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우리의 어머님들이 그러셨지만 우리 어머니도 평생을 알뜰하게 살아오셨고, 자식들에게까지도 아낄 것은 무척 아끼셨습니다.
제가 어릴 때 이모가 같은 동네에 사셨는데 저보다 두 살 아래의 사촌동생이 있는 이모 집에 매일 놀러 갔습니다.
그 당시 제 낙은 이모 집에 있는 백 권짜리 명작동화전집을 한 권씩 꺼내서 읽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모네 집에는 우리집에는 없었던 피아노도 있어서 매일 2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이모 집에 가기 싫을 때도 있고 이모는 전혀 그러시지 않으셨지만 어린 마음에 조금 눈치도 보여서 우리 집에도 책꽂이에 전집이 꽂이고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우리 집에도 백 권짜리 전집 동화가 놓이고 피아노도 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전집 동화책은 이모 집에서 읽던 책만큼 재미가 없고, 이모네 집에서는 매일 꼬박 2시간씩 연습하던 피아노도 언제든지 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하루에 30분도 치지 않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하고 제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좋은 교재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고, 가장 효율적인 학습을 보장하는 교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동안 저를 바쁘게 만든 일이 그림책, 플래시 카드, 비디오, 시디 롬 등 좋다는 교재 소개를 열심히 찾아 수첩에 적어놓고 프린트해서 파일에 철해놓고, 시간 날 때마다 영어 서점에 들리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킴 앤 존슨에 갔던 날, 아이는 저 뒤로 밀어놓고는 많고 화려한 교재들을 넋을 읽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Wee Sing 비디오를 사고, 고고의 영어모험을 사고, 당장 필요 없을 것 같기는 했지만 자주 못 올 테니까 미리 사두어야지 하는 마음에 그림책들과 오디오 테이프들을 사들였습니다.
아이에게 본격적으로 영어를 가르친 지 이제 약 11개월 정도 되어가지만, 이 교재 때문에 아이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 교재는 아쉽게도 하나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교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즐겁게 영어노래를 불러주고 책에서 나온 표현들을 말해 준 바로 엄마 저 자신이었습니다.
물론 좋은 교재는 분명히 있고, 또 좋은 교재를 고르는 일 역시 중요합니다. 하지만 모든 교재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교재는 상업성을 띱니다.
아무리 좋은 교재도 팔려야 하는 상품입니다. 그러자면, 상업성이 내포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쏟아져 나오는 캐릭터들 속에서 과연 아이에게 이 많은 캐릭터를 영어 공부라는 명목 하에 제공 해야 하는가 하고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둘째, 모든 교재는 어른들이 만듭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이를 위해 만들지만, 결국 교재를 만드는 사람들은 어른들입니다.
현재의 어른들이 미래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재를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들을 결국 내 수준으로 주저앉히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결국은 좋은 교재보다는 내용은 좀 조잡하더라도 엄마가 얼마나 사랑을 담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가가 더 중요하며, 아무리 좋다고 선전하는 교재라도 엄마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좋은 교재 사다 놓고 아이가 좋아하지 않으면, 저걸 얼마 주고 산 건데 하는 생각에, 옆 집 아이는 좋아한다는데, 왜 우리 아이는 안 좋아할까 하면서 초조해 하는 것 보다는 신문 사이에 끼어 들어온 광고지라도 재미있게 보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이 훨씬 더 낫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안을 정리하는 시간은 한밤 중, 즉 아이가 잠자리에 든 후 입니다.
마루와 아이 방 한 가득 어질러져 있는 아이 물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제 30개월인 아이 물건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 중 제일 많은 것이 영어 서점에 가면 제가 먼저 욕심이 나서 사들였던 책들입니다.
가끔씩 아이도 제가 이모네 집에서 한 권씩 아껴가며 읽었던 명작동화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기도 전에 미리미리 넘치게 사주는 책들 사이에서 제가 어릴 적 느꼈던 그런 감정을 기대한다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저를 무릎에 앉히시고 동화책을 읽어 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동화책의 내용이 아니라, 그 동화책의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묻어났던 푸근함입니다.
결국 우리 아이도 훗날에 기억하게 될 것은 좋은 교재의 내용이 아니라, 그 교재를 매개로 엄마와 함께 했던 그 순간, 엄마의 따뜻한 체온, 목소리 등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