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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야기 첫번째

글쓴이 빨강머리앤

등록일 2014-07-24 16:26

조회수 5,438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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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때는 서울에 있는 모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일을 하였더랬죠.

그 일을 그만 둔 것도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쑥쑥맘들 중에도 일을 하다가 그만 두신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혹시 저처럼 종종 그 때의 근무 상황을 꿈으로 꾸시는 분들도 계실까요?

일년에 서너 차례.. 저는 꿈을 꿉니다.

동시에 울리는 여러 개의 알람. 혹은 3교대인데 근무 시간을 착각하는 꿈. 챠팅을 하지 못했는데 인계시간이 되어 당황하는 꿈. 환자 파악이 하나도 안 되는데 해야 할 일이 쌓여 있는 꿈. 수간호사와 계속해서 마찰을 겪는 꿈...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제 동기들도 그렇다는군요..

20대를 몽땅 바쳐 일했던 그 공간에는 수많은 인생이 있었어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와 의사와 동료간호사와 조무사들..

그냥 불현듯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어요.

저의 가치관에, 삶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시간들을 차분하게 정리라도 할 겸..

그러면 긴장의 연속인 그 꿈들이 이제 사라져 줄까요??

 

첫번째 이야기---후회해도 늦었어요.

 

"어머, 또 왔어? 뭐가 좋다고 자꾸 와~~!"

반가워 하면 안 되는데 반가운 아이가 또 왔습니다. 뇌 수술을 받고 치료를 받다가 퇴원을 했는데 다시 온 거죠...

그 아이는 '소녀'였어요. 여자 아이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니고 정말 '소녀'인 아이.

얼굴이 가수 '박지윤'하고 너무 닮아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듣고 크고 맑은 눈에 까맣고 긴 속눈썹..

너는 정말이지 어쩌면 이렇게 하얗고 예쁘니....

노래도 박지윤만큼 할까 싶었지만 저는 몇 년동안 알고 지낸 그 기간동안 그 애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답니다.

숨 쉬는 게 늘 힘들었던 그 소녀는 인공호흡기나 산소의 도움이 필요했어요. 목에 구멍을 뚫어 산소 공급을 받고 가래를 빼내야 했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던 거지요.

우리의 의사소통은 입의 움직임과 손가락 글씨였는데 실상 손가락 들 힘조차 없었으므로 거의 눈빛 대화를 했다고 봐야겠죠..

 

중등 시절부터 시작된 투병으로 인해 아이의 몸은 청소년으로서 거쳐야 할 것들을 거치지 못했습니다. 생리도 안 했고 가슴도 ..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키 160 정도에 몸무게가 30kg 왔다갔다 했으니까요.

가슴 아픈 소재도 농담처럼 우리는 주고 받았어요. "너 이렇게 찌찌가 작아서 어떻게 시집이나 가겠어? 빨리 나아서 입으로도 먹고 그래야 살도 찌고 찌찌도 나오고 그러지~" 하면 시덥잖은 농담에도 까르르( 소리가 나온다면 분명 그런 소리였을...) 웃곤 했답니다.

엄마는 항상  중환자실 밖 보호자 대기실에 계셨기 때문에 자주 뵐 수 있었지만 감당하기 버거운 병원비로 밤낮 일 하셔야 했던 아빠는 뵙기가 어려웠어요. 어쩌다 아빠가 오는 날이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늘 아빠가 온다고.. 내내 기다리고 들뜨고..

 

때로는 의식이 없는 날도 있었고 또 인공호흡기로도 숨 쉬기가 너무 힘들어 눈도 못 뜨는 날도 있었지만 그나마 컨디션이 조금 괜찮은 날은 멍하니 중환자실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너무 안스러웠습니다. 꿈을 꾸어야 할 나이에.. 이성에 관심도 가지고 연예인도 쫒아다니고 해도 모자를 나이에 밤낮으로 울려대는 알람 소리와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들 때로는 운명을 달리하는 옆 환자 가족들의 통곡을 들으며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모를 하얀 벽에 둘러싸여 있는 소녀는 시든 꽃잎처럼 제 맘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언니가 짬 날 때마다 책을 읽어주면 어떨까? 물론 바쁠 때는 못 읽어주겠지. 네가 내 담당일 때는 좀 더 읽어 줄 수 있겠지만 내 담당이 아닌 날에는 식사 시간이나 언니가 조금 일찍 출근해서 읽어주면 될 거 같은데..."

이렇게 해서 미우라 아야꼬 작가의 책을 한 권 나누어 나누어 다 읽어 주었지요.

실로 오랫만의 독서여서 그랬는지 아이는 그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질문도 던지고 웃기도 하고 찡그리기도 하곤 했지요. 어떤 날은 한 줄을 읽고는 환자 알람 때문에 그만 두기도 하고, 이제 막 궁금한 부분을 풀어내려는 순간에 옆 환자의 호출에 멈추기도 하면서...그렇게 대화를 해가며 그 책을 다 읽어갈 때쯤 ( 좀 힘들기도 했어요.. 제가...ㅎㅎㅎ) 이 작가가 쓴 '빙점'이라는 소설이 정말 유명한데 나중에 꼭 다 나으면 읽어보라고 말했답니다.

그냥 언니가 읽어주면 안 되겠냐고 하는 걸 너무 두꺼워서 좀 힘들 거 같으니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요. 사실 그 두꺼운 책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상태가 조금 호전되어 인공호흡기의 도움이 필요 없어 일반 병실로 올라가려는 중이었거든요.

그것은 정말 기적같은 일이었습니다. 산소를 아주 약간만 내려도 어찌나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콧구멍을 있는데로 벌렁거리며 얼굴이 빨개지다못해 허얘져서는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힘들어했거든요.

제발 살려달라고.. 너무 숨이 차다고.. 손을 들어올릴 힘만 있었더래도 두 손을 싹싹 빌었을 지 모를 정도로 헉헉대는 아이를 모질게 다그치며 설득하며 격려하며 간신히 간신히 뗀 인공호흡기였거든요.

헤어짐은 아쉬웠지만 좋은 일로 병실로 가는 것이니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웃으며 인사했는데...

 

몇 달 뒤 맞은 편 내과 중환자실로 (제가 일한 곳은 외과 중환자실이었구요.) 다시 입원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가 볼까.. 말까.. 망설였어요. 아주 조금 귀찮은 마음도 있었고 아는 사람 많은 내과 중환자실이지만 남의 병동에 그렇게 함부로 막 들어가는 것도 (중환자실은 면회 시간도 정해져 있을 만큼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거든요) 눈치가 보였구요.

그런데 퇴근 길 복도에서 소녀의 엄마랑 딱 마주쳤지요. 낮이었는데도 술 냄새와 담배 냄새를 풍기며 제 두 팔을 잡고는 우리 수진(가명입니다)이 좀 보러 가달라고.. 언니는 안 오냐고 매일 기다린다고 하십니다. 술 기운 때문이었는지, 저를 본 반가움 때문이었는지, 기약없는 치료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는지 어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제가 그 어머니의 나이쯤이 되었나봐요...

 

다음날 내과계중환자실로 찾아가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가워했습니다.

"에이그... 왜 또 왔어... " 잠깐의 면회 끝에 나오면서 또 올께.. 하면 " 꼭 와! 꼭 또 와!!" 강조를 했지요. 생각만큼 자주 찾아갈 수는 없었지만 내내 마음에 걸려서 모른 체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병원비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웠던 수진이네는 이동식 인공호흡기를 대여하여 집으로 퇴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인사도 못 하고 가서 아쉬웠지만 그토록 집에 가고 싶어 했으니까 그토록 좋아하는 아빠랑 살게 된 거니까 잘 된거라고 위안했었습니다..

 

제가 병원을 그만두고 얼마 안 지났을 때 아직까지 병원에 근무 중이던 제 올케가 혹시 수진이 이야기 들었느냐면서... 뉴스에도 나고 했다면서...

 

몇 날 몇 일을 마음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니 눈물이 나네요...

몇 년간의 병원비로 생활이 너무 힘들었나봐요. 빚도 많이 지고 아무리 일을 해도 갚아야 하는 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데 아이는 늘 같은 상태로 누워만 있으니 부부싸움도 잦았던 거 같고..

그 날도 두 분이서 싸우고선 엄마가 화가 나서 친정으로 가버렸답니다.

아빠가 있으니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나 하면서 간 거겠죠..

삶이 납덩이처럼 감당하기 힘들었던 아빠는 산 사람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봐요. 아이 위로 오빠도 하나 있었거든요.

엄마가 나가자 아빠가 아이 인공호흡기를 떼고 차마 아이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밖으로 나오셨다는 겁니다... 얼마 뒤 아차 싶어서 달려 들어갔는데 이미...

엄마도 친정에 갔다가 아이가 걱정되어 다시 돌아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자책감이 들었겠어요...

큰 아이도 있고 해서 참고 살려고 했는데

죽은 아이가 힘들어했을 거 생각하니 용서를 할 수가 없더래요. 그래서 신고를 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인공 호흡기를 떼었을 때 어떤 표정으로 힘들어 하는지,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는지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사람이에요.  그 모습이 생각나 점말 마음이 찢어지게 아팠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아빠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게 죽어서도 아이 마음에 멍이 될 것만 같아 눈물이 납니다.

 

딱 한 번 아이의 학교 친구들이 병원을 찾아왔었습니다.

몇 년의 병원 생활로 친구도 없고 늘 외로웠던 아이. 수진이..

죽음까지 외로웠던 아이...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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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익맘 2014-11-08 21:39 

아~

앤님...

말을 잇기 어렵네요..

 

죤듀이 2014-07-28 13:11 

...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앤님의 그 소녀를 오래 기억할게요.

 

기억하는 재주가 점점 작아져 감에도...기억할게요.

오니네 2014-07-27 01:06 

앤님..

아래 댓글에 괜시리 염려를 드린 것 같아 다시 남깁니다.

앤님 글로 인해 더 큰 마음의 짐이 생긴 건 결코 아닙니다.

작고작은 입장차이로 조금 힘겨운 일을을 겪게 되어

글 속의 부모님과 수진이의 입장 차이를 또 생각해 보게 되었을 뿐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심지어 부모자식이라해도

서로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으니

인간이란 참으로 외롭고 고독한 존재이지요.

(그동안 게시판에는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래서 제가 믿는 그분이 더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염려와 격려 감사합니다..

앤님의 글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맹이혀니맘 2014-07-26 14:44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남은 가족들도 평생 병수발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갈 걸 생각하니 더욱...특히 그 아버지의 마음이 가장 아프겠지요..
오니네 2014-07-25 12:36 

저에게 오늘 사실은 좀 힘든 일이 있거든요..

근데 앤님 글을 읽으니

더욱 눈물샘이 자극되어 참지 못하고 혼자 울고야 마네요...

 

아...

삶이 참....버겁네요...

빨강머리앤 2014-07-25 12:45:15
제 글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네요..
그저... 그 아이를 기억해주고 싶었어요.
극한 상황에서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할 때, 절대 가선 안 되는 길은 옵션에 넣지도 않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삶이란 게 참 버거워도 바닥이 실상 정말 바닥이 아니기도 하고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기적은 없어도 나중에 돌아보면 살아온 자체가 기적의 연속인 걸 깨닫게 되기도 하지요...
오니네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잘 이기고 힘 내시라고 기도합니다.......
홍박샘 2014-07-25 13:03:33
오니네 무슨 일유? 주님께 던져 버리고 앗싸~~뛰어~~
홍박샘 2014-07-24 23:14 
선뜻 댓글 달기가 쉽지 않군요. 그가족 모두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겠어요. 비극이란 말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빨강머리앤 2014-07-24 23:57:07
딜레마가 아닐 수 없어요. 제가 본 그 아버지는 딸을 사랑했고 가여워했거든요. 남은 가족을 살려야겠다는 처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선처를 받았다해도 평생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시겠죠...후회해도 늦었다는 게 참 서글픕니다..
그냥 가끔 한번씩 생각이 나요.
저 역시 후회되는게 있구요.
시간이 더 있을 줄 알고 제대로 못한 이야기인데 그래서 나중에 천국에서 꼭 보고 확인하고 싶은...
감정에 치우쳐 쓰다보니 읽는 분들은 부담스런 이야기였네요....
오니네 2014-07-27 00:59:26
박사님.. 응원댓글 감사드려요~~!!
작은 말 하나, 상대편과 다른 입장차이 하나가 무섭게 불어
가까운 지인들과 서로서로 오해를 하게 되었답니다.
상황 자체는 정리가 되어가나 그 사이 크고작게 생긴 생채기들은 시간이 좀 지나야겠지요..
누굴 탓하겠습니다.
다 부족하고 부족한 제 잘못이지요....
무릎으로 더 나아가라는 싸인으로 알고 그저 무릎 꿇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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