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방학을 시작한 이후로, workbook을 각각 몇 권씩 사서 매일 한시간 정도씩 같이 공부를 합니다. 수학, 영어, 한글, 성경읽기. 기껏해야 한 과목당 15분을 넘지 않습니다. 아침에 제가 일어나면, 먼저 공부할 범위를 지정해서 적어주고, 아이들은 각자 그 범위에 맞추어서 과제를 끝내는데, 어떤 때는 특정 페이지가 좀 어려워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잡아 먹습니다. 저는 제 욕심에 하루 분량을 아이들이 시간에 상관없이 어떻게든 끝내 주기를 바라는데, 아이들은 그게 아니죠. 해서, 아이들과 자주 협상을 벌입니다. 제가 어릴때 경험했던 것으로는, 선생님이든 부모님이든 제게 과제를 주면, 그걸 모두 해야만 하고, 다 못하면 안 되는 거였죠. 학교 숙제도 마찬가지였구요. 잘 하면 좋은 거였지만, 안 되면, 힘에 부치면..그래도 끝까지 해 내든가 아니면 포기를 하든가 둘 줄의 하나 택일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winner or loser 둘 중의 하나이지요) 다른 대체 방안이 없었지요. (맞나요?)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에게 설득을 자주 당합니다. 아니, 제가 아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요구를 하도록 기회를 주려고 노력을 한다고 할까요? 제가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 그런 거는 아니구요, 여기서 살다보니까 말입니다(한국이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말씀 드리는 제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이들의 삶이 그런 식이더라구요. 처음에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과제가 주어지면, 어떻게든 끝까지 해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없고,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서 가감을 하려고 하는 것이 부정적인 자기합리화처럼 보였거든요. 아직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같은 생각이구요, 사람이 게을러지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캐나다사람들이 게으르다는 평을 많이 듣기도 하구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그런 식으로 처신을 하던 아이들에 대해서는 '내 놓은 애' 내지는 'outsider'처럼 취급을 했었지요.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왜 내가 어릴때 로보트처럼 살았을까? 수많은 선택의 폭을 무시하고, Yes, 아니면, No의 두가지 틀에 '자유스러운 나'를 끼워 맞추느라 받아야만 했던 스트레스, 그리고 그것을 품고 성장했던 부자연스러움..등등에 대한 회한과 기성세대 권위자들에 대한 원망 등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들 나름대로 어려운 이유가 있었겠지요) 내 아이들에게는 다른 생각들과 의견들을 제시하고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자. 제가 도와주던 도와주지 않던, 아이들은 이 사회의 분위기에 맞게 자랄것입니다. 단지, 그로 인한 부작용을 이해하고, 그 부작용에 편승하지 않는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혜있는 부모의 몫이겠지요. 제가 언젠가도 말씀 드렸듯이,이곳 College에 수학을 배우러 다닐 때의 일이었습니다. 시험을 끝내고, 선생님이 그 자리에서 제 시험지를 채점 하시더군요. 절 옆에 앉게 하고 말입니다. 한 문제에서 과정은 다 맞았는데, 마지막 덧셈의 과정에서 실수로 답을 틀렸습니다. 그 문제가 3점짜리였는데, 1.5점을 주더군요. 결과가 물론 중요하지만, 과정에 귀를 기울이는 일을 놓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 예는 그저 작은 예에 불과합니다. 대형 수퍼마켓이나 백화점에 있는 물건의 정찰 가격도 협상이 가능합니다. 원하는 물건을 가져다가, 이 물건에 150불이라고 적혀있는데, 어느 가게에서는 이것이 얼마이고, 어디는 얼마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120불 정도의 가격으로 사고 싶습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서로 대화를 통해서 흥정을 한 후, 큰 차이가 없으면,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으로 팝니다. (한국의 재래시장 원리를 배운거 아닌가 싶습니다^^*) 회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봉급은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정해진 경우도 물론 있겠지요). 일을 잘 하면, 사장이 불러서 월급을 자발적으로 올려줍니다. 그런가 하면, 사원이 찾아가서 올려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구요.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메니저에게 '요즘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살기가 좀 힘들다'고 지나가면서 얘기를 한 후 월급을 올려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이가 숙제를 하다가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제 시간에 갖다 내지 못하게 되면, 선생님이 그 해명을 다 듣습니다(자신이 해명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경우 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아이와 얘기를 해서, 언제까지 끝낼 수 있는지, 아니면 그 프로젝트가 너무 어려우면, 조정이 가능한지 등을 의논해서 서로가 의견을 맞춥니다. '무리'를 해서라도 끝내야한다는 그림을 보기가 힘듭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때부터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높일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줄도 아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심지어는 이미 채점이 끝난 시험지를 가지고 선생님께 가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답안지와 다른 답을 썼을 경우, 자신이 어떤 책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읽고 얻어낸 답이라고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과 함께 찾아보고, 점수를 바꾸기도 합니다. 다 그런 것은 물론 아닙니다. 대체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거지요. 이번 여름에 제 딸이 일주일동안 summer camp에 갔다 왔습니다. 거기서 온 통지문에 이런 내용이 한 귀퉁이에 있더군요. '금연'에 대한 방침입니다. 청소년들 중에는 담배를 피는 아이들도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금연이 규칙이지만(게다가, 그 캠프는 크리스챤 캠프였습니다), 혹시 몰래 피우다가 산불이 날 염려가 있으므로, 부모의 허락을 받은 종이 쪽지를 staff에게 가져오면, 특정 장소를 정해서, 흡연을 하도록 허가를 해 줍니다. 이들의 '안전'에 대한 대처의식과 '융통성'에 대해 제가 혀를 내 둘렀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집에서도 아이들과 상치되는 무슨 문제를 만났을때 아이들이 엄마인 나를 설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제가 들어 주고 아이들의 의견과 능력의 한계를 이해 했을 때, 아이들은 그 다음으로 제 의견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런 상호의 대화가 이루어질때, 아이들이 잘못될 염려는 무척 적다고 저는 믿기 시작했습니다. 기존의 틀에 익숙한 제가 이런 방식으로 나 자신을 바꾸는 데는 제 자신을 매일 세뇌 시키고 바꾸는 피나는(?) 노력과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많이 싸웠고, 그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요즘에는 스스로 해결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개입을 하지 않아도, 자기들 사이에서 큰 소리가 나기 전에 협상을 많이 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해결점을 찾는거지요.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도 제 감정 상태에 따라서 큰소리를 내서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우도 아직 많고, 아이들도 덩달아 엄마의 감정 상태에 좌우 되어서 컨트롤 할 힘을 잃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지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멉니다. 아이들의 감정과 의견을 많이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일이 저에게는 커다란 일생의 과제입니다. 그리고 저도 공부를 많이 많이 해야만, 아이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지혜로운 한 마디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나를 설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줄때, 아이들은 내가 자신들을 설득할 때 들어주고, 나아가서,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다른 이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함께 더불어 사는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라고 감히 소망해 봅니다.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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