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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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5/07
지난 5월 4일 토요일 저녁, 승호 모자는 승호 엄마 친구들의 모임에 다녀왔습니다. 그 모임은 보통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 있는데 초창기에는 남편들도 참석했었지만, 구성원 4명 중에 한 명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주축이었던 한 명이 작년에 남편이 유학갈 때 같이 나가게 된 이후 남편들은 잘 참석하지 않게 되었지요.
이번에는 그 미국에 간 친구가 일시 귀국하여 모임을 급히 가지게 되었답니다. 덕분에 저는 간만에 집에서 유유자적하면서 한가하게 저녁 시간을 보냈지요.
밤 9시 조금 넘어서 승호랑 승호 엄마가 돌아왔습니다.
승호 엄마는 남은 일 처리하러 방으로 들어갔고 승호와 저는 마루에 남아서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승호가 갑자기 말문을 엽니다.
"난, 우리나라 말이 제일 쉽더라.."
"응? 승호야, 뭐라고?"
전 갑자기 승호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영문을 몰랐기 때문에 되물었습니다.
"우리나라 말이 제일 쉽다구요."
"그럼, 당연하지.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 그러면 승호야, 미국 사람에게는 무슨 말이 제일 쉬울까?"
".. 미국말이요."
"그래, 미국 사람들에게는 미국말, 즉 영어가 제일 쉽고 일본 사람에게는 일본말이 쉽고 중국 사람에게는 중국말이 쉽고 프랑스 사람에게는 프랑스 말이 제일 쉽지."
전 말이 나온 김에 몇 나라를 더 첨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승호야.. 그런데 왜 승호에게는 우리나라 말이 제일 쉬울까?"
"...."
"승호가 우리나라 사람이라서?"
"음.. 아빠, 엄마가 우리나라 말을 가르쳐줘서 그렇지요." 하고 대답합니다.
일단 이 수준에서 승호와의 대화는 끝이 났는데요. 전 승호가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구요. 우리나라 말이 아닌 영어가 싫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인지 뭔지.. 요즘은 영어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영어 책도 별로 안 읽고 영어 비디오도 잘 안 봅니다. 보라고 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할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호가 잠들고 나서 승호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모임에 미국에 가 있는 친구의 아들도 따라 왔는데 영어를 굉장히 잘 하더랍니다. 발음도 거의 원어민 수준이고 구사하는 문장도 나이에 맞지 않게 완성도가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승호 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미국에 가기 전에 승호랑 몇 번 만났을 때는 우리나라 말도 잘 하지 못 했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말 뿐 아니라 영어도 썩 잘 한다고 합니다.
작년 8월경에 미국에 갔으니까 이제 한 9개월 되었나요. 어린 나이라 그런지 영어 습득 속도가 생각했던 것 보다 엄청 빨랐나 봅니다. 그리고, 유치원에 같이 다니는 미국 아이들이 그리 덩치가 크지 않은 관계로 이 아이가 제일 크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유치원 생활에 적응을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승호가 가져간 장난감 비행기를 빌려 놀면서 혼자 중얼거리는데 영어가 '솰라솰라' 쏟아져 나오더랍니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가끔씩 "Good!", "Delicious!" 와 같은 감탄사를 내뱉는데 발음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당연히 어른들의 관심은 그 아이에게 집중되었겠죠.
그렇습니다. 그 날 승호는 문화적 충격(Cultural shock)을 받은 것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기 보다 덩치도 작고 우리나라 말도 잘 못 했던 동생이 오랜만에 나타나 자기가 잘 하지 못 할 뿐 아니라 무척 어려워하고 있는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또, 그런 동생을 보고 엄마를 비롯하여 어른들이 칭찬하는 것을 보고 안 그래도 칭찬에 대한 욕심이 많은 승호는 속이 상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집에 와서는 아무 영문도 모르는 아빠에게 "난 우리나라 말이 제일 쉬어" 하고 말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한 셈이죠.
비디오나 거리에서 영어를 말하는 외국인들은 가끔 보았지만 자기가 잘 아는 우리나라 아이가 영어를 그렇듯 유창하게 하는 것을 본 것은 승호에게 그 날이 처음인 셈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승호 엄마에게 그랬죠.
"야.. 이거 기회 같은데, 슬슬 승호에게 영어를 다시 가르쳐볼까?"
"아니야.. 조심해야 돼.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도 있잖아. 잘 지켜보고 접근해야지. 하지만 앞으로 승호가 영어를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질거야."
무언가를 가르치고자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동기부여 라고 했습니다.
그 동안 승호에게는 영어에 대한 동기부여가 없었습니다. 제가 틈나면 지구촌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지만 겨우 6살인 승호가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겠죠. 그런데, 이번에 아주 가까이에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는 자극을 받은 것입니다. 이제 승호도 생각을 하겠지요.
요즘 승호는 집에서는 영어를 거의 하지 않지만 어린이집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씩 꾸준히 영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저번에 할머니랑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는데 할머니가 물어보는 영어에 대한 질문에 거의 다 대답하더군요. 왜 있잖아요. 예를 들면 "달이 영어로 뭐니?" 하면 "moon" 이라고 대답하는 식의 대화 말이죠. 저는 그런 식의 영어 단어를 묻는 질문을 하지 않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승호가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느라고 가끔 묻는가 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아도 승호가 영어를 완전히 배척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자기가 잘 못 알아듣는 영어를 굳이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승호가 영어 공부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굳힐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겠습니다. 그것이 저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승호 아빠 : [email protected]
(승호는 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고 있습니다)
덧붙임) 며칠 전에 정말 오랜만에 승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How's the weather today?"
"Sunny" 하고 제대로 대답하더군요.
"음, 승호야 잘 기억하고 있구나."
"영어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어요."
잉? 이 무슨 소리입니까.. 그건 제가 승호에게 가르쳐 준 건데요.(제30회 아들과 함께 영어를 25 : A weather calendar에서 소개했었죠)
"승호야. 그거 아빠가 가르쳐 준거야"
".. 아니, 어린이집 영어 선생님도 가르쳐주었다는 얘기야." 하고 둘러대더군요.
누가 가르쳐주었건 잘 기억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데, 괜히 서운한 생각도 드네요.
| 아들과 함께 영어를 31 : Cultural sho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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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승호아빠 등록일 2002-05-07 09:20 조회수 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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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영어를 31 : Cultural sh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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