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달에 'Volunteer Workshop'에 참석해서, 새이민자들을 돕는 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받은 책자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어서 정리를 해볼까 합니다. 저 자신도 캐나다에 이민와서, 문화와 언어 적응을 잘 못해 몸부림치며 힘들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냥 이민의 삶이 힘든 것인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든건지, 왜 힘든건지, 나만 이렇게 구차하고 구질구질하게 힘들어 하는건지..그 모든 답을 모른 채 그냥 그 단계들을 밟아 왔더랬습니다.
첫 6개월 동안은 많은 것들이 다르고 신기한 것들도 많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꿈에 부풀어서 아무 생각없이 물건들을 사 들이고, 관광책자에 나온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구경을 다녔고,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언어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지기도 했습니다.
1년이 지나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가져온 돈은 떨어져 가고, 아직도 영어는 도통 늘지를 않고, 어딜 가나 낯선 백인들 뿐이고..거의 일년 내내 비는 줄창 내리고.. 이런 우울한 기분으로 줄곧 보내곤 했습니다. 이민 3년 째에 접어들면서, 주변에 이웃이라는 것도 생기고, 수퍼마켓 캐셔들의 말도 조금 들리기 시작하고, 텔레비젼의 뉴스도 아주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하고 했지만, 아직도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불확실하고 불안하고 게다가 고향 생각에, 부모님, 형제들, 친구들과의 대화 등이 그리워서 못견딜 지경이었지요.
5년 정도 지나니까, 조금 더 편안해지기 시작하고, '친구'가 생기기 시작했고, 남편의 직장에서의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영어를 자유스럽게 구사하더군요.
8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유색인종 소수민족으로 밴쿠버에서 안정이 되어가는 저와 제 가족들의 모습을 봅니다. 주류를 이루는 백인들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기가 힘들고, 또 어울리고 싶지도 않지만,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나름대로 우리만의 색깔을 가지고 우리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저희 아이들에게 부모인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색과 맛과 생각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지요.
자라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끔씩 미래를 상상해 봅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있을 때에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만큼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만들어 가겠지. 내 아이들은 많은 부분 캐나다인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과 저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쏟아서 아이들에게 한국인 속사람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제가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는, 제가 처음 이민을 와서 아무런 도움도 없이 얼마나 힘들었던가를 알기에, 처음 이민을 와서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분들께 최소한 왜 그분들이 힘든건지, 어떻게 극복하고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나누고, 고통과 고민과 좌절을 줄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입니다.
제가 봉사를 하려는 부분은 '통역'입니다. 자질구레한 일 처리조차도 언어의 장벽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저도 아직 잘 못하는 영어이지만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다면 하고 싶다고 자원을 한 것이지요. 일을 하면서 저도 더 폭넓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구요.
이민자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에게 나누어 준 책자의 한 부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다음의 다섯 단계는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짧게든 길게든 아니면 대충 비슷한 시기동안이든 겪어 나가게 되는 과정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1단계: 허니문 단계 (도착부터 6개월까지)
처음 새로운 나라에 도착을 한 이민자들의 첫 단계에서 이들은 대개 기대와 낙관주의적 생각을 가집니다. 새로운 시작,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기대로 인해 새로이 정착하는 나라에 대해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거의 모든 노력이 자신들을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몰립니다. (구직, 영어학습, 집 구하기등)
2단계: 문화 충격 단계 (6개월부터 1년)
문화 충격에 새 이민자들은 압도됩니다. 혼동, 좌절, 향수, 슬픔, 분노등의 감정들을 경험하게 되지요. 모국과는 너무나 다른 문화들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 생활, 사회적인 관습들, 가치관 등.. 이런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새 이민자들은 소외감을 느낍니다. 인종차별과 주류문화에 대한 무지 등으로 인해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3단계: 표면적 적응 단계 (1년부터 3년)
이 단계에서는 이민자들의 언어능력이 향상되고, 주류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주위 환경에 적응이 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모국 문화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4단계: 정신적 분리감, 우울증, 좌절감의 단계 (3년부터 5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는 것 같이 보이나, 자존감의 붕괴와 자신의 능력이 거부되는 느낌을 경험합니다. (예: 학사,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공장에서 부품조립을 하고 있을 경우등). 이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자신들의 목표를 성취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낍니다. 향수, 언어능력의 부족, 그리고 가족간의 불화 등으로 인해 이러한 고립감이 증폭됩니다.
5단계: 문화적 융합 또는 수용 (5년에서 7년)
이 단계에서는 새로운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수용이 됩니다. 따라서 이민자들은 변화하기 시작을 하고, 그들의 가치관을 조정합니다. 영어로 자신들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며, 캐나다 문화 주류의 사람들과도 같은 문화적 수준으로 편안하게 느끼고, 이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도 친구가 됩니다.
이렇게 편안하게 이민생활에 적응을 하는데 5년 이상, 길면 7년이 걸린다는 이야기이지요. 언어를 쉽게 습득을 한 사람이라도 한국에서처럼 편안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친구가 없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꽤 오래 갑니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해도, 내 인식 깊숙이에 자리잡고 있는 나의 뿌리와 연관된 '관계'는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위의 단계들이 읽는 사람에게는 그냥 편하게 읽혀질지 모르나,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는 뼈가 시리도록 아픈 고통으로 경험이 됩니다. 그 적응과정에서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도 생겨나며,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자살까지 시도하는..치유되기 힘든 상처들이 많이 생깁니다. 그 상처들을 잘 아물도록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고 가족간에, 이웃간에 도우면서 이해하며 사는 경우에 이민생활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만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민생활이라는 것이 한 사람을, 한 가정을 치고, 깎고 해서 더 둥글고 새로운 그것으로 다듬어 가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아팠던 각각의 이민적응 단계들을 소중하게 생각을 합니다. 남편과 저와 제 두 아이들이 한국에서 살았었으면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경험들을 이곳에서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아프고 외로운 중에도 서로 함께 해 주고, 사랑하고, 격려하고, 보살피고, 위로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우리 가정을 이렇게 강한 끈으로 묶어 주었으니까요.
쑥쑥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