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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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제 능력으로는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이런 말 많이들 하시지요? 저는 굉장히 잘 쓰는 표현인데, 시시때때로 제가 느끼는 것이나 눈으로 보는 상황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더군요. 딱 이 표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저건 더욱 더 아니고, 작가들은 어쩜 그렇게 적절하게 알맞은 표현들을 잘도 그려내는지… 내가 알았던 어떤 기억이 끄집어 내어 지지를 않아 막 애 닳아 할 때의 그 심정이랄까…
이런 상황은 우리 말에 형용사가 모자란다거나, 말이 충분히 화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느 언어에서나 공통적으로 겪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말은 특히 얼마나 표현들이 다채롭습니까…
저는 종종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데, 우리 말을 쓰고 있는데 영어 표현만 떠오른다든지, 영어를 쓰고 있는데 우리말 표현만 떠오른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아마 제가 그 각각의 표현들을 배웠을 때와 지금의 제 상황이 각각 다른 언어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 미처 대응을 못해서일 텐데, 이럴 땐 아주 미쳐 버릴 것 같습니다. 제가 특히 조심하는 것이 우리말을 쓰면서 영어 표현을 쓴다거나 하는 것인데, ‘저 사람이 미국서 살다 왔다고 티내네.’ 이런 소리가 듣기 싫어서 11년 전 다시 우리 땅을 밟으면서 무의식적으로 제 자신에게 다짐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말로든, 영어로든, 형용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기 일쑤인 저로서는 단 하나의 언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음을 한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제 영어와 국어 구사 능력을 한탄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람들이 제게 어떤 표현을 영어에서 우리말로, 또는 우리말에서 영어로 바꿔 주기를 바랄 때입니다. 제가 뭔가를 번역을 해 보고자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동시통역이나 번역 같은 학문이 따로 있는 거겠지요?
꼭 제 능력을 걸고 넘어지지 않고서도 영어에서 우리말로, 또는 그 반대로 직역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종종 문화의 차이상, 말의 차이상, 사실 직역이 불가능한 경우들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직역보다는 의역이 좀 더 자연스럽게 말에서 말로 연결시켜 주기 위한 바람직한 수단 같긴 하지만, 때로는 이 의역이라는 것이 좀 애매모호하거나 어색한 경우들이 있거든요.
이건 딴 이야기이지만, 배우의 “That’s great!”이라는 감탄사와 함께 스크린 아래로 “따봉!”이 갑자기 나타난다거나, “That’s not funny.” 가 “썰렁해라..” 로 번역되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맞춘다는 의미에서 번역사의 재치가 돋보이기는 해도 때때로 뭔가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저 상황에서는 아무튼 “썰렁해라.” 는 아니다.. 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이죠.
의역이니 직역이니 번역이니…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알맞게 사용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치고 지나가네요. 아무튼 저는 의역을 선호하는 편인데, 상황에 따라 이것조차 불가능한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거 있죠,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 하는 생각… 우리의 역사가, 문화, 우리 민족의 기질? 뭐 이런 것들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말을 하게 하는 경우…
………………………
어느 문화이든 우리는 어차피 이 세상을, 한 시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통되게 겪어 나가는 것들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직역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경우가 되겠지요. 한데,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정말 의역이고 번역이고 직역이고 어떤 “역”을 빌어도 도데체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잘 탈바꿈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밴 다이어그램으로 생각해 본다면, 서로가 공유하고 쉽게 이해하는 것들은 중간에 길쭉한 타원이 되겠고 양쪽의 기우는달, 반달, 내지는 초생달들은 서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되겠지요.
이 둘을 합치면 눈사람 비스무리한 두개의 동그라미 무더기가 나올텐데, 한 언어만 구사하는 동그랗고 이쁜 동그라미의 소유자와, 약간 찌그러졌어도 눈사람의 소유자가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분명 차이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만약 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누릴 수 있는 세계가 음, 세잎 클로버 모양쯤 되려나요? 네 언어라면 네잎 클로버?
이렇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한 언어만 알면서 누려왔을 세계 보다는 한 영역 넓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말을 하면서 영어로만 생각나는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말만 알았을 경우에는 느낄 수 없었던 뭔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거지요.
한 언어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겠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면서 그야말로 또 새로운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것이 되겠고 말이죠.
얼른 나가서 제 2외국어, 제 3외국어를 찾아 아이들과 함께 하시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꾸만 눈 앞에 보이는, 영어를 잘 하면 얻게 되는 것들 때문에 오히려 눈이 멀게 되는 것 같아 오히려 영어 배우기가 모두 중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씩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반면에 저희 딸냄이에게는 중국어나 스페인어 같은 또 다른 언어를 주입시키고픈 욕망을 감출 수도 없습니다.
저는 제 큰 딸의 장래 직업에 대해 사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저 사는데 바빠서 그것까지 생각해 볼 겨를이 없는 미흡한 엄마지요.) 최근에는 그림동화 작가 같은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녀석이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언어적 능력이 없지는 않은 것 같아 둘을 합하면 그림 동화가가 나오네.. 뭐 이런 생각을 어느날 불쑥 했기 때문이지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아이가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까지 되어서 어떤 책을 만들든 간에 여러 사람들의 본질적인 공통사를 끌어 낼 수 있고 또 그러면서도 각각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서 잘 묘사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게다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원하는 데로 몇 개의 언어로 번역까지 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푸후후.. 이러면 안되는데... 녀석을 그런 쪽으로 유도하게 될까 좀 두렵네요. 아무튼 내가 만든 하나의 창작품이 나를 완전히 모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내가 의도한 바가 아닌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 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또 그런 변태의 과정이 있었던 줄도 모르고 흐뭇하게 웃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 한 작가가 모든 번역도 도맡을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아.. 이건 저희 아이가 정말 작가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이겠지만요.
다시 제 본래 이야기의 취지로 돌아가서, 새로운 언어가 내 것이 되면 그 만큼의 세상이 내 것이 되고 그 만큼 내 세상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우리의 마음도 조금 더 너그럽게, 넓게 가질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말을 배우면 정말 딱 그 말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 지배하는 그 사람들의 모든 것을 크게 포용할 가능성이 생기겠지만, 그 또한 내 그릇이 그 만큼 넓어져야 의미가 있는 것일테니까요.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그릇 넓히기의 의미는 무엇보다 나, 우리 가 아닌 사람들도 그네들에게는 나이고 우리임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다이어리 2회 언어로 넓혀가는 우리 안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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