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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환자와 노모

글쓴이 빨강머리앤

등록일 2012-08-14 16:33

조회수 3,344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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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임심했을 때 입덧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휴직후 복직이 제가 일하던 중환자실이 아니라 응급실이라는 거였어요. 중환자실은 두명의 환자를 집중케어 하는 곳이고 응급실은 다수의 환자를 쫙 훑듯이 보는 곳이라 꼼꼼히 간호하던 습관이 붙은 저로서는 너무나 힘든 환경이었지요.

그 응급실이란 곳에는 별별 사람이 다 와요...

한번은 혈당검사를 해야하는 내 환자들을 한바퀴 돌며 검사했는데 아주 작은 바늘로 찔러 피를 낸 뒤 형당수치를 재는 거였거든요. 검사를 다 한 바늘들이 트레이 위에 뒹굴고 있었는데 제가 그 중 하나에 찔린 거예요.

저는 그 때 저는 임신 5개월. 그 바늘들의 주인은 간염환자. 에이즈 환자. 매독 환자....

같은 일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어 아이 생각하고 다시 휴직을 했었답니다.

 

그 때 40대의 에이즈 남자 환자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에이즈 환자와 함께 있기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해서 관리를 했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게 할 수는 없어서 대놓고 에이즈 어쩌고 말 할 수는 없었어요.

그 환자는 이미 몸 안의 장기가 성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정신은 말짱했지만 이제 곧 죽게 될 거라는 게 자명했지요. 중학생 딸도 있고 형도 있다는데 그들은 한 번도 볼 수가 없었고 그의 곁에는 항상 뼈만 앙상한 그의 노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어요.

남들은 꺼리는 에이즈 환자를 아들이라고 곁에 붙어서서 응급실 보조 의자에 앉아 하루하루를 나는 그 늙은 노모가 안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감염의 우려가 있어서 너무 걱정스러웠답니다.

한번은 커튼을 들쳐보니 글쎄 숟가락 하나로 아들 한 입. 노모 한 입 이렇게 밥을 떠 먹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에이즈는 보통 접촉으로는 전염이 되지 않지만 혈액이 섞이면 감염이 되는데 그 환자는 간수치가 안좋아 식도 출혈도 빈번했고 잇몸출혈도 있었거든요. 제가 기겁을 하고 숟가락을 붙잡았어요.

"할머니. 아드님 입에서 피가 나요. 할머니 연세가 있으셔서 잇몸이 안 좋을 수도 있고 상처가 있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수저 같이 사용하시면 할머니도 병 걸리세요. 그러니 밥은 따로 드셔야 해요"

그런데 노모는 고개를 저으시더군요. 괜찮다면서..

괜찮다...는게 무슨 뜻이었을까요?

아들이 아파 죽어가는데 대신 아파줄 수 없다면 같은 고통이라도 당하면서 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싶다는 뜻이었을까요? 

남들 더럽다고 하는 내 아들 피가 나에게는 하나도 더럽지 않다는 뜻이었을까요? 

 아들이 죽고 나면 나도 사는 게 의미가 없으니 상관없다는 뜻이었을까요?

아무리 말리고 말려도 계속해서 끼니때마다 한 숟가락으로 밥을 드시더라구요.

숟가락 하나 장만하는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지요.

거짓말같이 5분전까지도 '엄마. 너무 아파' 하던 사람이 5분 뒤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장갑을 두 겹씩 끼고 그 환자를 만졌어요.

그의 형이 당도했지만 명을 달리한 자신의 동생 근처에도 가지 않더군요. 저만치 동생 얼굴도 보이지 않는 거리에 서서 사망선고만 듣고 있을 뿐이었구요.

그 때에도 노모는 맨 손으로 아들을 쓰다듬고 울고 있었어요.

맨 손으로.. 아들 이곳 저곳을...

 

병원에서 일했던 기간동안 겪은 일 중 가끔씩 기억나는 몇몇 장면들이 있어요.

참으로 다양한 보호자와 환자들이 있지요. 그런데 참으로 엄마들의 행동은 거의 비슷해요.

자식의 더러운 것을 더럽다 여기지 않아요. 위험한 것을 위험으로 여기지 않아요.

분명 연약하고 힘없는 노인들인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곤 해요.

남들이 뭐라건 신경쓰지도 않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때 겪었던 일들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해요.

노모의 괜찮다는 말이 지금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더럽고 무섭다고 피해도 너는  이 모습 그대로도 나에게 귀한 아들이다."

그는... 모두가 고무장갑을 끼고 그를 만지던 사망순간에 분명 어머니의 따스한 살갗의 온기를 느꼈을 겁니다.

 

내 아이에 대해서 남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들을 하고 조언을 해준답시고 상처를 들쑤시기도 하기도 합니다. 당장 학원만 가봐도 내 아이의 부족한 점을 어찌나 꼼꼼히 짚어주는지 점쟁이 나셨습니다.

그런 막들을 통과해서 바라보게 되는 내 아이의 모습은 어쩌면 부족하고 못났고 바꿔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한번쯤은 막들을 거두어내고 순수하게 맨손으로 아이를 어루만져 주면서 나즈막히 말해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네 모습 있는 그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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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네맘 2012-08-20 01:42 

노모의 마음... 짠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아이들의 엄마인게죠... 가끔 아이를 위한답시고 저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음에 더 화가나

아이를 닥달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러면 안돼지~~~'를 외치지만 늘 아이 앞에선 나도 안돼요~!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오늘... 내가 아이보다 더 긴장되고 불안해서인지 자다가 벌떡 일어나보니

이제 자정을 조금 넘은 시간.... 자는 아이방 둘러보고 혼자 이거저것 방황하다 쑥쑥 들어왔다

이글을 읽고 좀 더 반성하는 제 자신을 찾고 싶습니다.

부족하다고 상처줬던 제가 이제는 그 아물지 않았을 상처들을 어루만져주고 입김불어주어 빨리 아물게 해주고 싶네요.,

모든 엄마들 화이팅~!

제이제이마미 2012-08-18 15:54 

눈물이 왈칵 나네요

 거참 내리 사랑이라는게 ... 마음이 둘째한테 더 가더라구요

그래서 더 큰애를 많이 안아주고 또 그려려고 애쓰죠

그래도 왠지 큰애에게 주는 사랑의 표현에는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 글을 보니 왠지 큰애가 애틋하네요

더 많이 사랑하고  표현해야 겟어요^^

세모네모 2012-08-17 01:34 

뒤늦게 앤님의 글을 읽었어요. 너무 마음이 짠~~합니다.

참,조금전에 장난치며 영어 공부하는 아들 녀석 머리를 '꽁"쥐어박았었는데 반성해야 겠어요.

문젤 몇 개 틀렸거든요.^^;

그래도 "엄마가 미안해"라고 제가 먼저 말해서 다행이다 싶어요.

한 번씩 툭탁거리는 아들이지만 아직까진 사이가 좋은 편인데 사춘기가 와서 휑~~하고 떠나버리면 어쩌나 요즘은 슬슬 걱정입니다.

제 친구 아들 녀석들 중에 심하게 사춘기 겪는 애들이 있어서요.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도록 애써야 겠어요.^^

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달사랑 2012-08-16 10:19 

요즘의 나에게 하는 말인것 같습니다.

아들친구들은 어찌나 잘하는지요....

 

이런 내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부벼대는 아들을 보면서 반성하고 반성합니다.

 

빨강머리앤 2012-08-16 23:29:08
혼내고 반성하고.. 그래도 반드시 자기 전에는 안아주고 뽀뽀하고 사랑한다 말해줍니다.
꿈 속에서조차 나쁜 엄마이기 싫고 진심을 오해한 채 오랜 시간 두기 싫기 때문이에요. 그게 잠이라는 무의식의 세계일지라도 말이지요.
아이가 부벼댈 때 밀쳐내지 말아야지... 저도 반성합니다..
정서사랑 2012-08-16 08:46 

눈물이 핑 도네요. 그러면서 나는 어떤 엄마이고 또 어떤 딸인가를 돌아보게 되네요.

 

요즘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어 마음이 심난해요. 그러다보니 이전에 신경쓰고 목숨걸었던 자질구레한 일들이 별거 아닌 듯이 보입니다. 또 상황이 나아지면 저도 엄마인지라 어떻게 변할 지는 모르지만.....

 

부족한 나자신을 보면서 부모님 살아계실 때 더 잘해드려야 하고 내 새끼 공부만 강요하지 말고 좀더 따스하게 바라보고 다가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요.

 

빨간머리앤님 글을 보면 인간의 본성을 자극하는 따스함이 있어요.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 저같은 사람에게 안구정화와 마음의 정화를 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됩니다. 귀한 글 감사드려요.

빨강머리앤 2012-08-16 23:31:41
엄마인데 어찌 아이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없을 수 있겠어요. 그게 없으면 그냥 아줌마지 엄마가 아니잖아요. 그래도 우리가 욕심과 기대뿐만이 아니라 '감사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엄마' 인 것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일단 고맙고 감사하죠. 그 감사를 잊어버리고 욕심과 기대만을 가지고 횡포를 부릴 때 우리는 엄마의 자세를 잃어버리는 것 아닐까 싶어요.
살아있어주고 내 옆에 있어주니 우선 징하게 감사합시다... ^^
참이뽀 2012-08-16 08:10 

글 읽고 눈물 왈칵 했네요..

이사 가고 싶어요...앤님 근처로용..  그래서 많은 이야기 나누고  살면 참 좋을것같다는 생각 살며서 해봅니다^^      있는 그래로를 사랑하는거.... 참 중요하지만 가끔은 잊어버리는것같아요...

노력해볼랍니다..

 

빨강머리앤 2012-08-16 23:33:39
글로 만나는 게 편한 점이... 제 못된 모습. 실수하는 모습. 어긋난 모습을 굳이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 아닐까요?? ㅎㅎㅎ
제가 참... 말은 잘 합니다... ㅋㅋㅋ
옆에 살지는 않아도 이야기는 많이 나눌 수 있으니 좋은 세상에 감사합시다..
(어디 옛날 같으면 우리가 이리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까요...)
딸두리맘맘 2012-08-16 07:31 

이 아침 몇일전에 쓰신 이글을 보고 살며시 눈물을 흘리는 제가

주책맞은 건가요??

여튼 아직도 날이 개지 않아 어두움이 남은 이 아침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좋은 시간이 되었답니다.~

빨강머리앤 2012-08-16 23:36:29
저녁에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며 한바탕 웃어재끼고 나면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립니다.
그런 날이 많으면 주름이 펴지구요..
가족이 없으면 어떨까... 상상이 안되긴 하지만 아마 지금만큼 풍성한 느낌은 아닐꺼에요.
딸두리맘맘님네도 딸 둘이면 하하호호~~~ 아기자기 하시겠죠?
주디judy 2012-08-15 14:59 

진짜.. 우리아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예요..

더 이상을 바라면 욕심이겠지요...

빨강머리앤 2012-08-16 23:38:15
많이 많이 감사하고 조금 욕심 부리면 되죠 뭐..
넌 건강하니 막 살아라.. 할 수 없는 게 부모잖아요.
항상 끊임없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은 삶을 살렴... 하고 이끌어주는 게 부모니까요.
유희왕 2012-08-14 22:12 
글도 너무 잘 쓰시고, 보람있는 일도 하시고...
부모가 뭔지...
자식이 뭔지.....
빨강머리앤 2012-08-15 00:04:51
그러게요.. 자식이 뭔지...
밉다가도 애절한 대상이지요..
upscale 2012-08-14 21:43 

저도 병원에서 장기간 입원해본터라 병원에서의 일들이 마음에 와닫네요.

노부모와 환자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부모이고 우리아들에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요. 상상이 잘 안됩니다. 못하겠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그냥 상상이 안되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저에게 정말로 그렇게 해주실 것 같거든요~

 

제가 엄친아 친구들의 장점만 모은 어떤 어린이를 한명 머리속에서 키우고 있는데

그 애처럼 아들이 못할때마다 부글부글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거든요.

우리 아들 얘기로 돌아가서...우리 아들을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해주어야겠어요...

 

빨강머리앤 2012-08-15 00:03:07
저도 저희 부모님처럼 제 자식에게 못 해 줄 것 같지만 아픈 자식은 심장에 가시지요. 심장이 뛸 때마다 느껴지는 아픔이 아닐까요..
저도 감성보다 이성이 먼저 앞서는 냉철한 엄마이긴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더불어.. 울 엄마 생각해서라도 저 역시 잘 살아야겠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프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홍박샘 2012-08-14 16:55 
글 일고 울어본지 오랜데 자꾸 눈물이 솟아 껍벅껍벅 어찌 눈물 말려보네. 실제 자식을 잏ㄹ은 내 친구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대요. 오늘 죽어도 그뿐이라고, 어서 가서 아들 만나면 된다고. 에고, 그 녀석 생각난다 이 글 읽고.
빨강머리앤 2012-08-14 23:58:35
박사님. 얼마전에 영어책을 검색하다가 어떤 분의 블로그를 들어가게 되었어요. 아이의 영어책 목록을 참 꼼꼼하게 기록한 엄마구나.. 하며 책에 대한 글을 읽다가 어는 순간 그 아이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지요. 열 몇해를 살며 특목고를 준비중이던 영특하고 착한 외동 아들이 어느날 갑자기 날벼락 같은 병명을 얻더니 황망히 세상을 떴나보더라구요..
저도 모르게 아이를 보낸 뒤 엄마의 절절한 편지글과 건강했던 시절 밝게 웃던 아이의 사진을 보고는 울고 울고 또 울다가 영어책 정보 얻으러 들어간 제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몇글자 남기고 나왔답니다.
아드님과 제가 읽은 책 중에 같은 책이 많아 이 담에 하늘에서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구요. 그 분의 어머니가 신부전으로 고생중이시라 아들을 떠나보낸 뒤에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하여 역시 신부전으로 이식수술까지 한 엄마를 둔 사람이고 간호사이니 언제든 도울 수 있으면 돕겠노라고..
감사하다는 답글이 왔어요..
자식 먼저 보낸 사람 맘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거라고..
세상에 귀하지 않은 자식 없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내' 자식이어서 저런 아픔은 밑바닥까지 공감이 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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