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를 본격적으로 소개할까 고민하다 그냥 대구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사실..전 서울 토박이에요.
서울에서 태어나 유치원에서 대학교까지 학교생활을 했고..사회생활도 서울에서 했습니다.
젊은 사람답게 서울지리는 내손안에 있소이다 자부할 정도로 많이 돌아다녔죠...^^
그럼 왜 대구까지 와서 살게 됬을까요? ....맞습니다...울집 영감(8살 차이니 영감이죠..)때문입니다.
대구...어릴때 저희 친정아버지가 위성쪽에서 일을 하셨어요.
외국에 가셔서 몇년씩 생활하시다 한국에 잠깐 들어오셨는데..
그때 저희 나라에는 지역별로 방송국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위성쪽일이라 당연히 아버지가 그 일에 참여하시게 되었죠.
또다시 아이들과 헤어져 지내는걸 싫어하던 아버지는 캠핑장비를 사서 방학시작과 동시에 대구 근교에 캠핑장에 자리를 잡게 됩니다. 거기서 출퇴근을 하셨고 저희는 방학기간동안 캠핑장에서 한달간 살았어요. 같이 퇴근후에는 낚시도 하고 저녁도 같이 지어먹고...
정말 좋았던 추억이 있던 곳입니다...그 한달이 끝이고 나머지는 교과서에 지역 특산물 사과라는거 말고는 기억나는게 없던 곳이네요.
그 대구에 아버지가 아닌 신랑때문에 또다시 내려와 살게 됩니다..^^
서울에서 운좋게 좋은 회사에 입사해서 좋은 월급에 좋은대우를 받고 평범하게 잘 살고 있었죠.
그때 회사생활을 하면서 한가지 일이 터졌는데..그당시 회사에는 외국인들이 대거 들어와서 근무하고 있었고. 회사내에서는 외국어와, 중국어,일본어가 붐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다들...실생활 대화를 여러나라 언어로 하기 시작한거지요.
엘리베이터만 타면 다양한 언어로 서로 대화를 했는데..듣기만 해도 공부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같이 근무하던 외국인중 어떤 한분이 저한테 회사내에 걸려있던 한문이 빼곡한 액자를 보고 무슨 뜻인지 설명해 달라고 하더군요...
근데...그 한문이 도통 눈에 안들어오고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더군요...ㅠ.ㅠ
영어도 못하는데 한문 해석까지...뭐 그런 난감한 순간이 있는지....
우왕좌왕 설명하는 내 모습이 무척 재밌는지 그 외국인이 저보고 귀엽다며 꼭 텔레비젼에 나오는 코메디언같아고 하더군요....헉! (-.-^)
그 뒤로 갑자기 공부가 목마르더군요...마침, 좋은 자리가 하나 있다고 후임자리로 저를 추천한 선배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게 회사를 관두게 되구요
그 선배가 퇴사까지는 몇개월 시간이 있었고 그때까진 공부에 매달려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때쯤 서울로 상경한 울 신랑은 작은 출판사를 차리고 사업을 하고 있었고..
저랑 인연이 닿아서 같이 일을 하게 되었네요.
물론 저는 선배가 퇴사할때까지만 일할 생각이었습니다.
일하면서...이 노총각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직원이라 친절하게 답해주었고.
어떻게 하면 장가갈수 있는지 농담으로 물어본걸 진지하게 답해줄 정도로 제가 무지 순진했던거죠..
일하다가 눈을 돌리면 항상 눈이 마추졌어요..
전, 그 나이많은 남자의 눈빛이 부담스러웠구요.(사장이라 일하는거 감시한다고 기분나쁘기도 했어요^^)
하루는 이 남자가 저한테 커피한잔 하자고 하더라구요. 할예기가 있다고..
휴계실에서 말하기를 너무 괜찮은 남자가 있는데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연히 사무실에 왔다가 저를 보고 상사병이 났다나...
그러면서 결혼까지 생각해도 좋을만큼 괜찮은 남자라는걸 자기가 보증한다고 큰소리 치더군요.
몇번 거절했어요...
남자를 사귀는게 원래 성격에 안맞고..누군가에게 속해있다는 사실도 너무 싫었거든요.
계속된 꼬심발림에 그냥 한번 만나기로 하고..그날 바로 거절하기로 작정했답니다.
그렇게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보니 안왔더라구요...괘씸하기도 해서 기다리고 있었더니..
저희 신랑이 들어오더군요.
첫만남에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은것에 화가나서 그냥 집에 가겠다고 하니,
그 남자가 자기랍니다...그러면서 어제밤에 한숨도 못잤다고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사귀자고 하더군요...^^
원래 닭살돋는거 싫어하고 이벤트도 싫어하는데...젤 싫은게 바로 그런 상황인지라..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있었네요..
사귀는건 싫고 그냥 만나나 보자고 했어요...그게 최대한의 예의였네요.
근데...이남자 완전 70년대 신성일 버전을 계속 보여주더군요.
[어제 한숨도 못잤다...너 밤길갈때 어두울까봐 가로등 심느라고...]
[나..또 못잤어..눈만 감으면 니가 보이더라구..]
[세상에...어제 별봤어? 널 위해 내가 뿌렸는데...니 눈이 더 초롱초롱 해지라고..]
밤마다 뭔 할일이 그렇게 많은지... ^^ 모든일을 밤에 합니다.ㅎㅎㅎ
제가 유치하다고 면박주면 [이 세상이 원래 널 위해 돌아가는거야. 다 니가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거라구...]라고 합니다... 유치하죠?
노래방가도 트롯트부르고..전 힙합좋아해서 랩있는 노래 부르고...
세대차이가 팍팍 나는 남친이었죠.
운동하라고 재즈댄스 등록해주고..아프면 병원 데려다 주고...
아침,저녁으로 데릴러오고 데려다 주고...
그러다 보니 모든 시간을 그 남자에게 맞춰야 하는 중독성이 생겨나더군요...
그렇게 남들 다 하는 연예라는걸 하게 됩니다.
둘이 뭐 죽을만큼 사랑했던건 아닌거 같아요...전 계속 밀어내는 상황...
신랑은 한번 잡은 먹이마냥 물고 안놓는 상황이니...
결혼이라는거...저 솔직히 넘 부담되고 무서웠거든요..
그냥 혼자가 편하고...새로운 관계를 맺는것도 싫고...
이런 성격인지라 사귀는 내내 신랑의 잔소리는 하늘을 찌르더군요. ^^
참, 그 선배후임으로 못갔어요..제가 퇴사한다고 하니 괜히 일 핑계를 대면서 마무리하면 퇴사처리해준다고 울그락 불그락 하더군요..
그렇게 저를 몇달간 붙잡았고..그 후임자리는 다른 사람이 들어갔습니다...ㅠ.ㅠ
그때 일처리야 우찌 되던 확 가버리는건데....
그렇게 사귀는 중에 시어머님이 유방암에 걸리셔서 서울로 올라오시게 됩니다.
그때 처음으로 인사드렸어요... 신랑이 등치가 커서 분명 어머님도 등치가 좀 있으실거라 생각했는데 마르셨더라구요. 그때 입원준비를 제가 도와 드렸어요.
예전에 교통사고를 너무 크게 당하셔서 병원 공포증이 있으셨던 분이라 본인 성함을 쓰시는데 볼펜이 달달 떨리시더라구요.
제가 손을 꽉 잡아드려서 겨우 쓰셨습니다.
어짜피 결혼할꺼고..신랑회사니 한달 휴직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병간호를 제가 하기로 했죠... 아버님도 그때 인사를 드리게 됐는데..
저를 넘 좋아하셨어요...어머님 젊을때랑 똑같이 생겼다고...또 할머니(신랑의)랑도 너무 닮았다면 서요.. 결혼하고 할머니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저랑 이미지가 닮기는 했더라구요.
병원에서 수술하시는거 같이 지켜드리고..친정엄마는 매일 문병오시면서 죽과 반찬을 만들어 오시고.. 아버지들은 서로 술한잔 하시면서 밤을 새우시고..
그렇게 어른들이 서로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구요....거참..전 그때까지도 결혼이라는거 부담 그 자체였는데...
어머님이 병실에 계실동안 지나온 예기도 해주시고, 신랑 말썽 피운것도 예기해 주시고..
같이 아침먹고 나면 모카커피를 하나씩 들고 병원 구석구석 산책을 했어요.
저는 저대로 신랑과 사귄거 예기하고, 어릴때 추억도 예기하고..
어머님과 병원을 탈출해서 쇼핑도 하고, 근처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몰래 식사도 했답니다..^^
지금도 그랬지만 병원에서도 너무 닮았다면서 딸이냐고 했어요.
서로 닮았다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확 가까워 지더라구요. 허물없어지고..
제가 옷을 못갈아입으니 같이 입원하시는 분께 부탁해서 코트도 하나 선물해 주셨을 정도로 절 많이 아껴주시더라구요...
퇴원하실때는 수술한 쪽 팔이 코끼리 다리처럼 되셨어요..
그래서 제가 같이 대구에 내려가기로 했고...신랑은 사업을 대구로 옮기게 됩니다.
사실..옮긴것보다..간단히 말해서 망했어요...출판일에 미숙해서 운영을 못하고 빚만 진 상태였거든요...그건 후에 알았답니다.
그렇게 서로 마음에 들어서 모시고 같이 살기로 했고...결혼준비도 대구에서 했어요..
완전 제 친정부모님의 제 결혼식의 손님과 다를게 없었으니....지금생각해도 아흑..넘 죄송해요...ㅠ.ㅠ
결혼하고 신랑이 사업이 망한것때문에 제가 기가 죽을까봐 걱정이 되셨는지..
저희 아버님이 항상 저를 2억 며느리라고 합니다.
2억주고도 못사는 며느리를 데려왔으니...
서울에서 망한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대충 망해서 손해본 액수가 나오시죠?)
어디가서 이런 며느리를 구해오겠냐면서...이정도면 2억 정도는 헐값이라면서요..
그게 지금 제 위치이며, 위상이며..가치입니다...[2억 며느리]^^
결혼해서 살림이라는거 처음 해봤어요..
그전에 신랑이 김치부침을 만들어 줬는데 반죽에 식용류를 붓더라구요..
원래 그런거라면서...근데..제가 아는게 없어서 진짜 부침할때는 식용류를 넣는줄 알았으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였죠.
모른다고 어머님한테 맡길수도 없었어요...아프셨기 때문에 숟가락도 겨우 드셨거든요.
인터넷보고 엄청 배웠습니다..밥하는거, 반찬,국 만드는거...
특히 아직도 생각나는 200원주면 배우는 칼로 써는법....이건 정말 유용하더군요.
칼질이 얼마나 힘들던지..손목이 나가는줄 알았거든요..
근데 칼질을 배우니 지금은 당근을 머리카락 굵기로 썰수 있습니다..^^
동서가 입덧이 심해서 서방님도 저희집에서 3끼 식사를 하시는 통에 정말 많은 음식을 해야 했습니다. 저희 집은 건물이라 서방님 회사가 2,3층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매일 이쪽으로 출근하시니 당연히 점심을 저희 집에서 드세요..지금도..오늘도..^^
저희집은 점심을 근사하게 차려서 먹습니다....식구가 다 모이는 시간이거든요..
그릇이 얼마나 무거운지...나중에 친정엄마께서 그릇 셋트를 보내주셨어요..
최대한 가벼운 그릇으로...근데..지금은 예전 그 그릇으로 먹습니다..두꺼운 사기...
매끼 6공기의 쌀로 밥을 하니 10인분은 넘을테고...그렇게 1년이 딱 지나니 15분의 시간만 있어도 반찬 3가지는 만들수 있는 실력까지 되더군요.
또 매끼 식사와 생신상등을 차리니 중식,한식,일식을 넘나들게 되더라구요..^^
결혼하고 신랑이 또 다른 사업을 준비합니다. 레저였죠.
스쿠바를 마스터까지 자격증을 딴 터라 오히려 출판일을 했을때보다 사업이 잘 됬습니다.
그래서 외국에 몇달씩 나가있었죠.
타지에 독수공방 혼자 있는 며느리를 또 안타깝게 생각하신 아버님이 일주일에 두번씩 수고했다고 외식을 시켜주십니다.
원래 밥해주는 사람은 다른사람이 만든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서요..
그래야 음식맛이 느끼지, 자기가 한 음식만 먹으면 스트레스 받는다구요.
대구에 있는 유명한 음식점은 다 가본거 같아요.
그렇게 다니면서 대구 길이 눈에 들어오고...일요일 아침식사가 끝나면 [10시까지 준비해서 올라와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곤 무조건 어디론가 당일 여행을 가십니다.
제이 4살까지 다녔으니...대구 주변 도시는 다 가본거 같아요.
특히 6시 내고향에 나오는 지역 특산물을 사러 온갖 장터는 다 다니게 됩니다. ^^
정말 갈곳이 없으면 팔공산이라도 데리고 가셨어요..
제이가 케이블카를 좋아할때는 전국 케이블카가 있는 곳이라면 다 찾아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다...아버님까지 병에 걸리셨고...지금은 어머님과 제가 병수발을 들고 있어요..
그때문에 매주 가던 추억 여행도 사라지고...집안은 어두워졌습니다.
가슴아픈 시간이었습니다...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이 좋아지셨어요..
유명하다는 음식점, 맛집...다 가봤는데...
결론은 하나입니다..내 입맛에 맞아야 그 식당이 맛있는 집이라는거..
길가다 만난 천원짜리 국수집이 만원짜리 유명한 식당보다 맛있을때가 있었어요...
신랑이랑 살다보니 성격이 너무 비슷해서 그렇게 거부감이 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정말 친구같이 좋네요.
세계에 있는 맥주를 다 마셔보자고 하고 정말 맥주 종류는 다 마셔봤나봐요..
그 후에 와인에 도전해 봤는데...이건 종류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습니다..알콜중독 될것 같더군요.
또 식당을 정하면 거기 있는 메뉴의 음식을 다 먹어보고 다른곳으로 옮깁니다.
그러니..[오늘은 뭐먹을래?]이게 저희는 없어요. 그 다음 순서가 항상 있으니...^^
동성로에 식당은 다 가보자 작정하고 식당 구석구석 다 가봤습니다.
어디 나가고 싶을때나 외식이 필요하면 무조건 다음식당이 있으니..단순하고 재미있는 시간이죠.
아직도 동성로는 다 못먹어봤어요...구석구석 얼마나 많은지....
제가 대구에 내려와서 가장 잘 한일은...
신랑 키우기 입니다.
결혼전보다 결혼후에 신랑이 잘되면 며느리가 어깨를 펴고 산다는데..
제가 다행이도 그런 케이스네요.
저..2억 며느리에요...ㅎㅎㅎ
우연히 사진에 소질이 있는걸 발견해서 남편을 꼬시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됐고..
그게 벌써 내년이면 박사학위가 끝나네요.
또 사진으로 많이 유명해졌어요. 서울에 유명한 출판사에서 신랑이름으로 책을 출판하자고 연락이 왔고, 어떤 출판사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수중생물탐사책을 재미있게 만들자고도 했네요.
아마 매직스쿨버스처럼 될것 같은데...이게 스리즈로 나갈경우 지상사진도 필요하고, 아직 수중생물에대한 관심도가 떨어져서 잠시 보류된 상태입니다.
LA, 홍콩, 일본, 중국, 하와이등에서 전시회도 했구요.
대만뉴스에도 나오기도 했네요..
우리나라에 3D사진을 처음으로 가져와 교수님과 연구해서 발표하기도 했구요.
전국 초대 전시회도 여러번 했답니다...
이 모든것에 제가 있었고.. 제이도 같이 다녔으니...좋은 시간이었죠.
제이는 아직도 갤러리가 자기 놀이터인줄 압니다.. 아빠의 작업장이니...
굳이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관람하지 않아도 1년에 몇번은 각종 갤러리를 접하는거 같습니다.
이건 아이키우면서 참 좋더라구요.
대구는요..
분지라 한곳에 모여있는 성향이 있어요.
어디를 가도 가까이 있습니다. 백화점, 마트, 터미널, 역,..엑스코까지요.
특히 저는 코스트코가 코 앞에 있다는게 너무 마음에 듭니다..
거기서 영어책을 많이 샀거든요...자극도 되고...^^
또 지하철 2호선까지 있지만 길이 워낙 잘 되어있고 한곳에 몰려 있어서 대중교통보다는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구요.
2명이면 택시타는거랑 똑같아서 저도 대구에서는 택시를 많이 이용하게 되더라구요.
소비도시라는 말처럼 회사가 별로 없음에도 다양한 대중매체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큰 극장만 해도 중심가에 가득있죠.
처음 결혼하고 대구는 사과밭있는 시골일거라 생각했는데..절대로 아니더군요.
오히려 사과따러 체험장에 다녀옵니다.
잘 발달된 도시고...소비도시기는 하나 한곳에 몰려있어서 과도한 소비가 되는곳도 아니에요.
그래서 보세보다는 백화점과 메이커를 선호합니다.
자동차가 집집마다 2대씩 있는 집도 많구요.
물가는 다른곳에 비하면 아주 싼 편입니다..시장도 아주 잘 발달되 있구요...
여기 살다가 서울에 가면 갑자기 살것들이 많아져서 돈이 팍팍 나가더군요.
일단 여기는 놀이동산만 하더라도 한군데뿐이고..주변 지역에 놀이동산이 없어요.
다른 지역에서 대구로 옵니다.
근데 서울은 많이 있잖아요..그러니 돈이 술술 나가죠..^^
그래서 대구에 몇년 살면 돈이 잘 굳는것 처럼 보이고..아무리 써도 돈이 남는다는 인상이 있어요.
살다보면 전혀 아니지만...
어느지역이나 가시면 시내라고 불리는 번화가가 꼭 있습니다. (서울,부산을 뺄께요..거긴 넘 많구요)
그곳은 꼭 가보세요.
그럼 그 지역이 어느정도 발전되었는지 알수 있거든요.
대구는 동서로에 가보시면 아실껍니다..시장은 서문시장,칠성시장에 가보시면 되구요..
음식은 동인동 찜갈비, 막창골목,...에고 생각이 안나네요...암튼 이 두가지 유명합니다.
대구 살이 10년 넘게 하면서...사투리도 배우고...
(은주리님이 저보고 대구사투리 오랜만에 듣는다고 하시더군요^^ 실은 설 토박이였는디...-.-;)
절 많이 아껴주시는 시어른과, 여전히 70년대 신성일스타일의 남편과, 귀여운 제이와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노력해서 잘 살았으니...앞으로 그걸 잘 유지해서 살아가는게 숙제로 남아있네요.
살다보니 어디서 사는냐는 중요한게 아니더라구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지...전 잘 극복한 편인거 같습니다.
지루한 제 예기는 여기서 끝이네요..
다음으로 누구를 콕! 찍어볼까 고민하다 [사자털]님 이야기가 궁금하더군요..
이야기 들려주세요...어떻게 살게 되셨나요??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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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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