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보다 적극적이지 않은 면이 제게 있습니다.
몹시 설치면서 기회란 기회는 다 붙잡을 거 같은 활달함이 있는 반면,
남을 귀찮게 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뱉으려던 말도 하려던 일도 접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아이가 1학년 무렵 남편 따라 미국에 갔더랬지요.
3년 전 살았던 곳, 그래서 근처 대학에서 청강을 했던 곳으로 갔습니다.
청강을 했던 교수에게 인사 차 갔다가 반농, 반진담으로 석사라도 하나 더 할까? 물었더니
이미 박사인데 무엇하러 또 뛰어드냐며 혹시 토플 시험 점수가 있냐고 묻습디다.
그거야 높지 않겄습니까?
알고보니 그 교수님이 연방정부 연구비를 엄청나게 따내서
내게 일하면서 공부할 자리로 실제 teaching 할 기회를 준다네요.
뭔 말인지도 모르고 돌아왔습니다.
한참 만에 우편으로 날아온 서류에는 Postdoc Researcher로 고용한다고 되어있더군요.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일주일에 20시간 ESL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종의 intern-teaching으로
그 결과를 대학에 보고해 연구하는 보잘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게 그해 12월 말.
문제는 남편 따라 동반비자로 나갔기 때문에 6개월 후엔 귀국해야 합니다.
겨우 6개월 하라고 나를 고용하지는 않을 터이니 아예 시작을 말든지 비자를 바꾸든지 해야합니다.
지도교수의 서명이 필요한 서류를 대사관에 제출하고 새로 독립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방학이 되어 내 지도교수는 휴가 잠적을 합니다.
비자 종류를 바꾸려면 체류 6개월 이전에 바꿔야 하고요. 시간이 없더군요.
교수를 찾아내 나 때문에 휴가지에서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그냥 흘려버리려 했어요.
어쩌겠어요? 아쉬운 소리하기도 싫고 폐 끼치는 건 더 싫고.
그런데 내 안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힙니다. "네가 실제 원하는 일 아니니?"
버스를 타고 무작정 학교로 갔습니다.
사무실에 들어가 희망도 없이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닥터 아무개를 찾는다 했지요.
들을 답은 뻔합니다. "휴가 가서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다가와 내 얘기를 넘어들었는데 자기가 부학장이니
그 박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나는 내 지도교수가 필요하다가 자꾸 되뇌였습니다.
그 때 부학장이 부드럽게 명령합디다.
"그건 불가한 일이니 새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라,
관계처에 부학장이 대신 서명하고 서명한 사실을 지도교수한테 통보하겠노라고 말하라."
관계처 대답은 "예스!" 였습니다.
그러면서 크리스마스로 사무실 문 닫으니 오늘 오후까지 서류 제출!
황급히 만든 서류 들고 뛰어갔더니 (서류가 복잡합니다) 국제업무 사무실 문이 닫혔습니다.
돌아서려는데 닫힌 문 안쪽에서 담당자가 나오면서 부릅니다.
극적으로 서류를 접수하고 이듬해부터 3년 간 저는 급여를 받으면서 공부하는 횡재를 합니다.
지나면서 약아져서 학점도 더 따고 교사시험도 치러 교사자격증도 2개나 받으니
이력서가 화려해 지대요.
생각해보면 그 때 제가 잘 한 일은 이겁니다.
첫째, 가만 있지 않고 학교에 가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둘째, 부학장의 조언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셋째, 보잘 것 없는 일이지만 그걸 좋은 기회라고 판단한 점입니다.
급여는 작아도 외국인으로서 미국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인데
내가 배울 일이 더 많을 것이고 나의 이력에 보탬이 될 거라 판단한 것입니다.
넷쩨, 혹시나 하고 봐두었던 토플시험이었습니다.
인터뷰로 영어능력을 봤지만 공인점수가 필요했으니까요.
지금 지도교수는 조기 은퇴를 했고 나를 도와줬던 부학장은 암으로 고생 중입니다.
고마운 사람들인데 잊고 지냈네요.
그런 경험을 했다고 인생이 황홀해진 건 아니지만 실제 현장공부를 했습니다.
타국에서 일하며 공부하며 애 키운 시간,
하도 고생스러워서 추억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추억이군요.
여러분은 살면서 극적으로 이루어졌던 일 있으셔?
게시판에서 산 얘기 좀 합시다.
여기가 꼭 정보만 주고 받나요. 그냥 수다판이어요.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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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때 할 만한 놀이
살면서 잘한 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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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흥미진진 하네요.
박사님도 그렇고..여기 댓글 다신 분들 모두 대단하신거 같습니다.
워낙 그냥저냥 사는 관계로 극적으로 이루워진 일은 울신랑이랑 결혼한 일뿐이 없다는...ㅠ.ㅠ
이런글 읽으니...넘 부럽네요..
그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오는게 아닌거 같아요.
좀더 혜택을 더 많이 누리는 사람에게만 온다는 생각도 들구요..
암튼...다시한번 부럽습니다....^^
제 예기는 아니구요.. 제 친구예기 조금 쓰고 갈께요.
대학졸업시즌때 친구들 모두 취업에 성공했거든요.
근데 한 친구만 취업을 못하고 무척 좌절하더라구요.
다들 취업이 되서 기쁜 마음뿐이라 그 친구의 맘을 잘 헤아려주지 못했는데..
그 친구의 맘속에 저희가 무척 얄밉고 [두고봐라!]하는 독한 심정도 담아있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취업전선에 끝날때쯤 그 친구가 취직이 되었는데...우리가 상상도 못한 곳이었죠.
바로 외무부에 떡 하니 취직이 된겁니다.
기가막힐 노릇이었죠.
그시기에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가 제일 잘란체가 심했는데....이 친구가 외무부 장관 비서로 들어간겁니다.
어떻게 들었갔냐면요...외무부 인턴사원을 뽑는데 그냥 자기도 원서를 넣었다고 합니다.
면접날 떨어질껄 예상하고 편한마음으로 면접을 봤다네요. 물론 영어도 많이 부족해서 말한마디를 못한게 아니고 무슨 말인지조차 못알아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면접을 끝나고 계단쪽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안에 00장관이 타고 계셨다네요.
마침 비서자리가 비었고 그냥 그자리에서 면접보고 취업이 됬다고 합니다.
정말 영화같은 일이죠..
그렇게 기회를 잡고 잡아서 일본이든, 다른 나라든...대사관을 돌아다니며 일을하면서 경험을 쌓고 외국에 실력도 늘리고...
지금은 청와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같은 전용기를 타고 지금도 세계를 누비고있네요....
나중에 술한잔 할 기회가 있을때 제가 배짱도 좋았다고 웃는 소리로 말했더니..
[어짜피 떨어질꺼...00기업에서 떨어졌다고 하는소리보다 외무부에서 떨어졌다고 하는게 더 있어보이잖아. 니들한테 말하기도 좋고...]라며 크게 웃더라구요.
여전히 좋은 친구로 있는데 그 친구가 기회를 참 잘 잡고 산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한테 오는 모든 배울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과물로 낳은것이 정말 부럽더라구요.
제예기는 없어서 그냥 친구예기나 주저리 하다 갑니다..
가스나... 쓰면서도 부럽네....
그 친구가 가장 살면서 잘한일은..아마도 더 낮은곳을 찾아 취업을 선택한것이 아니라 좀더 용기를 내서 무모하더라도 도전해 본것이라는생각이 듭니다.
거기에는 저랑 친구들의 얄미운 행적도 들어갔겠지요...^^
생각해보니...가스나...순전히 내 때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