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시험을 앞두고 이런 꿈을 꾸고 놀라 깬 적이 있었다.
꿈속에서 나는 5층 교실에서 시험지를 막 받아 들었는데 아니, 이게 웬일?
내가 받은 영어 시험지는 빈 백지가 아닌가. 옆의 아이들은 모두 깨알같은 영어가 적힌 시험지로 열심히 시험을 치고 있는데.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시험지가 백지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목에 무슨 쇳덩이가 달린 것처럼 목 부분이 무거워지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입은 허공에서 뻐끔거리기만 할 뿐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말을 하려고, 시험지가 백지니 바꿔 달라는 말을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나.
그 사이 아이들은 하나 둘 시험을 마치고 교실을 떠나고 빈 교실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있는 나. 갑자기 시험 감독 선생님의 얼굴이 나를 '어이 주이쎄'라고 불렀던 그 선생님으로 바뀌고 '어이 주이쎄, 시험 시간 끝났으니 빨리 시험지를 내야지. 오늘도 온통 시험지에다 주이쎄만 가득 적어 놓은 건 아니겠지.
하긴 아는 게 그것밖에 없으니.' 하면서 눈을 부라리며 내게로 다가오고. 점점 더 조여 오는 목, 점점 더 다가오는 그 선생님의 얼굴. 난 차라리 땅속으로 꺼져 버렸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고. 그 다음 순간 나는 백지 영어 시험지를 들고 5층 교실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다가오는 운동장이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순간 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그 새벽의 두려움은 참으로 오랫동안 내게 기억이 되었고, 큰 시험을 앞두고 꼭 그 꿈을 되풀이해서 꾸곤 했었다.
심지어는 1987년 여고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 해에 우리 학교 아이들의 중간고사 시간표가 발표되고 난 후 연일 그 꿈을 꿨으니 내 영어 시험에 대한 강박감은 참으로 나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여고생인 내가 한참 시험을 치고 있는데 내가 앉아 있는 책걸상만 나를 싣고 추락하는 양탄자처럼 5층에서 1층 교실의 한가운데로 뚜욱 떨어지는 꿈도 꾸었었다. 그 교실에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시험을 치고 있었고 그 가운데에 떨어진 나는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오고 싶어 몸부림을 쳤지만 몸은 점점 의자에 더 달라붙고. 결국 흐느끼며 깨어난 새벽, 아마도 영어 시험의 감독이라는 사실이 나를 그런 악몽에 시달리게 했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씁쓸해했었던 그때의 심정이란.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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