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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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승호아빠님!
도시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시골에서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셨군요.
승호아빠님 글을 읽다보니 우리가족이 여름휴가를 다녀왔던
방태산자락의 자연휴양림에서의 며칠이 생각나 제멋대로
우리가 보냈던 계곡과 산과 물에 승호아빠님 일행이 채소와 과일 따고
고기 구워 먹는 모습이 오버랩시켜 한편의 그림을 완성해 봅니다.
사람이 환경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크고 놀라울만큼 세밀하기
까지해서 의.식.주의 형태를 구분짓고 각각의 개성과 특징을 부여해주며
심지어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감정의 차이까지도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방송작가인 친구 하나가 그런 얘기를 하더군요.
작가중에 어렸을때 시골에서 살았던 친구들이 쓰는 글은 같은 표현을 해도
느낌이 다르다구요.
은빛여울.....이라는 같은 말을 써도 머리속에서 놀빛에 잔잔히 부서지는 햇볕을
아름답다고 상상하며 쓴 글과 직접 그런 개울에서 고기잡고 물장구치며
놀았던 사람이 쓴 글은 표현의 완성도가 다르다고 하더군요.
후자가 훨씬 안정된 분위기와 실제적인 느낌가지도 전달한다고 하네요.
자연속에서 직접 체험의 귀중함을 체감하게 했던 얘기였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서울에서 벗어난적이 없었던 저였지만 대학에
입학해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를 지방에서 것두 농사외엔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는 깡촌(?) 출신쯤으로 쉽게 단정들을 하더군요.
지금이라면 내가 그리 넉넉해 보였을까...하고 흐뭇까지는 아니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법도 한데 그땐 소갈딱지가 밴댕이만해서 시골출신
같다는 말은 무조건 촌.스.럽.다의 간접표현으로 받아들여 발끈해서는
순서울 토박이임을 강조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한결같은 눈썰미에는 부정하기 힘든
진실을 보는 힘이 있더군요.
전 껍데기만 서울사람이었지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방식이나
환경은 서울식의 도시적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순전히 모든게 부지런하시고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아 오셨고 현재도 그렇게
자연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부모님 덕이긴 하지만요.
전 유난히 북한산과 인연이 많은가 봅니다.
현재 살고 있는곳이 북한산의 잘생긴 모습이 그대로 마주 보이는 구파발이고
태어난 곳은 그 반대편의 관악산 자락이었으니까요.
아버지가 조경을 하시는 분이라 나무나 돌 꽃과는 뗄래야 뗄수 없는 천생의
연을 가지고 있었고 태어나 자란곳도 산속에 있던 일본식 별장(요즘의 화려한
별장이 아니라 아주 소박한 하지만 그당시에 흔하지 않던 화장실이 실내에
있던게 자랑할 만했던)으로 지금도 꽃나무와 유실수가 많았던 마당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담도 없이 앵두나무 울이 둘러쳐져 봄이면 집 둘레가 온통
수줍은 연분홍의 꽃담으로 환했던 기억이 나고 여름이면 아침에 눈뜨기 무섭게
이슬이 잔뜩 맺힌 풀섶을 헤치고 간밤에 떨어진 살구를 찾느라 발이 젖는것도
아랑곳하지않고 마침내 노란 황금색 살구를 발견했을 때의 환희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쌍을 이루는 기억은 가을에 어른들을 따라 뒷산에 밤을 땄던 일인데
어른들은 긴 작대기로 밤을 털고 어렸던 저는 낙엽사이에 숨은 밤을 찾아
눈을 부릅뜨고 다녔는데 하도 열중하다 보면 밤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온 정신이 그리로 가있어 그 상태에서 빠져 나오는데
다소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눈도 아프구 말입니다.
여덟살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곳은 산속은 아니었고 농장이라
나무는 물론이고 이때부터는 동물들과의 생활도 시작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길렀던 동물들만 해도 개,고양이, 염소,닭, 토끼,오리,등등
소나 돼지같은 크고 전문적인 손길이 필요한 동물을 빼고는
왠만한 Farm animal은 다 길러 본것 같습니다.
동물이 그럴진대 작지만 식구들이 먹을 먹거리는 어땠겠습니까?
지금도 물론이지만 상추,배추,무,감자,딸기,토마토,고추,파,시금치,
부추,치커리,콩, 깻잎,가지,호박.....너무 많아서 다 열거 하기도 힘드네요.
아빠 엄마가 이일에만 매달려 계신분들도 아니고 아빠는 겨울철 조경공사가
힘들때 외엔 몸이 세네개라도 함들 만큼 바쁘시고 엄마도 늦공부와 교회일,
수영으로 일주일내내 얼굴 보기도 힘든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먹거리를 위해 무농약과 직접 만든 퇴비를 써서 농사를 짓고 계십니다.
이렇게 가꾼 채소는 가족만 먹는게 아니고 이웃들에게도 아낌없이 나누는 덕에
두분이 안계실때라도 농장에 가보면 상추며 부추며 따고 베는 분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28년을 살다가 결혼을 해서 처음으로 아주 열악한 환경의
주상복합건물에 살게 되었습니다.
일단은 주인이 소문난 못된 성격의 소유자였고 당시 독서실을 운영하면서
같은 건물1층에서 살고 있었으니(이때의 기억은 다시 하고 싶지도 않네요...)
생활과 일터가 분리되지 않아 생기는 스트레스에 바로 앞에는 밤낮으로
불빛 환하고 시끄러운 단란주점에...
2년을 그것에서 살면서 참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비록 손해를 봤지만 아무 미련 없이 그곳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린벨트 덕에 개발이 되지 않아 동네엔 약국도 비디오가게도 ... 차라리
있는걸 열거 하는게 빠르겠네요. 짜장면집 하나, 미장원 하나, 수퍼 두군데,
치킨집 하나 다들 먹거리는 스스로 농사짓는 덕분에 흔한 채소가게 하나
없는 그런 곳입니다.
저두 이집에 이사온지 햇수로 4년째 뒷마당에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올해는 뒷마당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주목을 공사에 쓰시려고 아빠가
여섯그루를 빼가신 덕에 부부가 사흘을 힘과 시간과 즐거운 상상을 투자해서
아이들 모래 놀이터와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답니다.
틈만나면 맨발로 앞뒤 마당을 종횡무진 하는 시온이 덕분에 집안은
쓸고 닦는 그 순간을 빼면 대부분 모래로 서걱거리고 어느날은 침대에까지
뒷마당 모래가 딸려오는 경우가 있어 새로운 골칫거리가 되긴 했지만
늘상 맨발인 아이에게 신발 신으라는 큰소리를 치던 나에게
'엄마도 신발 벗어'라고 천진하게 말하던 시온이를 보던날
내 방식으로 아이를 규정하고자 했던 집요한 욕심을 깨끗이 포기하기로
결심했답니다.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진 않긴 하지만...
말 그대로 시골스럽지요?
대체로 만족하지만 아이들과 씨름하며 집 치우며 사는게 힘들어 보였는지
주변에서 가끔은 그런 말도 하더군요. 쉽게 살라고...
하지만 계절마다 색깔을 달리해 마당을 빛내주는 꽃들을 가꾸는 것도
식탁에 싱싱하고 건강한 푸성귀가 오늘때마다 느껴지는 소박한 행복도
포기하기엔 너무 소중한 것들이라 우리 가족은 이런 서울 속의 시골 생활을
여건이 되는한 계속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승호 아빠님 글을 보다가 이런 저런 생각의 조각들을 모으다 보니 글이
좀 길어 졌네요. 오랜만에 어릴적 생각을 떠올리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해준
승호빠님 고마워요.
승호아빠님의 글입니다.
>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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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쑥쑥에서 주관한 박람회가 열린 날인 17일, 저는 승호, 승호 엄마와 함께 시골에 다녀왔습니다. 시골이라고 해서 아주 먼 곳은 아니구요, 경기도 광주의 한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회사 동료의 본가가 그곳에 있는데 올해 들어 동료의 어머니께서 놀고 있는 밭에다가 수박, 참외, 고추, 상추, 아욱, 노각(늙은 오이라고도 하는데 전 잘 모르는 채소입니다), 옥수수 등 갖은 채소들을 심어놓았다면서 동료가 한 번 수확하러 가자고 그랬거든요. 동료의 부모님께서는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셔서 농사를 하지 않는데 밭을 마냥 놀리는 것도 뭐해서 심심풀이로 작물을 심으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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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그래도 어렸을 때부터 친가나 외가 할 것 없이 농사를 짓는 집이 없어 방학이 되어도 시골에 가 볼 경험을 갖지 못 했던 저는 다 커서도 그런 곳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지요(저의 친, 외가는 모두 대구시에 있습니다). 승호는 저 보다 더하지요. 전 그래도 흙이 있는 골목길에서 동네 아이들이랑 하루 종일 뛰어 놀며 유아기를 보낼 수 있었지만 승호는 태어나면서부터 콘크리트 아파트 건물들에 둘러 쌓여 유아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잘 모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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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9시에는 출발해야 하는데 8시가 넘도록 깨어나지 않는 승호에게 귓속말로 "승호야, 수박 따러 가야지.." 하니까, 승호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응..." 합니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차에 올라탔지요. 그 날의 일정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밭에서 수박, 참외 등을 따고 개울가에 앉아서 고기 구워먹고 좀 쉬다가 오는 거지요. 아주 간단한 일정으로 참여하는 가족은 총 다섯 가족이었습니다. 전부 다 우리 회사 동료들로 한 가족만 총각이고(이 총각은 애인을 데리고 왔어요), 나머지 가족은 우리 집만 빼고 아이가 둘 씩인 4인 가족입니다. 아들만 둘인 가족이 둘, 딸만 둘인 가족이 하나, 아들만 하나인 우리 가족, 그리고 예비 가족 한 쌍, 참여자들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다 비슷한 또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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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 동료의 본가에 모여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사실 회사 동료들의 가족들과는 전에 식목일 때 만나 함께 논 적이 있어서 구면입니다.), 밭으로 갔습니다. 약 250평 정도 되는 밭에는 정말 갖가지 채소들이 심겨져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니까 우선 덩치가 큰 수박이 보였고 샛노란 참외 역시 눈에 띄더군요. 아이들은 저마다 잘 익은 수박을 고르겠다고 밭으로 뛰어 들었고 저를 포함하여 시골 생활 경험이 별로 없는 어른들도 약간은 긴장된 표정으로 잘 익은 수박이나 참외를 따러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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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박 중에는 참외 만할 때 말라서 죽은 것도 있었고 아이들 머리 통보다 크게 자란 것도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가게에서 파는 것들보다는 크기가 작았습니다. 동료 말로는 그다지 좋은 씨앗을 쓰지 않았고 관리를 별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그 밭에 있는 모든 채소들은 농약의 맛을 보지 않았다는 최대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지요. 한 형수님은 병원 직원들과 나누겠다고(간호사시거든요) 고추를 열심히 따시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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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수박을 품에 안고 옮기느라 뒤뚱거리던 승호의 모습을 사진기로 찍은 후, 승호를 불러 고추를 같이 따기도 했습니다. 승호는 고추를 그냥 힘껏 뜯어내다가 꼭지는 가지에 그대로 붙여 놓고 몸체만 수확하는 일을 되풀이하기도 했습니다. 승호가 딴 고추를 나중에 집에 가져와서 저녁 식사 때 먹었는데 맛 좋더군요. 참외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엄청 달구요. 노각은 승호 엄마가 어떻게 요리하는 줄 모른다고 해서 수박, 참외 몇 개와 함께 본가에 갖다 드렸는데 저희들이 직접 따왔다고 하니까 어머니께서 아주 좋아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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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에서 작물을 수확한 후에, 미리 자리를 마련해두었던 다리 밑 개울가로 갔습니다.
> 돌을 모아 둘러 세운 후 안에다가 번개탄을 넣고 불을 지피고 나서 위에다가 석쇠를 놓으니 완벽한 불판이 되더군요. 그 위에다가 쇠고기 안창살을 올려 놓고 꽃소금을 뿌리니 지글거리는 고기 위로 연기가 솟으면서 맛난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저는 잘 몰랐는데 그 안창살이라는 것이 엄청 비싸다면서요? 하지만 저희들은 동료의 어머니께서 근처에 있는 목장에 가서 1kg에 5천원씩 주고 푸짐하게 사다 주셔서 거의 공짜로 먹은 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같은 마을 사람이라도 늘 그렇게 주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어쩌다가 한 번 이라는데 그 행운을 저희가 누린 것이지요. 하여간 그 날 질리도록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고기 먹으면서 개울에 담가두었던 음료수, 술, 그리고 우리가 수확한 과일들도 먹었습니다. 아! 또 있군요. 우리를 초대한 회사 동료의 아내가 최근에 배웠다면서 메밀 국수를 말아줘서 고기 먹고 나서의 느끼함을 싹 없앨 수 있었습니다. 하여간 그 날 먹을 복 터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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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말씀드리자면, 개울 건너편에는 마을 사람들이 LPG 가스 통과 커다란 통을 가지고 와서 보신탕을 끓여 먹으면서 화투를 치고 있었는데 회사 동료와도 다 잘 아는 고향 선배들이었어요. 그 분들이 진짜 오리지날 개고기를 저희에게 나눠주시더군요. 저는 배가 너무 부른 상태인데다가 개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먹지 않았지만, 개고기 좋아하는 동료들은 '쇠고기는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라면서 이미 부른 배를 움켜쥐면서도 먹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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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은 개울가에 풀어놓으니까 완전히 자기들 세상 만난 듯이 놀았습니다.
> 처음에는 쭈뼛거리더니 결국엔 물 속에 들어가서 뛰고 물 튀기고 축구공 던지고 물잠자리 잡으러 다니는 통에 다 놀고 나서는 모두들 옷을 갈아입어야 했습니다. 승호를 비롯해서 다른 아이 한 명은 그 와중에 가벼운 부상을 당해서 저희가 준비해간 밴드 신세를 지기도 했구요.
>
>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놀다가 개울에 둑을 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키거나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서 돌을 가지고 와서는 조그마한 둑을 쌓기 시작하는 거에요. 둑을 쌓아 물을 가두고 그곳에서 첨벙거리며 노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회사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 '아이들에게는 우리 인류가 먼 옛날부터 이룩해온 문명의 피가 흐르고 있다. 거친 자연으로부터 종족을 보호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해 온 인류의 자산이 유전자를 통해 되물림 되고 있는 거다. 봐라! 놀면서도 문명을 건설하고 있지 않냐?'
>
> 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너무 거창했습니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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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호는 물잠자리 날개를 두 손가락으로 꼭 쥐고서 물잠자리를 집에 가져가서 키우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그 때가 근 한 달 이상 키우고 있던 달팽이를 놓아주기로 저랑 합의한지 얼마 안 된 때였거든요(이 합의 이끌어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달팽이를 대체할 다른 존재를 탐색해오던 승호에게 물잠자리가 걸린 것입니다. 그런데, 물잠자리를 어떻게 키웁니까? 마루에다가 그냥 풀어놓을 수도 없고 말이지요. 결국, 물잠자리는 달팽이와 달라서 날아다니지 못 하게 하면 죽는데, 조그만 곳에 가두어놓으면 날 수 없지 않느냐 하는 식으로 겨우 설득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요즘은 금붕어 키우고 싶다고 저에게 조르고 있습니다.
>
> 집으로 가자고 하니까 아이들은 더 놀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 즐겁겠지요. 왜 안 즐겁겠습니까?
> 마구 돌아다니는 차 걱정할 필요 없지, 마루에서는 뛰지 말라는 부모의 잔소리도 없지, 옷 젖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물놀이할 수 있지, 배고프면 옆으로 뛰어 나와 실컷 먹을 수도 있지... 그야말로 천국 같이 느껴지지 않았겠습니까?
>
> 그래서, 가을에는 우리가 놀던 곳에서 보이는 조그만 산으로 밤 따러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마을에는 밤 딸 인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많은 밤이 그냥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 때는 음식 준비하는 부담을 덜고자 김밥이랑 치킨이랑 주문해서 가자고 했지요.
>
> 그나저나 부럽더군요. 회사 동료가 눈 앞에 보이는 나무들을 보면서 '저게 내가 초등학교 때 심은건데 저렇게 커서 숲을 이루었어'하고 이야기할 때 나에게도 이런 고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습니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은 이런 면에서 불쌍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어릴 때 뛰어 놀던 골목길이 있긴 하지만, 내가 심은 나무가 있고, 내가 물장구 치던 개울이 있고, 내가 먹을 음식물을 품고 있는 밭이 있는 그런 고향은 아니거든요. 더구나, 그 골목길 마저 옛날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는 보장도 할 수 없고 말이죠.
>
> 그래도, 언제 한 번 승호를 데리고 제가 어렸을 때 뛰어 놀던 그 골목에 가볼까 합니다.
> 가 보고 싶네요.
>
> (승호는 19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20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게 되었으나, 2002년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아주 가끔 영어 비디오를 보거나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
> 덧붙임) 그 날 모임이 있은 후, 회사에 갔더니 동료가 저보고 어떻게 와이프를 만났느냐고 묻더군요. 부부는 닮는다고 하지만 저희 부부는 닮아도 너무 닮아서 만난 사연이 궁금하다면서 말이지요. 전 그냥 친구 부부의 소개팅으로 만났다고 이야기해주었죠. 그러면서, 농담 한 마디 했습니다. 아내를 20대에 신부로 만들어주기 위해 29살이 되는 해의 11월에 전격적으로 결혼을 했는데 아내가 그 고마움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지요(저희 부부는 동갑입니다). 그러자, 회사 동료가 그러데요.
>
> '에이, 와이프가 중용씨를 구제해준 것 같은데?'
>
> 94년 11월 초, 승호 엄마와 소개팅 했던 날이 생각납니다. 그 때 저희 둘은 모두 28살이었는데 그 흔한 애인 한 명 없는 초라한 싱글 신세였습니다. 둘 다 불쌍했었지요. 크크.. 그리고 나서 1년 뒤, 결혼할 때쯤 승호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
> '중용씨 처음 보았을 때, 나 처럼 웃을 때 눈 안 보이는 사람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
> 어쩌면, 저희는 부부가 되어 닮았다기 보다는 만나기 전부터 이미 닮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승호 역시 웃을 때 눈이 전혀 안 보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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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사는 시골가족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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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시온맘 등록일 2002-07-24 19:20 조회수 1,0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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