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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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승호랑 수학 공부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제가 어찌어찌 하다가 유아영어교육 사이트인 쑥쑥의 회원이 되었지만, 사실 승호를 직접 가르칠 생각을 했던 분야는 영어가 아니라 수학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제법 비장한 각오를 했었던 적도 있지요.
'승호 수학 만큼은 내가 해결한다.'
유아기와 초등학교 시절에 승호가 수학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 주 목표였고, 중학교 이상에서는 승호가 알아서 공부하되 수학의 각 분야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몇 테크닉만 내가 가르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승호가 학원에 다닐 필요도 없고 과외 받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는 생각이었지요. 정말 당돌한 생각이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저의 생각들이 얼마나 무모하고 실천하기 힘든 것인지 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중/고등학교 때 수학 책을 들고 직접 가르치는 일이 유아기 때 수학적 사고 방식을 키워주는 일 보다 쉽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중/고등학교 수학은 제가 배웠고 공부를 해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그나마 방향 잡기가 수월한 반면, 어린 아이에게 수학적 사고 방식을 가르치는 일은 제가 해본 적도 없고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수학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굉장히 광범위한 개념이므로 정의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저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수학적 사고방식이 아니냐 하고 정의하고 있지만 그게 옳은 생각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이렇게 개념 정립조차 하기 힘든 것을 가르치겠다고 작정했었으니 이런 상황을 두고 뭘 모르는 사람이 사고 친다고 하나봅니다. 마치 제가 쑥쑥에 아빠들이 거의 없는 줄 모르고 무턱대고 들어왔다가 털썩 주저 앉은 것과 마찬가지로요.
승호가 태어났을 때 막연하게 품었던 이런 생각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공부였습니다. 과연 무엇을 보여 주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주어야 승호에게 수학적 사고방식이 체질화될까를 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보다 이런 고민을 먼저 했던 선배 부모들의 노하우를 공부해야 했던 것이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생각 보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깝게는 여기 쑥쑥에서 수학에 대해 좋은 글을 올려주시는 서로맘님도 계시고(서로맘님이 쓰신 책도 유아 수학 교육에 관한 입문서로 여기고 열심히 보았고 지금도 생각날 때 마다 펼쳐봅니다), 관련 인터넷 사이트도 여럿 있더군요. 그리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보면 왜 그렇게 수학에 관련된 책들이 많습니까? 특히 요즘 들어 수학 관련 책들이 많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수학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는 사실은 곧 그런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승호가 벌써 6살입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학교에 가야 합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은근히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승호의 유아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해주어야 할 것을 제대로 해주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아 수학 교육에 대한 공부를 거의 못 한 상태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사이에 승호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거든요. 특히, 요즘 승호의 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것을 보게 되니까 더 신경이 쓰입니다.
며칠 전입니다.
승호와 함께 카드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포켓몬 카드, 포켓몬 말, 주사위, 그리고 게임판을 가지고 노는 게임인데요, 저는 별로 재미없는데 승호는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저녁 마다 해달라고 조르는데 조금 성가시기도 합니다. 게임 규칙은 간단합니다.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수 만큼 전진하고 해당되는 칸에 쓰여진 명령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싸움을 하라는 명령이 써있는 칸에 도착하면, 싸움을 해야 되는데 자기가 가지고 있는 포켓몬 카드를 내고 주사위를 던져 어느 것이 전투력이 더 센지 판가름하는 것이지요. 이긴 사람이 그 카드를 갖게 되고 최종적으로 카드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머리를 써야 합니다.
일단, 주사위를 던져 5라는 숫자가 나왔다고 치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말을 움직이는 것이 유리한지 왼쪽으로 움직이는 것이 유리한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거 판단하려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다섯 칸 가면 어떤 명령이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거든요. 싸움을 해야 하는 칸인지, 아니면 보너스 카드를 얻을 수 있는 칸인지 보고 나서 판단해야 하지요. 글씨를 못 읽는 승호는 칸의 색깔로 명령을 구분하더군요. 이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수도 고려하고 게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고려해야 하구요. 저 같은 어른에게야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6살짜리 승호에게는 제법 부담이 되는 생각거리들입니다.
싸움을 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 저랑 승호는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는 카드를 내놓습니다.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카드에 쓰여진 수와 주사위 수를 더 해 누가 더 큰가 비교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덧셈과 뺄셈의 개념이 들어가겠지요? 승호는 5 더하기 3, 4 더하기 2와 같이 합쳐서 10이 넘지 않는 뎃셈은 즉각 해냅니다. 승호의 점수는 승호 스스로 계산하게 하고 반면 제 것은 제가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겼는지는 승호에게 판단하게 합니다. 즉, '승호가 12이고 아빠가 14라면 누가 이긴거니?' 하는 식으로 묻는 거지요.
그런데, 가끔씩 승호는 8 더하기 4와 같이 합이 10이 넘는 덧셈도 해야 합니다. 이 때는 즉각 답을 내지 못 하는 것이 현재 승호의 수학 수준입니다. 이 경우 승호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계산기인 손가락을 동원하더군요.
8개의 손가락을 자신있게 펴든 승호는 거기다가 2개를 더 첨가해서 자신의 손가락 10개를 다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어쩌나 하는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아직도 2개를 더 더해야 하는데 손가락이 없으니 어쩌나 하는 거지요. 잠시 뒤에 승호가 저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아빠, 손가락 좀 빌려주세요!"
푸하하.. 웃기지만 대견스럽기도 합니다. 남에게 도움을 얻어서라도 답을 구해내겠다는 의지가 돋보이니까요. 저는 가만히 제 손가락 두 개를 승호 손가락 옆에 붙여줍니다. 승호는 열심히 셉니다. 그러더니,
"12점"
하고 소리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진법을 쓰면 구태여 남의 손가락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쉽게 답을 구할 수 있겠지만 승호는 아직 그 수준이 아니거든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답을 구한 것입니다. 손가락을 써서 계산하는 법을 충분히 익히라는 뜻에서 저는 일부러 손쉽게 계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몇 번 하고 나니까 승호는 이제 저의 손가락을 빌리지 않고도 계산을 하더군요. 10개를 넘는 수에 대해서는 손가락이 있다고 치고 계산을 하는 거지요. 은연 중에 승호는 10진법을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바라던 바지요. 비록 자기는 인식을 못 하더라도 말입니다.
바로 며칠 전에는 승호가 저를 감동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승호 사촌이 놀러 와서 할머니께서 사주신 디지몬 카드를 자랑하는 겁니다. 승호는 자기가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할머니가 사주었다는 말에 약간 삐져있는 것 같았어요. 전 옆에 앉아 있다가 카드가 도대체 몇 장이나 되는지 세어 보자고 제안했죠.
먼저, 10장씩 카드를 묶었습니다. 그렇게 4 묶음을 만들었거든요. 처음에 2 묶음을 만들었을 때는 20장이라고 정확히 대답하던 두 꼬맹이가 4묶음을 만드니까 40장이 아닌 14장이라고 말하더군요. 책에서 읽은 대로입니다. 아직 십진법에 대한 개념이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이 넘는 수를 세는 것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는 뜻도 되겠구요. 그래서, 숫자를 더 세는 것을 나중으로 미루고 제가 승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우리가 센 40장이 있거든? 그런데, 저기 안 센 카드가 아직도 많이 있네? 저 카드를 세지 않고 40장 보다 많은지 적은지 알 수는 없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러자, 승호가 세지 않은 카드를 모아서 쌓더니 40장의 카드와 높이를 재는 거에요. 그러더니, 세지 않은 것이 40장 보다 많다고 결론을 내리더군요. 캬.. 저 감동 먹었습니다. 승호가 높이를 재기 위해 카드를 쌓는 동안 전 가벼운 흥분을 느꼈습니다.
'아니, 승호가 해결 방법을 아는 걸까?'
그런데, 그것이 현실화되자 무척 대견스럽고 기쁘더군요. 승호 보다 어린 대다수의 아이들도 이미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전 승호가 그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리라고는 기대를 안 했었기 때문에 더더욱 기쁘더라구요. 역시 기대치를 낮추면 행복이 쉽게 다가오나 봅니다. 어쩌면 승호는 제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는 사이에 많이 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승호야.. 너 이거 어떻게 알았어?" 하고 제가 물으니까,
"나 옛날에 배웠어. 5살인가 4살부터 알았어." 그럽니다.
승호 말은 배웠다는 겁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르지만 배웠다는 거에요. 배운 것을 기억해서 문제를 풀이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으로 문제를 풀이했다면 더 신통했겠지만, 상황에 맞춰서 배운 것을 적용한다는 것 자체만도 칭찬받을 일 아니겠어요?
아무튼 이 일을 계기로 전 승호에게 본격적으로 수를 세는 법을 가르쳐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럴 준비가 승호에게 되어 있다는 확신이 든 거지요. 그래서, 카드 놀이를 할 때 다섯 개씩 묶어서 세는 법, 열 개씩 묶어서 세는 법들을 천천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포켓몬 카드나 디지몬 카드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많을 거에요.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런 카드를 가지고 노는 것을 그리 반기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 자신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러한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카드들은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꾸 가지고 놀려고 하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앞에서 살펴본 것 처럼 활용하기에 따라 만화 카드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교구가 될 수도 있거든요.
전 요즘 승호랑 카드 놀이하면서 수학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저희 집에도 친지에게서 얻은 각종 교구들(비싼 것들도 있죠)이 꽤 있는 편인데 사실 이것들은 승호가 잘 안 가지고 놉니다. 처음에 한 두 번 가지고 놀다 말더라구요. 돈 많이 주고 사야 하는 교구가 아닌 승호가 좋아하는 값싼(이게 포인트죠. 껄껄)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도 배울 것은 다 배운다는 생각이 드니까 왠지 기분 좋은 거 있죠?
(승호는 1997년 3월생 남자아이로 2001년 9월초부터 집에서 영어를 접하게 되었으나, 2002년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 외에는 특별한 활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집에서는 아주 가끔 영어 비디오를 보거나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있습니다.)
덧붙임)
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 별루년년첨록파
(비 개인 긴 언덕에는 풀빛이 푸른데
그대를 남포에서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대동강 물은 그 언제 다할 것인가,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위의 한시를 기억하시는지요? 제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한시로 고려시대 사람 정지상의 작품인 '송인(送人)'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전문을 외울 수 있는 시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시'라는 분야는 굉장히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제대로 외우는 시가 없는데 이상하게도 이 시 하나만은 배울 때 쉽게 외워지더니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네요.
지난 7월 마지막 날 저녁, 처형네가 이민을 갔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처형네 가족을 떠나 보내는데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나더군요.
옛날처럼 이민 갔다고 해서 만나기 힘든 것도 아닌데, 영 섭섭하더군요.
지금도 출국 심사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다가 틈나면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던 처형네 가족이 생각납니다.
"언제 다시 형 만날 수 있어?" 하고 묻던 승호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촌 형을 이제 자주 만나기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처형네가 떠나간 후 많이 울었습니다. 헤어진다는 느낌을 승호가 벌써 아는가 봅니다. 승호엄마가 내년 여름에 이모 만나러 가자고 하니까 승호는 이번 겨울에 가면 안 되냐고 하더래요.
처형네가 타지에서 잘 적응하고 건강하게 생활할 것을 바라면서, 이제부터라도 비행기 삯을 꾸준히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년 여름 휴가는 처형이 있는 나라로 가자는 굳은 결의를 해봅니다(이를 위해 올해 휴가는 과감하게 취소 또는 축소할 예정입니다).
| ★52회 다이어리: 아빠, 손가락 좀 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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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승호아빠 등록일 2002-08-06 08:26 조회수 1,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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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 다이어리:自重自愛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길 고대..
★52회 다이어리: 아빠, 손가락 좀 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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