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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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승호가 탑 블레이드 팽이를 돌립니다.
파란색 팽이가 잘도 돌아갑니다.
그런데, 돌고 있는 팽이의 아랫 부분을 보니 실오라기 하나가 팽이가 일으키는 바람에 걸려들어 흐느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승호야.. 저거 봐라. 바람이 센가 보다"
승호는 제 말을 듣고 엎드려서 그 실오라기를 봅니다.
문득, 승호가 저 바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승호야.. 팽이가 돌면 바람이 왜 일어나지?"
'팽이가 돌면서 근처에 있던 공기들을 휘저어 바람이 일어나요.' 하고 승호가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겠지요?
승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탑 블레이드가 돌면 안에 있던 바람이 튀어 나와요. 만화에서 아빠도 봤지? 드래곤이 돌면 빛이 나면서 소용돌이가 나오는거.."
크.. 승호는 만화에서 본 장면을 그대로 이야기하네요.
"그래? 그러니까 바람이 탑 블레이드 안에 들어있단 말이지?"
승호는 가지고 있던 탑 블레이드를 분해해서 안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요기 봐요.. 여기.. 여기에 바람이 숨어 있어요. 눈에는 안 보이죠."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길래 이번에 한 번 승호의 환상을 깨보기로 결심하고는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해하면서 말이죠.
"승호야.. 그건 만화에서 나오는 이야기고 진짜 팽이를 돌리면 왜 바람이 일까?"
승호는 순간 멈칫하는 것 같았습니다.
승호는 이제 만화와 현실을 구분할 줄 아는 나이에 들어섰습니다.
전에는 한 번 외출을 해야 되는데 승호가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제가 '그럼, 아빠, 엄마만 다녀 올테니 승호는 파워 다그온하고 집 지키고 있어라' 하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파워 다그온은 SBS에서 방영하는 만화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로 합체 로봇입니다. 그 로봇 장난감을 승호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그랬더니 승호가 대뜸 한다는 소리가 "그건 장난감이잖아요. 장난감이랑 어떻게 지켜요?" 였습니다. (^_^)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승호는 정신을 번쩍 차린 것 같았습니다.
"아빠.. 팽이에는 힘이 있어요. 도는 힘 때문에 바람이 생겨요."
"그래? 그럼, 그 도는 힘은 어디서 나오지?"
"슈터에다가 와인더를 넣고 휙 하고 빼면 힘이 나지요."
음.. 차츰차츰 제가 원하는 곳으로 승호가 길을 찾아 들어가고 있는 듯 합니다.
"승호야.. 슈터하고 와인더는 어디서 힘을 얻니?"
"엉.. 슈터하고 와인더가 서로 힘을 합해 힘이 나지요."
에구.. 이 대목에서 진전이 잘 안 되는군요. 전 승호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보고 와인더를 뽑아내는 시늉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승호야.. 슈터하고 와인더에는 누가 힘을 주지?"
제 몸 동작을 보고 있던 승호가 살며시 미소를 띄우며 이야기 합니다.
"내가요."
"그래.. 바로 승호 너야. 승호 네가 탑 블레이드에 도는 힘을 주는 거야."
탑 블레이드가 도는 힘이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로써 확인하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것입니다. 만화를 보면서, 혹은 자기가 직접 돌리면서 팽이를 돌리는 사람에 따라 도는 속도나 힘이 달라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겠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 힘이 전달되는지에 대해 이렇듯 따져가며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욕심을 조금 더 부려 보았습니다.
"승호야.. 그럼, 네 힘은 어디서 나오니?"
"밥에서요."
"그래, 승호야.. 밥에서 힘이 나온다. 그러니까 밥 많이 열심히 먹어야 돼."
그러면서 저는 뽀빠이 식으로 알통을 보여줍니다(별로 나온 것은 없지만, 승호 보다는 많이 나왔으니까 별 무리 없다고 생각됩니다). 뽀빠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승호지만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나는 뽀빠이를 알더라구요. 아마 할머니나 승호 엄마가 시금치를 승호에게 먹이려고 이야기를 해 준 것 같습니다. 하여간 승호는 시금치를 잘 먹습니다.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던 승호 엄마는 그냥 설거지만 하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부자간의 길고 긴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모양이지요.
"아니.. 결국 밥 많이 먹으라는 이야기였어?" 하고 말 참견을 합니다. 좀 간추려 이야기해서 그렇지 이 정도 결론에 도달할 때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렸거든요. 승호가 한 말을 또 하기도 하고 제가 되물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지요.
자, 기왕 이 정도까지 왔으니까 '에너지의 순환' 개념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고 생각한 저는 또 다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승호야.. 밥은 어디에서 나오지?"
"하느님이 주시죠."
아!
여기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논리로는 더 이상 설명이 되지 않는 종교의 세계와 부닥친 것이지요. 승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장모님과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해왔습니다. 하기야 승호 엄마 역시 기독교 신자지요. 그러고 보니 종교에 관한 한 승호는 이 아빠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은 것 같네요. 전 종교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식사 전에 기도 대신 부르는 감사 노래가 있는데 승호가 아주 잘 부릅니다. 전에 처가에서 식사할 때 그 노래를 불렀었는데 다 부르고 나서 승호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아빠, 아빠는 왜 안 불러?"
"응, 아빠는 그 노래 몰라."
"에잉.. 나도 아는데 어른인 아빠가 몰라?"
그러고 넘어 갔지요.
하여간 그 노래 가사에 아마 하느님이 먹을 음식을 주었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승호는 그 노래를 생각해내고 대답을 한 것 이지요.
"그래, 그래.. 하느님이 밥을 주셔서 그거 먹고 힘 나는 거지?"
하고 저는 대화를 마쳤습니다. 승호가 아직 그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눌 수준에는 오르지 못 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저쪽에서 저희들을 보고 있던 승호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죠.
"언젠가 혼란을 겪으리..(무슨 예언자 같지요?)"
"한번쯤 겪겠지."
학창 시절, 종교적 갈등을 심하게 겪었다는 승호 엄마가 대답합니다.
승호가 좀 더 크게 되면 '아들과의 대화 : 종교' 와 같은 제목의 글을 쓸 수 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한 번 그러고 싶습니다.
아이가 종교를 갖는 것이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승호 엄마의 말에 전 소극적이나마 동의를 했었습니다(사실 전 종교를 갖지 않는 것 역시 문제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승호가 엄마나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가고, 식사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있지요.
종교 문제, 인류가 여지껏 풀지 못 하고 있는, 또 앞으로도 풀기 어려운 영원한 숙제 같습니다.
승호 아빠 : [email protected]
(승호는 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고 있습니다)
덧붙임) 본가에서 놀고 있던 승호를 데리러 갔더니 승호가 배추 잎이 들어있는 병을 보여줍니다. 자세히 보았더니 안에 달팽이 두 마리가 있더군요. 할머니께서 배추를 사왔는데 거기에 붙어있었답니다. 승호는 달팽이가 배추 잎을 이렇게 많이 먹었다면서 뻥 뚫린 배추 잎을 가리킵니다. 그리고는 집에 가져가서 잘 키우겠다고 말합니다.
집에 가져왔더니 벌레 같은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승호 엄마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어요? 망사로 병 입구를 막고 승호 방에 두었지요.
제가 그랬습니다.
"승호야.. 사람이 달팽이도 먹는다."
"나도 알아.."
"어느 나라 사람들이 잘 먹는지 알아?"
"몰라.."
"그 왜 있잖아. 얼마 전에 우리나라랑 축구한 나라.. 빨강, 파랑, 흰색이 국기에 있는 나라.."
"중국?"
승호는 영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며칠 전에 월드컵에 참가하는 32개 나라의 국기가 신문에 실렸길래 지구본을 가지고 그 나라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봤었는데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옆에서 승호 엄마가 귓속말로 가르쳐줍니다.
"승호야, 프랑스"
"프랑스!" 승호는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맞아.. 프랑스 사람들이 달팽이를 잘 먹는다고 해."
그러자, 승호가 심각하게 이야기하네요.
"난 달팽이 데리고 프랑스 안 갈거야!"
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승호 엄마가 쥬스에 넣으려고 얼음을 빼다가 씽크대에 떨어뜨렸는데 그걸 본 승호가 거기서 녹는 얼음이 불쌍하다며 울지 뭡니까? 아니 자기가 마실 쥬스에 들어가서 녹는 것은 괜찮고 씽크대에서 녹으면 불쌍하다?
아이들의 생각은 정말 천방지축입니다. (^_^)
| ★제48회 다이어리 - 아들과의 대화 : 힘의 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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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승호아빠 등록일 2002-06-07 08:52 조회수 1,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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