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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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곳은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해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집니다. 9월부터 우기(rain season)가 시작되는 고로, 12월 역시 일주일 중 5-6일은 비가 늘 온다고 할 만큼 비가 많이 오고, 비와 친해지지 않으면, 비오는 날씨에 대한 원망이 너무 심해서 병까지 생기기도 하지요. 그 비가 크리스마스 때쯤 되면 눈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7년동안 살면서 작년 한 해 빼고는 매년 눈을 봐 왔었습니다.
작년에는 크리스마스 때도 천둥과 번개가 치고, 태풍이 불고, 우박이 내리고, 소나기가 내리는 둥 날씨가 궂어서, '크리스마스인데도 눈이 없다'고 불평하는 아이들을 차에다 싣고, 산길을 올랐습니다. 비가 눈으로 변하는 시점에 아이들을 내려주고 (깜깜한 밤에), 차의 헤드라이트를 불빛삼아,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내려왔었습니다.
올해도 크리스마스때는 비가오고..그런데 다행히도 어제부터(12월 30일) 내리기 시작한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는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적어서, 눈이 오다가도 쌓일 시간이 없이 다 녹아버리기 일쑤거든요. 일단 좀 쌓였다 해도 언제 갑자기 비로 변해서 다 녹아버릴지 모르기 때문에, 기온이 좀 낮아지는 한밤에라도 눈이 오기 시작하고 쌓이기 시작하면,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깨워서라도 눈을 놀게 합니다. 어제도 조금씩 쌓이는 눈을 마음껏 즐기라고 밖에서 노는 아이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이지 않았습니다. 밤이 늦도록까지 썰매까지 타 가면서 잘 놀았고, 일기예보에서 오늘도 10센티까지 눈이 쌓인다는 기쁜 소식을 가슴에 안고 아이들은 오늘 더 잘 놀기 위해 잠자리에 들었지요.
밤에도 계속 눈이 내렸고, 창밖으로 보이는 설경은 참 밝고 아름답더군요. 가로등의 빛을 반사해서 더욱 환해진 밤 풍경..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15센티 가량의 눈이 온세상에 쌓였고, 고맙게도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자랑이랑 같이 부츠를 신고, 발이 푹푹 빠지는 숲길을 걸어서 Rec Center에 스케이트 레슨을 갔습니다(2주간의 방학동안에 일주일 동안 아침 9시에 하는 스케이트 레슨을 등록했습니다). 이정도의 눈이면 레슨도 취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눈길을 모두들 헤치고 왔더군요. 우리는 손바닥 만한 숲속을 걸어서 5분 정도만 가면 Recreation Center-스케이트장이 나오지만, 차를 타고 와야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어려울듯 했었는데..
가고 오는 길에서, 자랑이는 아무도 밟지 않은 수북하고 신선한 눈 위에 엎어져서는 천사모양도 만들고, 입속에 잔뜩 눈을 삼키기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눈놀이를 시작했지요. 온 동네 꼬마들이 다 나와서 합동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눈을 쌓아서 굴도 만들고, 요새도 만들고...저는 그걸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는데, 우리도 어릴때 눈으로 굴을 만들던 기억을 하면서, 어디나 아이들의 놀이는 비슷하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기예보를 들으니, 오후에는 기온이 올라가서 이 눈이 곧 비로 변해 다 녹는다고 하더군요. 집에서 밍기적 거리는 딸한테 '눈이 비로 변한단다'고 겁을 줘서(?) 밖으로 떠다 밀었습니다. '엄마, 나는 집에 있을 때는 나가기 싫고, 일단 나가면 눈놀이가 너무 좋아서, 집에 들어오기가 싫어요.' '그래 잘됐다. 일단 나가는게 중요하군..'하고 내 보냈지요.
눈도 한번 오면 기본이 10센티로 푸짐하게 오니까, 정말 아이들이 원없이 실컫 놀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노는 동안, 집에서 핫초콜렛을 준비해 놓고, 크래커나 쿠키를 놓아 두었다가, 아이들이 잠깐씩 젖은 옷을 갈아입고나서 스낵을 먹게 하지요. 이곳에서는 눈오는 날이나 추운 날, 밖에서 뭐든 하고 오면 먹는 것이 hot chocolate입니다. 우유를 따뜻하게 덥혀서 설탕과 코코아가루를 넣고, 기호에 따라 계피가루나, 마쉬멜로우(marshmallow)를 위에 뿌려서 먹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뜨끈뜨끈한 사발면이나, 오뎅국물이 최고인데 말입니다. ^^*
이렇게 눈이 오면 제가 꼭 하는것...눈을 손에 가득 담아서 먹어보기입니다. 한국서는 어려서만 해 보던것..커서는 '오염된 눈'이라는 말에 입에 안 들어가도록 애를 쓰곤 했던것. 어린 자녀들에게도 눈을 입에 못 넣게 하느라 부산을 떨곤 했는데.(도시에 사시는 분들께 죄송합니다만..)
하루종일 밖에서 노느라고, 제 딸은 다리가 아프다고 하고, 제 아들은 그저 아직도 흥분을 못 가라앉히고 좋아하지만, 얼굴과 눈은 피곤으로 벌겋게 닳아 올라있습니다. 그럼에도, 좀 쉬려는 아빠를 졸라서 공원 언덕에 썰매타러 간다고 또 나갔습니다. 다리가 아프다는 딸도 신체적 불편함을 감수해 가면서도, 재미를 놓쳤다가 후회할까봐 기꺼이 썰매를 즐기러 나갔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산동네라 눈이 비로 변하지 않으려나 봅니다. 비가 내리다가 다시 기온이 내려가서 빙판길이 된다고 하던데...이 눈이 얼어붙기 전에 어서 한국마켓에 가서 떡국 끓일 고기와 떡을 사다 놓아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들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