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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을 못 타서 속상한 초등1년 정빈이

글쓴이 juice

등록일 2003-07-01 00:09

조회수 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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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오늘은 정빈이와 남편만 산책을 나갔습니다.
예슬이는 기말고사 준비중이라 바쁘고 저는 몸이 그리 좋지 않아 집에서 쉬고 싶었거든요.
산책길에 사 온 음료수를 예슬이가 마셨다는 이유로 정빈이의 울음은 집을 떠나갈 정도였어요. 사는 재미뿐이지 잘 마시지도 않은 음료수를 두고 평소와는 달리 울음이 오래간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더군요.

잠이 온다며 제 배 위에 누워서(정빈이는 아직 제 배 위에서 잠이 듭니다.) 하는 말이
"저도 상타고 싶어요."
하는데 그 목소리가 아주 복잡한 느낌이었어요.

"왜? 오늘 친구들이 상 탔어?"
"네. 무궁화 그리기와 국군아저씨에 감사하다는 편지 쓰기 한 것으로 친구들이 상탔어요."
그러면서 상을 탄 친구들의 이름을 주욱 대고는 많은 친구들이 상을 탔는데 자기도 상을 타고 싶다고 하면서
"방학 할 때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에게 상을 준대요. 그 때는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엄마는 언제 속이 상하냐고 묻더군요.

정빈이는 아직 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고 학교 게시판에 칭찬 받을 때마다 붙여지는 스티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아서 나름대로 속이 많이 상한가봐요.
지난 번 공개수업 때 정빈이는 학급 게시판에 붙은 자기의 스티커를 가리키면서 숫자를 헤아려 보이더니 저렇게 많이 받은 아이도 있다면서 가장 많은 스티커를 받은 아이의 포도송이(스티커 붙이는 밑그림)를 가리키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지게 많더군요.

부모님 도장 받아오라는 '수리능력카드'는 며칠 째 집에 가져오지 않다가 오늘 겨우 가져온 아이이고, 이런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니 스티커의 숫자가 적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는 제게 남편이 아이가 왜그러냐고 묻기에 상을 받지 못해 속이 상해 그런다고 했더니 남편 하는 말이 이랬습니다.
"거 웬만하면 하나 주시지. 무궁화 그림이라면 정빈이 그림 잘 그리니까 받을 만 할텐데. 그리고 국군 아저씨께 쓰는 편지는 내가 봐도 잘 썼던데 상 하나 주시지."
저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당신 가끔 참 귀여워요.

아이의 마음이야 다 같겠지요.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라는 것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있겠습니까? 그저 상을 받고 싶은 마음, 받지 못해 속상한 마음, 상을 받는 아이들이 부러운 마음뿐이겠지요.

정빈이가 잠들기 전에 저희들이 나눈 대화의 나머지 부분입니다.

"엄마도 상을 못 받아 무지 속상했었어. 그래도 정빈이는 참 의연하네. 엄마는 막 울었었는데."
"저도 울었잖아요."
"그건 언니가 주스를 마셔서 그런 거잖아. 상 못 타서 속상했던 것은 꾹 참고 있었잖아. 엄마보다 훨씬 낫네. 참을성도 있고. 그런데 말이야 상은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탈 수 있는 거야."
"그래도 오늘 타고 싶었단 말이에요."
"물론 그렇지. 오늘 탔으면 좋았겠지. 그런데 상을 탄 사람이 많았어, 못 탄 사람이 많았어?"
"못 탄 사람이 많지요."
"오늘 상을 못 탄 사람들 모두가 정빈이 처럼 속이 상할 거야. 그런데 정빈이 처럼 다음에는 꼭 타야지 하면서 결심하고 노력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은 없을 거야. 오늘 어머니가 정빈이가 대단하고 멋지다고 생각한 점은 바로 그 점이야. 다른 아이들은 아마 속상해서 울고만 있을걸(다른 아이들에게는 많이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엄마가 정빈이에게 상을 하나 줘야겠다. 이렇게 멋진 생각을 한 상말이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마음이 좀 풀렸는지
"그런데 의연이 뭐예요? 아까 어머니가 의연하다고 했잖아요."
"의연? 내일 정빈이가 사전에서 찾아 봐. 정빈이 사전 찾기 잘하잖아. 사전 찾기 하면 정빈이가 상을 받을텐데, 그지?"
"지금 찾아볼래요."
"울어서 눈이 아픈 상태에서 사전을 보는 건 좋지 않아. 사전의 글씨는 정말 작거든."
"돋보기 가지고 보면 되잖아요."
"그래, 그럼 돋보기와 사전 갖고 올 테니 의연만 찾아보고 자자."

사전 찾기를 하다가 아이는
"빛이 모여요. 빛이. 태양도 아닌데 왜 빛이 모이지? 전기 불이 모인 거니까 이건 빛이 아니고 전긴가?"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빛이 있어서 그림자가 만들어진다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등등 돋보기로 인해 생긴 의문들을 물어대더니 어느새 잠이 들더군요.

학교 생활이 힘에 부쳐 그런지 정빈이는 방학을 아주 열심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학하면 뭘 할 건데 그렇게 기다리느냐고 했더니
"반둥반둥 놀려고요."
'빈둥빈둥'을 잘 못 전해들었던 모양입니다.

놀고 싶어서 방학을 기다린다는 초등학교 1학년의 아이의 말이 참 마음 아프더군요.
아이들의 능력을 평가하는 카드는 왜 그렇게 많습니까?
정보능력카드, 수리능력카드, 받아쓰기등급 카드 등등.
정빈이는 놀고 싶은데, 너무 너무 놀고 싶은데 공부를 해야하느냐고 묻습니다.

요즘 정빈이가 몰두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사전 찾기입니다.
오늘 정빈이가 상을 타지 못해 속상한 줄은 꿈에도 모르고 며칠 너무 과로한 탓에 빨리 좀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제가 집으로 돌아 와서 정빈이에게 한 말입니다.
"정빈아, 엄마 잠시 자는 동안 사전에서 아주 어려운 단어들을 찾아 줘. 엄마가 모르는 단어로 말이야."
"알았어요. 아주 아주 어려운 걸로 찾아 놓을게요."
제가 한 잠 자는 동안 정빈이가 찾아 놓은 단어들입니다. 어려운 단어를 찾느라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죠?



지난 주 남편이 늦게 온 어느 날 정빈이와 놀다가 끝말잇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빈 : '름'은 안 돼요. 기름, 지름, 소름 이런 거는 하기 없기에요. 어머니 먼저 시작하세요.

엄마 : 도둑.

정빈 : 둑? 둑으로 시작하는 말도 있어요? 나는 그런 말 모르는데.

엄마 : 거실 책장에 가서 국어 사전 가져 와서 찾아 봐.

정빈이에게 사전을 직접 찾게 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 '도둑'으로 시작을 해 보았습니다. 저와 예슬이가 사전 찾기를 하는 것을 많이 보고 거들기는 했지만 아직 정빈이 혼자서 사전 찾기를 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정빈 : 둑이니까 디귿에서 찾아야 하는 거 맞죠?



사전 찾기를 열심히 한 끝에
정빈 : 하나 있어요. 둑으로 시작하는 말. 둑길. 그런데 둑길 이 뭐예요?

엄마 : 읽어 봐.

정빈 : 둑 위로 나와 있는 길. 이게 뭐예요?

엄마 : 위에 둑이 무엇이라고 되어 있는지 읽어보고 물어 줘.

정빈 : 둑 1, 둑 2가 있어요. 뭐 읽어요?

엄마 : 둘 다 읽어 봐.

정빈 : @#$&**&^%$$%^**.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엄마 :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많아지겠지. 그 물이 마을로 오면 어떻게 될까?

정빈 : 물 속에 빠지겠지요.

엄마 : 그렇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빈 : 도망가야돼요. 물에 안 빠지게.

엄마 : 그래도 되겠지만 물이 마을에 오지 않도록 막으면 도망 안가도 되겠지.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정빈 : 으음, 물보고 오지 말라고 하면 되나?

엄마 : 오지 말라고 한다고 안 오겠니? 오지 못하게 해야지. 강 옆을 흙이나 돌로 아주 높게 만들면 어떨까?

정빈 : 그러면 되겠다. 그럼 거기 막혀서 물이 마을에 못 오겠네요.

엄마 : 그렇지. 그렇게 높이 만든 것을 둑이라고 해. 그리고 그 둑 위로 사람이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빈 : 길이 있어야 돼요.
엄마 : 그렇지. 그런 둑 위에 있는 길이 둑길이야.
정빈 : 둑이 두 개라니까요. 한 개는 뭐예요?
엄마 : 그건 엄마도 잘 모르겠는데.
정빈 : 치이, 저번에는 천재라고 했으면서.
엄마 : 천재도 모르는 게 있어. 둑길 했으니까 이번에는 엄마 차례지. 길손.
정빈 : 길손요? 길손은 또 뭐예요?
엄마 : 찾아 봐.
아직 원리를 터득 못 한 상태라 거의 몸부림을 치는 정빈이


이렇게 길손을 찾아 읽어 본 뒤
정빈 : 이제는 제 차례죠. 가만있어 봐요. 어머니가 길손했으니까 손으로 시작하는 말이죠? 사전 찾아보고 아주 어려운 것으로 할 거예요.

한참을 찾은 정빈이가 고른 단어는 '손독'이었어요. 자기가 모르는 단어니 아주 어려운 단어라 생각했나 봐요. 엄마 무너지는 모습이 그리도 보고 싶은지 엄마가 모르는 단어를 찾으려는 마음에 눈이 반짝이더니 이 때부터 정빈이의 사전 찾기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가 되면서 가속이 붙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도둑 ▶ 둑길 ▶ 길손 ▶ 손독 ▶ 독불장군

정빈 : 독불 장군? 찾아 봐야지. 남의 의견은 묵살하고 저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람. 묵살은 또 뭐야? 이것도 찾아 봐야지.

이쯤 되면 드디어 저에게 휴식의 시간이 온 것이겠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들을 찾느라 더 이상 끝말잇기를 하자는 말도 없이 혼자서 사전에 코를 박고 있는 사이 저는 깜빡 졸기까지 했답니다.

그렇게 놀다가 알림장을 보자고 했더니 숙제가 자기가 싫어하는 동물과 좋아하는 동물 그림을 1장씩 그려오기였어요.
정빈이는 싫어하는 동물은 악어, 좋아하는 동물은 토끼로 결정을 하더니 그림은 그릴 생각은 않고 또 사전을 펼치더니 악어와 토끼를 찾아보더군요.

빨리 그림을 그리는 게 어떻겠냐고 했더니 이러더군요.
"사전에 보니 토끼는 앞다리가 뒷다리 보다 짧다고 되어 있고 수염이 길다고 되어 있으니 그림을 그릴 때 그렇게 그려야겠어요."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래도 사전에서 읽으니까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서 자기도 '이상하네'하며 고개를 갸웃갸웃하더군요.

그림은 결국 악어와 토끼 반 마리까지만 그리고는 잠이 들어 그 다음날 아침에 토끼의 나머지 부분을 그렸답니다.

이렇게 사전 찾기에 재미를 붙인 정빈이는 요즘 사전을 끼고 삽니다. 자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리도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언젠가는 정빈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자신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상을 받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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