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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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방송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저희 집에서도 지난 일주일 동안은 늘 텔레비전이 켜져 있었지요.
정빈이는 그런 집의 분위기가 이상한가 봅니다.
텔레비전 앞에 앉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엄마의 모습에 눈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기도 하고 왜 자꾸 우는 거예요? 하며 이상하다는, 가끔은 짜증이 섞인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어제 텔레비전을 보던 정빈이의 한 마디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왜 자꾸 죽는 것만 보여 주는 거예요? 잘 사는 것도 보여 주면 좋잖아요. 나 저거 이제 보기 싫어요. 똑같은 말만 하고. 저 사람들은 모두 슬퍼서 텔레비전도 안 볼텐데. 우리보고 자꾸 어쩌라는 거예요."
아이의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의 지난 테러 즈음하여 김형란님이 쓰신 글이 생각나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재난'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하는 방법-뉴욕 학교 지침서』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입니다.
미국에서 전대미문의 테러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함께 보는 딸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생각해보던 중 뉴욕 현지에 거주하는 우리 기자의 르뽀 기사를 보았습니다.
--------< 기사 중 일부>-----------
이방인인 기자의 눈에 비친 의외의 그리고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은 미국인들이 사상자 개개인과 그 가족의 비극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국 언론은 유명인사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상자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고, 가족들이 오열하며 몸부림치는 장면을 중계하지 않았다.
대신 뉴욕시민들은
구조대원들의 용감한 구조 활동에,
생존자를 찾으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에,
자원봉사자들의 뜨거운 인간애에 주목하였다.
뉴욕의 롱아일랜드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기자의 딸이 학교에서 지침서를 받아왔는데, 그 책엔 우리의 사고와 정서로는 다소 생소하지만 상황에 딱 맞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었다.
" 아이에게 '울지 마라, 괜찮아질 거야, 라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
상황을 직시하고 희생자를 돕는 일에 동참하라.
평화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 아이와 함께 생각해 보라"
미국의 그 때 상황과 이 번 사고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고, 미국의 방법이 옳다는 것도,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 글을 읽으면서 지난 일주일 동안의 저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참담한 현장,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며 눈물짓고, 어떻게 이런 일이 또? 라며 분노하고 이제 정말 지하철을 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아이에게 지하철 대신 버스를 타라고 말하고,
국민들의 성금 모금을 알리는 ARS전화 번호와 거금(?)의 성금을 보낸 기업인들의 사진을 보며 적은 돈이지만 함께 동참해야 한다는 마음에 은행을 찾고,
사고 현장과 분양소를 찾고, 도울 일이 있나 싶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잔심부름 해주는 것이 고작,
실무자들의 잘잘못을 보며 분노하고,
그리고 어제 밤 뉴스와 오늘 아침 뉴스의 아나운서의 말이 조사하나 틀리지 않고 반복되고 있음에 짜증이 나기 시작하는 저 저신.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끝없이 쏱아져 나오는 방송이 8년 전 상인동 가스 폭발 사건 때와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주 조금이지만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보도하는 것이 전부인 것 같습니다.
상인동에 살고 있고 가스 폭발 현장을 10여분 차이로 지나 가 목숨을 건진 저였어요. 그 날은 마침 제 생일날이었어요. 그리고 저희 가족 시내 나들이 갈 때 네 식구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곤 했었지요.
그런 저 자신도 지하철역에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화재가 났을 때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것을 가르친 적이 없었습니다.
사고가 난 날 저녁에 옆집 부부와 함께 너무 어처구니없는 그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 때 남편이 그러더군요.
"집에 소화기를 어디에 두느냐 조차도 생각지 않는 사람이 많아요. 집에서 불이 날 염려가 가장 큰 주방에, 꼭 주방이 아니더라도 주방 가까운 곳에 두어야 할 소화기지만 보기 싫다는 이유로 집의 가장 구석에 쳐 박아 둔 집이 많을 걸요. 큰 사고만이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고 많이 죽을 때 죽은목숨만 아까운 게 아닐진대 텔레비전보고 저런 놈들, 하며 혀를 차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자기 집의 안전에는 소홀한 사람이 많을 겁니다. 정전이 되었을 때 건전지로 작동하는 비상등이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에게 그 위치를 알려 주었는지 물어 보면 대답 못할 사람 많을 걸요."
남편은 비상등을 옆의 사진에서처럼 거실의 텔레비전 바로 옆에 두었습니다. 사진에는 텔레비전 옆의 오디오 스피커만 나왔지만요. 가장 눈에 잘 띄고 아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지요.
사실 저는 몇 번이나 그것을 다른 곳에 치운 적이 있어요. 단지 보기 싫다는 이유로요. 결국 남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곳에 두고 있습니다.
8살 아이지만 저 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꾸만 우는 아주머니의 모습을 모여 준다고 어쩌냐는 아이의 말.
그 분들의 슬픔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머물러 있어서 되겠느냐는 것이겠지요. 그 분들의 통곡하는 모습만을 반복하여 보여 준다고 하여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저런 슬픔은 다시없도록 해야한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줄 수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상인동 가스 폭발 사건으로 인해 충분히 상처를 받았음에도 그 때와 똑같은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상처, 치유하기 어렵겠지만 아픔을 이겨내는 모습을, 그래서 아이들에게 우리 나라는 정말 별수 없어, 라는 절망감이 아닌 희망의 불씨를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직 어린 우리의 아이들이 절규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되풀이되는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라는 말을 들으면서, 어른들이 무심코 뱉는 "우리 나라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는 말로 인해 "우리는 이 것 밖에 안 돼.", "어른들은 저런 일 밖에 못하는 거야?" 등의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저의 지나친 기우일까요?
어른들의 잘못을 감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일을 그저 함께 부여잡고 통곡하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되겠다는, 이 일로 인해 희생된 많은 분들의 넋이 승화될 수 있도록 이 일로 인해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닌 좀 더 나은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집이나 거리, 학교 등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자세히 알려주고 그런 작은 것들을 무시하면서 자란 어른들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냉철하게 이야기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귀찮고 힘들어도 왜 지켜야하는지를 알려주어야 겠지요.
안전불감증은 몇 몇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바로 내게는 없었던가를 생각해 보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안전불감증이 몸에 베이게 방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도 있을 겁니다.
방송에서도 절규하는 그들의 아픈 모습과 함께, 아니 그보다 좀 더 많이 그 절망 속에서도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들의 꿋꿋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그들을 돕고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도요.
한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사회에 주는 영향이 이토록 클 수 있다는 것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바로 가족, 가정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사랑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주변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큰 일이라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고를 낸 몇 몇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을 함께 이야기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말 무기력하게, 슬픔과 분노에 젖어 지낸 일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슬퍼만 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떨쳐 일어나 기운을 내고 있습니다.
제가 제 자리를 확실히 지키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는 것도 고인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는 작은 길이라는 생각되었지요.
대구가 아닌, 그래서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하신 분들은 저와 많은 대구 시민들이 느꼈던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전부 다는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정말 힘든 시간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염없이 울먹이고만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에는 글을 쓴다는 것 조차 너무 힘이 들었어요. 이게 무슨 짓인가? 그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은 이 마당에.... 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이토록 힘겨운데 가족을 잃은 분들의 상처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우린 이런 슬픔을 정말 여기서 끝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부터, 제 아이들 부터라도 왜 안전을 생각해야하는가를, 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님을, 타인에 대한 책임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한다면 이런 뉴스를 들을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이후 단 한 건의 안전 사고도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 날의 댓가는 너무나 엄청났지만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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