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
한두 돌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수업을 하게 되셨다니,
아이들이 몇 명인지는 몰라도,
걱정태산님께 걱정을 더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정말 힘드실 거에요.
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장 어린 연령으로 7세반을 맡은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일곱 살이면 꽤 철도 들고 하는 나이지만
아이도 길러보지 않은 저로선 가장 들어가기 싫은 반이었답니다.
(농담 따먹기(?)도 하고 다양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었던
고등학생 학급이 정말 좋았었지요.)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자신이 여기(학원)에 왜 왔는지,
학원 생활의 리듬과 규칙이랄까...
암튼 그런 것을 이해하는 나이였기에 그 정도였던 것 같아요.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제가 얼마 전 꽤 머리 아프고 괴로운 수업을 맡아보고서야
그때 일곱 살 애들이 100배 나았단 생각이 들어서지요.
이제 막 40개월을 넘긴 제 아인 두 돌 무렵부터 영어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뭐 그렇다고 지금까지도 대단한 걸 해주고 있는 건 아니고
책과 비디오, 생활영어(저 내킬 때) 정도로 맥을 유지하는 정도)
같은 아파트 사는 시누네 아이(제 아이보다 3주 빨리 태어났죠)와
제 아이를 함께 지도(?)하게 되었어요.
사실 시누는 오래전부터 제게 부탁을 했었는데
제가 자신이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은 낯이 없어서
시작을 했지요.
자신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 조카가 꽤 다루기(?) 어려운 장난꾸러기(집안에선 망나니로 불림)여서
통제도 힘들 뿐더러(오죽하면 영문과 나온 시누가 저한테 부탁을 했겠습니까.)
뭔가를 가르쳐주려는 데 대한 강한 거부감,
특히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적잖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차분하고 섬세하고 집중력도 좋고 뭐든 쉽게 받아들이는 제 아이도
그 녀석과 붙여만 놨다 하면, 정말 두 놈이 정신병자 따로 없을 만큼...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오죽했으면, 이 녀석들 어렸을 때 한동안은 두 집끼리
외식을 나가면 저희 남편이 늘 자막대기를 지참했다니까요.
덕분에 조카는 삼촌을 꽤 무서워하게 됐지요.)
오죽하면 시누의 오빠인 제 남편까지,
웬만하면 시작 안하는 게 나을 거라고 했겠습니까.
암튼 3월 어느날인가 시작을 했죠.
(정말 처음은 아니었고, 시누가 그전부터 부탁을 하곤 해서
아주 가끔, 시누네서나 저희집에서나 게릴라식으로 즉석에서
노래부르고 책 보고 게임 같은 걸 한 적이 있었지요.
상황은 그나마 40개월이 넘은 지금이 그나마 나은 것 같네요.
그땐 '야단'도 안먹히던 그야말로 천방지축들이었으니 말예요.)
처음엔 부담감과 약간의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저 녀석에게 영어의 즐거움을 심어주고
output을 이끌어낸다면 제 아이 가르치는 것보다
더 큰 보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러나...
수업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 50분을 보내고 나니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은 데다
앞으로 이걸 어쩌나 하는 생각에 눈물까지 찔끔...
그 다음 시간에도 다시 마음을 다잡고 다양하게 준비했지만
두 녀석 호통치느라 목만 쉬어버렸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어떻게 됐냐구요.
제 아이가 덜컥 입원을 하게 되어 현재까지 중단된 상태에요.
(퇴원은 했지만 아이가 깁스를 하고 있어 제가 꼼짝도 못하고
아이 수발드느라... 죽갔답니당.)
제 얘기가 너무 길었지요?
걱정태산님께 태산을 하나 더 안겨드린 건 아닌지...
(물론 제 경우는 좀 특수하긴 했습니다.
아이들이 절 선생님이라고 보나요. 매일 보는 엄마에 외숙모니...)
그래도, 한두 돌짜리 아이들이 모여 있는 상황... 아이고...
우선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요,
'수업'이라는 생각, 아니 그 단어 자체를 잊으시라는 거에요.
당분간은 어떤 효과라든가, 계획대로 진행한다는 데 대한
생각을 접으시고,
아이들을 봐주고 놀아주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하시라는 거에요.
그리고 계획도 너무 잘 세우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되실 수도 있어요.
계획대로 진행이 안 되면 정말 의욕 상실이거든요.
융통성을 가지시고 아이들의 반응을 주시하시면서
상황따라 적절히 대처하세요.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서라면
그날의 주제나 목표에서 벗어나는 노래나 놀이라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더더구나 정말 이런 어린 아이들에게 있어선
정해진 목표와 단계대로 뭘 '학습'한다는 것보다도
즐거운 첫발을 들여놓으며 친숙함을 갖게 해주는 것 아니겠어요.
코스북은, 아무리 쉽더라도 아이들에겐 무리란 생각이 들구요,
우선은 노래와 챈트와 율동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봅니다.
아마도 아이를 맡기신 엄마들께선 (수업료도 내시겠죠?)
뭔가를 기대하시겠기에 선생님의 부담도 크시겠지만
이 나이땐 정말 노래부르고 노는 게 배우는 거지요 뭐.
책 선정을 하실 때도, 정말정말 쉬운 책을 고르실 것을 권합니다.
명작이고 베스트셀러고... 다 좋지만
이 또래 아이들은 이제서야 '책'이란 걸
물고 뜯는 용도가 아닌 '보고 듣는' 걸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시점인 만큼
그림도 이해하기 쉽고, 내용도 쉽고 짧은 것으로 고르세요.
수업계획을 세우실 때도
보통 영어모임 하시는 분들처럼
신체, 가족, 날씨... 이런 식은 이 아이들에겐 아직 어렵다고 봅니다.
그리고 게임 말인데요,
이 나이 아이들이 게임이란 게 아마 거의 불가능할 거에요.
규칙을 이해할 수가 없고, 자신이 이기기 위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거든요.
요즘은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깐돌이와 조카녀석도
몇 개월 전까지는 카드로 메모리 게임 경쟁을 붙여 놓으면
서로 알려주질 않나, 서로 카드를 맞바꾸질 않나...
어떤 식의 수업을 계획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엄마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선 조금 껄끄러우실 수도 있겠지만요.
엄마가 있을 때 더 통제가 안되는 아이들도 있지만
(제 조카 경우가 그렇습니다)
한두 돌 아이들이라면 선생님만 있다고 해서
더 긴장하거나 집중하지도 않지 않나요?
아무래도 혼자서 아이들을 통제하시며 집중시키시는 것보다는
이 나이 아이들은 (문화센터 영어동요교실이라든가 그런 것처럼)
엄마와 함께 노래부르고 율동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엄마가 자기 아이 무릎에 앉히고 아이 양손 잡고 동작을 해줘야
그나마 아이들도 따라하지,
앞에서 선생님 하시는 것 보며 따라할 수 있는 나인 아닌 것 같네요.
액티비티도, (물론 저 자신이 예전에 큰애들 가르쳤을 때 생각을 버리고
눈높이를 팍 낮춰야 했지만)
손놀림이 서툰 두 녀석 데리고 뭔가 만들거나 해보려고 해도
결국 녀석들은 저쪽 가서 뒤엉켜 악악대고 있고
저 혼자 두 개 만들어 시누가 아이 데리러 오면
척 하니 내밀곤 했답니다. ㅠ.ㅠ
간만에 들어와 큰 도움도 못드리면서 제 얘기만 길어졌네요.
물론 제 얘긴 아까 말씀드렸듯이
엄마와 외숙모로서의 특수한 상황이었는 만큼
미리 이런 상황을 상상하시고 걱정하진 마시구요,
다시 한번, '가르친다'는 부담과 목표 대신
놀아준다는 생각을 시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이왕 시작하신 일이니 잘 되시길 빌어요.
장기목표를 세우셔야겠지만 보람도 그만큼 크실 거에요.
(지금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조카녀석이 삼촌을 무서워 하니까
앞으로 다시 수업을 하게 되면 남편 있을 때 할까봐요.
수업 분위기는 나아져도 아이가 영어에 대해 더 거부감을
갖게 되려나요...? 에이구, 모르겠당...)
-깐돌엄마-
| 아이고, 정말 힘드실 거에요... |
|---|
|
글쓴이 깐돌엄마 등록일 2002-05-10 23:34 조회수 1,340 |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
최신
이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