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중학교 2년을 다녔지만, 중1때 1년을 다녔던 선화여중을 잊지 못한답니다. 그곳 학교에서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서 고무줄 뛰기 하던 것, 매점에서 땅콩 사먹던 것, 꽃아치 문 앞에서 사진 찍었던 일, 학교 뒤뜰에서 친구들이랑 수다 떨던 것, 단 1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네요. 지금도 학창 시절 하면 그 1년이 떠오른답니다. 대학 때는 그 곳이 그리워 부산 갔을 때 한 번 찾아가 보기도 했었는데...
근데, 서울에서의 학교 생활은 참... 중학교도 운동장의 먼지만 떠오르고, 고등학교도 영 정이 안 가서... 어쨌든 부산에 사신다니 반가워서 한마디 주절거려 봤습니다.
수상 소감도 아주 멋진 한편의 시로군요.
그런데, 부탁드릴 것은...
글 올리실 때 문단 별로 조금씩만 띄워 주시겠나이까?
읽기가 좀 불편해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성원맘님의 글입니다.
> 어제 전화를 받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 그냥 제 생각이 도움이 될까해서 올린 글들인데..
> 이렇게 상까지 주시다니..
> 학교다닐때 받아본 이후로 상받기는 처음이네요.ㅎㅎ
> 감사합니다..꾸벅.
> .
> 6개월된 성원이를 안고 남편직장땜에 경남 하동에 이사한게
> 9년전..
> 부산에서 나고 자라 시골로 첨 이사하면서
> 아름다운 경치와 여유로운 전원생활의 꿈에 부풀어
> 하동에서 참 아름답게 생활했었습니다.
> 둘째 딸을 거기서 낳았지요.
> 하동 장터에 아이들 손을 잡고 정겨운 할머니들이 팔던
> 텃밭의 야채를 사던 그 시절..
> 봄이면 보리밭을 눈이 시리도록 쳐다보고
> 매화꽃에 흠뻑 취하다가 매실을 사서 쥬스를 만들어 먹고
> 흐드러진 벚꽃에 낙화하는 꽃눈을 맞으며 쌍계사를 오르지요.
> 여름이면 섬진강 냇가에 나가 물장구치며 재첩을 잡았습니다.
> 저녁때면 잡은 제첩으로 된장국을 끓여먹고
> 가끔씩 녹차밭에 찾아가면 녹차밭 사이를 아이들은 좋아라 뛰어 다녔습니다.
> 하동읍 악양에 가면 조그마한 녹차박물관이 있는데
> 일산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그야말로 소박한 박물관입니다.
> 정많은 시골사람들은 녹차를 끓여 이웃집 언니마냥 대접해 주었지요.
> 가을이면 감과 밤이 무르익습니다.
> 땡감 대봉 홍시... 할머니가 손주생각난다며
> 실컷 따먹고 가라며 성원이 손에 안겨준 커다란 감이 오늘은 왜이리 생각나는지요.
> 누렇게 익은 황금들녘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와 그 아낙네들의
> 구릿빗피부를 보며 가슴에 성호경을 그었습니다.
> 저분들에게 복이 내리길 바라며..
> 겨울엔 더욱 쓸쓸한 시골..
> 그래서 더욱 겨울을 느낄수 있었던곳.
> 아이들이 볼이 빨갛게 터지도록 팽이를 돌리고,자전거를 타고..
> 그야말로 추위와 친구하고 놀던 건강한 성원이.
> 우리는 가끔씩 진주행 기차를 탔습니다.
> 하동엔 없는 영어서점을 가기 위해서지요.
> 성원이가 3살까지는 있었던 비둘기호가 없어지고
> 650원 짜리 통일호에 몸을 실을땐,
> 어찌 시골의 간이역은 이처럼 정겨운지..
> 가끔은 아이에게 시를 지어 읊어 줄 정도로 가슴따뜻한 곳이었습니다.
> 기차역무원 아저씨에게 아이들은 90도로허리를 꺽어 인사를 하고
> 역무원 아저씨는 환한 웃음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지요.
> 시처럼 아름다운 곳에서 한편으론 사람이 너무 없어 외롭기도 했던 그곳에서
> 영어동화는 제게 자그마한 자극이었습니다.
> 아이에게 무언가 해줄수 있어
> 시골에서 느낄수 있는 무료함을 떨칠수 있었지요.
> 작년에 이곳 부산으로 다시 이사를 왔습니다.
> 저의 아들 성원이와 딸 윤하가 어제는 싱싱카를 화장실로 가지고 들어와
> 바퀴를 씻더군요.
> 밖에 나가봐야 친구도 없고
> 조금 놀다보면 차가 씽씽달려 아이들이 무서워 하고
> 그래서 그냥 집에서 둘이 탄다고 열심히 싱싱카를 씻어 댓습니다.
> 어제, 오늘 아침까지 거실에서 싱싱카를 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 가슴한켠이 답답했습니다.
> 얼마나 뛰어놀고 싶을까..
> 조금만 뛰어도 아래층에서 오는 인터폰 소리에 아이들과 저는 가슴을 졸이고
> 아이들에게 뛰지 마라, 살살걸어라가 입에 붙은 나는 새삼 미안해 집니다.
> 지금 제가 젤로 그리운 것은 우리 아이들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 5일장에 나가는 겁니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제철 과일을 사들고,
> 팽이를 사고 좋아라 뒷자리에서 내 허리를 감싸며
> 노래를 부르던 우리 아이들
> 자전거를 타고 다닐때 느껴지는 바람은
> 어찌나 시원하고 부드러운지..
> 아이들과 저는 크게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고 씽씽달렸더랬습니다.
> 하동초등학교 낮은 담벼락의 나무들과
> 조그마한 미술학원,
> 불량식품 투성이던 문방구가
> 모두 친구처럼 느껴지던 그때..
> 저는 영어동화가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
> 저의 아이가 영어를 굉장이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 어떤 분은 제게 영어 정복기를 말씀해 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 아직 저는 정복 못했습니다.
> 갈길도 멀고 봐야할 책도 더 많이 눈에 들어 옵니다.
> 단지 길이 이제 눈에 보였기 때문에
> 안심하고 옛날처럼 마음 조금해 안하면서 할수 있는 거지요.
> 전 하동에서의 생활이 하느님께서 제게 주신 조그마한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 30대의 혈기 왕성했던 아줌마가
> 다소 무료하기도 했던 시골 생활을 벗어 나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으니까요.
> 가끔씩 외국에서 보내오시는 글들과 사진을 보면
> 전 하동이 생각납니다.
> 차이가 있다면 문화의 차이일뿐이죠..
> 난 한국적인 정서에서 그분들은 그나라의 정서에서..
>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 그리고 저의 아이들에게 영어때문에 다른것들을 놓지지 않도록
> 더욱더 많은 고민을 하고 책을 보고 공부하겠습니다.
> 모두들 장마철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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