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 티비는 우연한 기회에 비디오 전용이 되었는데
꼬마들만 지들 좋아하는 비디오를 보다가
어느날 문뜩 나는 왜 안보지 하는 생각이 들어
최근에 동네에 있는 대형 비디오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게 되었다
그 비디오가게는 정기적으로 쿠폰이 찍힌 전단지를 대량살포하는데
오백원하는 신프로를 하나 빌릴 때마다 추가로 하나를 더 빌릴 수 있는
정말 멋진 쿠폰이다
이삼일에 한번 꼴로 내 것과 아이들 것을 빌린다
오백원 동전 딸랑 하나 있으면
이제 곧 <피노키오>도 빌릴 수 있다
한없이 착하기만 한 남편은
그 비디오가게 생긴 이후로
출입문에 앉아 줄담배만 피워대는 아저씨가 주인인
길건너 비디오가게에서 빌리라고 하는데
심정적으로는 그러마 하지만
어느새 내 발걸음은 늘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 쿠폰 다 떨어지면 가야지 하면서
행여나 길건너 비디오가게 아저씨랑 눈이 마주 칠까봐
허공을 두리번거리다가 넘어질 뻔도 했다..
미안해요 아저씨...
이런 우여곡절 끝에 어제 내가 빌려본 영화는
오! 그레이스(원제 SAVING GRACE)이다
이 영화는 18세이상 관람가다
내가 알기로는 코믹드라마인데
왜 그럴까...
어느날 들린 식당티비를 통해 소개받은 이 영화을
떠올려 보지만 등급제한 판정에 걸릴 이유가
쉽게 알 수가 없었다
이유인즉 <소재>의 불경스러움이었다
바로 우리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하여
종종 메스컴을 통해 겁을 먹게하는 <대마>관련 영화인 셈이다
반평생을 온실의 화초를 가꾸는 일을 낙으로 알고 살아온 아줌마 그레이스는
남편이 얼토당토하지 않게 비행기에서 추락사하여 졸지에 과부가 된다
장례를 치른지 한달여만에 들린 동네 가게에서는
특별서비스라는 명목하에 몇파운드하는 진통제를 단 5펜스에 주고
늘 하던 대로 동전을 기부금함에 넣으려고 했지만 강력하게 거부당한다
그레이스는 이상하다...
그 이유는..
남편이 남겨준 엄청난 빚잔치를 하게 될 그레이스를 걱정한
마을주민의 눈물겹고 어설픈 배려였던 것이다
특정기술이나 경력없이 평화롭게만 산 그레이스는
아무런 대책없이 삼백년이 넘은 멋진 저택을 경매당할
처지에 이른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원사 매튜의 부탁으로
잘 키우면 금보다 더 비싸다는 대마를 접함으로써
불법의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레이스의 어려움을 아는 마을주민의 묵인 아래
그레이스의 대마재배는 내용이 갖는 불법성을 잊게 할 정도로
멋지고 아름답게 이루어 진다
대마재배에 필수라 할 강한 열을 위해
매튜가 개발한 엄청난 전등불의 점화식은
이제 마을 주민이 일상적으로 즐기는
하나의 멋진 볼거리가 될 정도이다
(사실 이 모습 장관이다..)
매튜의 여자친구 니키(이 여자 정말 멋지다)가 임신하고
그래서 매튜의 미래를 걱정하는 걸 그레이스가 알고는
하얗고 멋지지만 그런 일(마약판매)과는 거리가 먼 옷차림으로
런던 중심가에서 직접 판로를 뚫고자 한다
그러다가 죽은 남편의 정부의 도움을 받아
거물급 마약상을 만나는데...
벼랑에 몰리면 무서운 게 없어지는 게
저멀리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마찬가지인가보다
차분하지만 거칠고 위험한 조직보스의 말에
오히려 당당하기만 그레이스...
(살아야 하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불꺼진 방에서
정신없이 웃어댔다
소재가 다소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그 전개방식이 신선했고 발랄했다
등장인물 각각이 주는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다
정원사 매튜는 그저 대마나 피우면서 정원을 가꾸고 알콩달콩 살코픈 사내이고
여자 친구 니키는 작은 배의 선장인데 정말 뱃사람같은 멋진 인상을 하고 있다
하비라는 우스꽝스런 동네 청년을 보는 재미도 있고
동네가게 할머니의 코믹연기는 정말 우스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에서 최고는
그레이스를 연기한 브렌다 블레신(Brenda Blethyn)이라 할 수 있다
파리 하나 죽일 수 없게 생긴 선한 보통의 아줌마가
손가락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보스의 말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대담한 인간이 되는 모습까지
어느 한 장면 놓치기 아까운 연기였다
다소 억지스럽고 황망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용도 별로고 구성도 허술하고 연기도 더욱더 볼 것 없는
자칫 잘못 고르기 쉬운 영화들 속에
정말 재미있다고 손짓하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음악 또한 너무 좋다...
그래도 사고의 보수진영에 속한 내가 어찌 도덕적 발언을 간과했으랴...
매튜을 걱정하는 니키에게 동네 목사가 한마디 건든다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는 것은
진정으로 갖는 게 아니다..."
비오고 심심하신 분들께...이 영화 강추입니다^^
다만 대마는 아니되옵니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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