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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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이가 내 눈치를 보면서 부엌의 내 서랍을 슬쩍 열면서 칼을 꺼냅니다. 사무실용 칼입니다. 제가 그걸 보면서,
'그 칼 쓰지 말아라.'
'제가 쓰는거 아니구요, 누나가 가져오래요.'
'누나는 누나 것 있는데, 엄마 것 가져가서는 잘 갖다 놓지도 않고..'
'갖다 놓을거예요.'
...
조금 후에, 자랑이가 칼을 가져다 놓고는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갑니다.(참고로, 화장실에 약품캐비넷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안 들렸는데, 조심스럽게 나와서는
'Promise, you won't get mad at me?'라고 합니다.
'아니, 화 안내지.'라고 말은 하지만, 제 얼굴에는 벌써 이녀석이 뭔가 사고를 쳤구나 하고 긴장을 한 표정이 역력합니다.
'엄마 칼 가져 가다가 손 베었어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화내야 할지 잠시 망설이는 나..
'저런 아팠겠구나..'라는 말보다, '그게 엄마 말 안듣고 조심 안 한 결과야'라고 아이를 가르치기 바쁜 말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에구에구..곧 후회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
많이 벤 것 같지는 않으니, 두고 보자고 했는데, 한달 전쯤에 또 몰래 부엌에 들어와서 그때는 잘 드는 식칼로 뭔가를 자르려고 시도하다가 손가락 마디 부분을 베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제가 기쁨이 친구집에서 그 친구의 영어를 가르치고 있던 시간이었는데, 제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다급한 소리로 울먹이며..
'엄마, 나 카아~ㄹ 쓰다가 베어서 피나요.'
'저런, 아빠는 뭐 하시니?'
'컴퓨터에서 일 하세요.'
'어서 내려가서 아빠한테 말씀 드리고 도와달라고 해.'
'싫어요. 엉엉! 아빠가 화내실 거예요. 엉엉!'
'자랑아, 아빠가 화 안 내셔. 카드를 가지고 놀다가 종이에 손을 베는 경우는 많어. 걱정하지 말고 어서 아빠한테 도와달라고 해.'
'괜찮아요. 내가 반창고 붙였어요.'
내내 마음이 안 놓여서,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 자랑이가 카드 놀다가 손을 베었대. 좀 봐줘.'
'저런, 알았어.'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온 후 자초지종을 물으니, 카드에 벤 것이 아니라, 칼에 벤것이었습니다. '카아~ㄹ'이 '칼'을 발음하는 '교포식'발음이었던거죠. 저는 아이가 '카아~ㄹ'이라고 하면, 'car'이나 'card'가 생각이 났던 거였구요. 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나중에, 허락도 안 받고 칼을 꺼내서 쓴 것을 알고는, 그리고 혼날까봐 아빠한테 말도 못한 것을 알고는, 야단을 치지도 못하고..아무튼 참 난처한 일이었습니다.
그때 다쳤던 손가락이 아직도 부어올라 있었고, 자랑이는 그 부분이 어디에 닿을 때마다 아프다고 합니다. 당장 의사를 만나러 갔는데, '관절염'을 의심하는지, 혈액검사에, 엑스레이에, 항생제처방까지 받았습니다. 그렇게 부어올라 있는 것을, 아이의 손톱을 깎아주면서도 몰랐던게 내내 쓰라리게 가슴이 아파지더군요.
그 다음날, 학교에 늦는다고 연락을 하고, 자랑이와 함께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엑스레이를 먼저 찍고, 혈액검사실로 갔습니다. 가면서, '독감예방주사 보다는 조금 더 아플지 몰라. 이거는 주사를 맞는게 아니라 혈액을 빼는 거니까 시간도 좀 더 걸릴거고. 조금 아플지도 모르지만, 자랑이는 잘 할 수 있어. 엄마도 한국에서 혈액검사를 하는 아이들을 봤는데, 겁이 나서 미리 우는거지, 실제로 혈액을 채취할때는 안 아퍼서 웃거든. 칼에 베었을 때도 안 울었는데, 이건 그것보다도 안 아파. 정 아프면 울어도 되지만, 팔은 움직이면 안돼..주절주절..' 노파심에 열심히 아이를 안정시켰습니다.
정작 아이는 혼자 씩씩하게 들어가서는 씨익 웃으며 나옵니다. 푸핫! 내 아들이 저렇게 당당하게 컸다니..싱거우면서도 자랑스러운 이 고슴도치 에미..
아무튼, 캐나다에 와서는 어딜 가도 아이들이 떼쓰거나 울거나 소리지르거나 싸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으니까(캐나다 자랑?)..심지어 검사실에서 아이의 혈액을 채취하는데도 아이가 웃으면서 들어가서 웃으며 나옵니다.
'엄마, 이 검사 다 하면 얼마 내야돼요?'
'돈 안내.'
그러고 보니, 의사를 보는것, 모든 검사들이 일체 무료였더군요. 당연한거지만, 자랑이의 질문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한달에 108불씩 꼬박꼬박 의료보험료를 내지만, 보험이 없었다면, 어딜 가도 엄청나게 비싼 의료비들을 어떻게 감당했을까...캐나다의 의료혜택도 점점 그 질이 저하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그저 검사한 것에 아무 이상없이, 약 잘 먹고 나면 손가락이 깨끗이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