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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이와 함께 집 근처 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는 길을 가다가 개미가 보이면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걷고 또 관심을 끌만한 것이 있으면 잠시 멈추어서 들여다보고 다시 걸었습니다.
저는 그런 아이를 그저 뒤에서 지켜보며 아이가 위험하지만 않게 살피며 공원까지 걸어가면서 엄마의 역할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를 앞에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걷되 공원까지의 길은 미리 알고 있어 조금씩 그 쪽으로 아이를 이끌어 가는 것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엄마가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일들 중에 하나가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엄마들은 학교 다닐 때 영어 공부를 안 한 것에 대해 대학입시나 취직 시험 볼 때보다도 훨씬 더 후회하기도 하고 영어로 아이에게 말을 못해주는 것에 대해 미안해 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그 모성애에 감탄하기도 하고, 또 엄마의 역할이란 과연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엄마가 어떤 분야에 전문가라고 자식을 같은 분야에 전문가로 키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 엄마가 영어박사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이에게 한 마디라도 영어로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기가 좀 수월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것도 아이가 아주 어린 유아기에나 해당하는 일이지 언제까지 엄마가 따라다니면서 일일이 영어를 가르칠 수도 없습니다.
그보다는 영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라는 것이 단기간에 공부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사용하고 갈고 닦는 것이므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아이가 가야 할 긴 여정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장 영어로 말해주기보다는 영어를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아이가 알게 하고, 아이가 '스스로' 영어라는 도구를 습득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제가 공원까지 가는 길을 알고 아이를 인도할 수 있었듯이, 엄마는 아이가 앞으로 갈 길을 조금 미리 경험해 본 선배로서 아이에게 '큰 그림'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존재일 것입니다.
다시말해, 엄마는 '큰 그림 (big picture)'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엄마가 큰 그림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첫째,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아이에게 좋은 책을 많이 사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엄마가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더라도 육아에 관련된 책에만 한정시키거나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방법론적인 책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요즘 철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별로 없으니 하루에 읽는 양은 많지 않지만 제 자신의 정신적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엄마 자신의 정신적 성장은 아이를 키우는 데 가장 기본이 됩니다.
둘째, 아이에게 ‘편안함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엄마들이 아이교육에 열정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우리 아이만큼은 나보다는 편한 생활을 했으면 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유아기부터 영어를 열심히 가르치는 것도 내가 영어 공부하느라고 한 노력과 고생을 우리아이는 좀 안 했으면 엄마 덕분에 좀 쉽게 했으면 해서 아닐까 합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으니까 뭐가 좋냐고. 그랬더니, 대답이 한 학문을 공부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후에 스스로 학습을 하면서 이루어야 할 것이 바로 사고의 틀을 세우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영어를 공부하면서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 즉, 언어적 사고의 틀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까지도 엄마가 세워주고, 아이는 생각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지식의 습득에만 바쁘게 만든다면 이는 오히려 편안함이 아이를 더 퇴보 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셋째, 자녀를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생각은 내가 한 인간을 이렇게도 많이 사랑할 수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자녀를 너무 사랑하기에 아이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녀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외부의 관찰자로서 자녀를 바라본다면, 자녀에게 앞으로의 길을 알려주기가 훨씬 수월해짐을 느낄 것입니다.
아동심리학자 이리나 프레콥은 아이는 부모에게 '나그네'와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부모는 단지 집 주인으로서 나그네가 앞으로 얼마간 가야 할 길을 먼저 경험해 보아서 조금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그네가 앞으로의 여정을 계속하도록 정성껏 보살펴 주고 용기를 북돋아주어야 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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