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연분 아빠와 아들...2003/07/16 2003-07-1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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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천생연분이라 불릴만한 수많은 관계가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내 곁에도 눈꼴신 한 커플이 있으니 바로 은창이와 그의 아빠다

천생연분이라 할지라도 싸우면서 그 정의 깊이가 더해 가는지라
둘도 다투기는 한다

어떤 휴일,
둘은 꿍짝이 딱딱 맞아서는
엄마인 나를 한껏 놀려대면서 집을 나섰다
물론 아이 둘에 헉헉대기 일쑤인 일상에
아빠가 하루라도 큰아이를 대동해 외출해 주면
나야 뭐 싫을 게 전혀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둘은 나갔을 때와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먼저 창문 너머로 둔탁하지만 거친 성인남자의 발자국소리..
그 소리만 들어도 짐작이 가는 현관 앞에서의 멘트..
"저 녀석 아주 못쓰겠어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야..
도대체 대화가 안돼...
내 차라리 은송이를 업고 간다..."
그 뒤를 이어 한쪽으로 쏠린 눈을 해갖고 들어오는
시커먼 스포츠머리의 머스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에 그래도 꼭 한소리 하고 만다
"치..나도 아빠랑 이제 안갈거야
엄마랑 인라인스케이트 탈거야..
나도 엄마랑 가면 된다 뭐..."

두 사람의 말은 사실 그저 화가 나서 내뱉는 속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딸 목욕시키는 일도 부담스러워 하는 다분히 고지식한 면이 있는 아빠가
이제 막 기저귀를 뗀 세 살박이 딸을 데리고 외출을 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고,
기껏해야 책이나 읽어주고 공부나 함께 하는, 운동이라면 숨쉬기 운동이 전부인
엄마에게 타지도 못하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러 가자고 할 아들녀석도 아닌 까닭이다.

화가 나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는 아빠와
억울해서 씩씩대는 아들이
화해를 이루는 장소는 짐작하듯이 목욕탕이다
비록 들어갈 때는 서로 조금만 닿아도 신경전을 벌이지만
나올 때는 키득키득 웃으며 이리저리 서로를 밀치며 나온다...

그런 날의 밤에 아이아빠는 한동안 천장을 올려다 보며 말한다
"왜 별일 아닌 일에 그렇게 화를 냈나 몰라
난 아빠 자격이 없나봐,..
은창이한테 너무 미안해
저렇게 착하고 예쁜 녀석인데 말이야..."
늘 같은 식의 진행이지만 그에 합당한 대꾸를 안해주면
섭해 하는지라...그저 지나가는 말로...위로차 거든다
"괜찮아..당신 잘하고 있어
다들 그러고 살어..."
그렇게 날이 거듭된다...

하지만 그런 날보다 앞에서 말한
천생연분임을 느끼게 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오늘 밤이 그런 날이다
아이는 유치원에 다녀온 후 서울까지 뮤지컬을 보고 와서 나름대로 굉장히 피곤했다
아빠도 거친 세상에서 처자식 먹여 살리느랴 고생하다 늦게 왔으니 역시 피곤했다
저녁 먹고 씻겼더니 둘째는 어느새 잠이 들고
나는 남은 일을 정리하고
부자는 함께 천장을 보고 누워있었다

"은창아...아빠 다리 좀 밟아주라.."
"아빠 나도 피곤한데.."
"아빠가 더 피곤해.."
"나도 오늘은 많이 피곤하단 말이야.."
"알았어...은창이는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분명해.."
아이는 맨날 똑같은 그 소리에 맨날 지고 만다
그 갸녀린 몸을 해갖고서도 아빠의 비수와 같은 말에
일어난다...
"나 아빠 사랑해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마..."
"그래 알았어...고마워..."
"근데 언제까지 밟아야돼?"
"긴바늘이 7자에 갈 때까지..."(그 때 긴 바늘은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응...알았어.."
1초, 2초, 3초, 4초......한 65초쯤...
"아빠 근데 긴바늘이 너무너무 느리게 7로 간다..."
"그래도 가긴 가...잘 봐...어떻게 가나..."
"아빠도 나 사랑하면 내 다리 주물러 줘야 해.."
"일단 잘 밟아라..그게 먼저다.."
다시 수십초가 지난다
"잘 봐도 느리게 가...아직도 멀었네..."
"조금만 기다려봐...어느새 7자에 가 있을....."
"아빠...7자에 갔어! 시원하지?"

아이는 아빠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아주 흡족하여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 아빠는 아이가 선사한 5분의 사랑을 먹고
졸린 눈을 부벼가며 여섯 살 아이의 다리를 주무른다
아이가 잠을 든 걸 확인하고야
피곤에 지친 아빠도 곁에 눕는다...

아이와 아빠가 저녁을 먹고 들어오면서 함께 부른 노래가 귀에 쟁쟁하다...

"아주 먼 옛날 하늘에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 있었죠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노라(부자코러스, 워어워~~)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은창코러스) everybody go,go,go!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사랑해요 축복해요 당신의 마음에 우리의 사랑을 드려요~~~~~"

은송이로 인해 숨막히게 좋을 때
은창이 곁에는 기꺼이 은창이로 인해
숨막혀도 좋다고 웃는 아빠가 있어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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