들보다 더 오래 물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과학적 분석까지 덧붙이더군요.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기특한 발상입니다.
이걸 몇 번 하고 나니까 제가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승호는 자기 대사를 스스로 말하게 되었습니다. 하기야 승호 대사라고 해봤자 몇 개 없습니다. "Okay", 그리고 물 속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내는 의성어 밖에 없으니까요. 승호는 악어 역할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악어에게 대사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니면, 개구리가 되어 제 등위로 뛰어 오르는 재미를 놓치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제는 제법 무거워진 승호가 등에 뛰어 오를 때는 적지 않은 충격이 몸에 느껴지더군요.
"승호야.. 제발 좀 살살 타라.." 하고 제가 빌어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 연극에는 소품이 필요 없지만 다음에 소개할 돼지 이야기(제목 : Pig Picnic)에는 소품이 필요합니다.
돼지 여러 마리가 함께 소풍을 갑니다. 소풍가서 물가에서 놀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나서 낮잠을 자거든요. 그런데, 나무 뒤에 숨어있던 늑대 한 마리가 자고 있는 돼지들에게 접근하지요. 그 때 잠이 깬 돼지들은 깜짝 놀라 늑대를 언덕 밑으로 굴리고 배 위에 올라타고 움켜 쥡니다. 늑대는 울면서 '너네들 실수하는거야, 난 단지 파이랑 케익이 먹고 싶었을 뿐이야(You've made a mistake! All I want is pie and cake!)' 하고 이야기합니다. 잘못을 깨달은 돼지들은 늑대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나눠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참, 아무리 여러 마리 라지만 돼지들이 늑대를 제압하는 것 역시 퍽이나 엽기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_^)
이 연극을 하면서 필요한 소품은 음식과 배낭입니다. 승호는 자기 어린이집 가방을 가지고 와서는 대충 주위에 있던 장난감들을 집어 넣고 그것이 파이와 컵케익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좀 더 부지런했다면 승호 방에 있는 장난감 요리 세트를 꺼내 와서 가방에 넣어주었을텐데 꺾어지면 70인 몸을 움직이기가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승호는 당연히 돼지를 했습니다. 왜냐구요? 돼지는 거의 대사가 없거든요. 그냥 소풍가는 시늉, 물놀이 하는 시늉, 그리고 점심 먹고 낮잠 자고 늑대를 잡는 시늉만 하면 되거든요. '돼지들이 물놀이를 합니다(Pigs go swimming)'와 같은 나레이션은 당연히 제 몫이었고, 동시에 전 늑대였기 때문에 나중에 "You've made a mistake!" 와 같은 대사까지 울부짖어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연극을 수 차례 했습니다.
아빠 등에 타고 또 아빠를 굴리는 재미에 승호는 신났지요. 가끔 가다가 "Okay" 한 번 하고 물 속으로 잠수하고 다시 올라올 때의 소리만 내면 되었으니까요.
지금 상황에서 선물 받은 그 책들은 승호와 제가 출연하는 2인극의 시나리오로서 활용될 수 밖에 없는 처지 같습니다. 책 본연의 역할 수행은 잠시 보류하고 말이지요. 비록 대사는 제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하고 있지만 영어로 논다는 사실 하나만은 분명하지요? (^_^)
승호 아빠 : [email protected]
(승호는 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고 있습니다)
덧붙임) 승호는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연극(팥죽할멈과 호랑이를 비롯하여 어린이집에서 단체 관람한 연극들)도 다 구경하고 말이지요. 전 연극을 처음 본 것이 20살 때 였습니다. 대학 입학을 앞 둔 겨울에 그 동안 공부하느라고 수고했다면서 누나가 연극 구경을 시켜 주었습니다. 그 연극은 문성근씨가 주연을 맡았던 '칠수와 만수'였습니다. 첫 연극치고는 꽤나 사회 의식이 짙은 연극을 본 셈이지요. 그리고 나서는 별로 본 것이 없군요. 지금까지 본 것이 한 5개 정도 되려나요.
반면, 제가 비록 유치원은 다니지 않았지만 간단한 연극은 많이 해보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보이 스카웃을 했는데 여기서 늘 촌극이라고 해서 같은 보(팀을 말합니다)원끼리 연극 비스무레한 것을 해야 했거든요. 오늘 이 글 쓰다 보니 그 때 생각이 나네요. 하여간 영어 책 읽기 싫어하는 아들 덕분에 영어로 연극도 하고 별 경험을 다 하게 되네요.
| 아들과 함께 영어를 30 : Does my son like a dram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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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승호아빠 등록일 2002-02-18 23:41 조회수 1,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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