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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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는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자신의 외모 꾸미기나 취미활동에 관심이 많아지게 되고, 옷, 신발, 악기, 운동용구 등을 구입하고 싶은 욕구도 커져만 갑니다.
부모로서는 기쁨이가 이제 8학년이 되어서 세컨더리 스쿨에 들어갔으니, 보다 더 학교 생활과 학업에 전념하기를 기대하나, 본인은 부모의 기대에 대한 짐을 한쪽으로 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는 생활로 자기만족을 충족시키는 일에도 만만치않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어합니다.
집에 있는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더 열심히 좋아하고 연습하기를 바랬으나, 이 녀석은 곧 관심을 돌려서 드럼과 베이스 기타를 배우고 갖고싶어 합니다. 이제 더 이상 엄마가 사다주는 옷은 구석에 입혀지지 않은 채 걸려서 먼지를 머금고 있고,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만을 고집합니다. 저는 아이의 운전사나 옷값을 지불하는 사람으로서 쇼핑몰에 따라가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노래를 하던 베이스기타가 운좋게도 굴러들어온 것은 한국에 있는 막내이모가 보내준 졸업기념 용돈 덕이었습니다. 베이스 기타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엠프이지요. 그래서 그 엠프를 산다고 또 용돈을 모읍니다. 결국 그것도 구하긴 했습니다. 사놓고 겉멋에만 치중을 할까봐 은근히 걱정을 했으나 진지하게 연습을 하고, 학교 재즈밴드 선생님의 격려도 받아가면서 자주 '사용'을 하는 것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자금지원을 하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조달하려고 하다보니, 터무니 없이 적은 용돈을 가지고는 원하는 것을 한 가지만 하려 해도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11세 때, 베이비시터 코스를 마치고 수료증을 받았으나, 학교에서 학부모 모임 때 한 번 일을 한 것 빼고는 들어오는 일이 없어 그것도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North Shore'라는 지역신문이 일주일에 세 번씩 배달됩니다. 어린이들도 부모의 동의 하에 신문배달을 할 수 있어서 주변에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신문 돌리는 것을 가끔 보곤 합니다. 기쁨이가 그 전부터 이 일을 하고 싶어했지만, 밴쿠버는 늘 비가 오기 때문에, 비 맞으면서 추운데 돌아다니다가 감기 걸릴 우려도 있었고, 아이가 일단 시작했다가 싫다고 그만 둘까봐도 걱정이 되었으며, 아이가 뭘 한다고 시작했다가 결국은 우리 부부가 그 일을 떠맡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선뜻 허락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기쁨이가 제법 몸도 마음도 커서 책임감도 보여주고, 독립하려는 의지도 강한게 기특해서 허락을 하게 된 것입니다.
9월부터 일을 시작하면서, 우리집으로 기쁨이가 배달할 분량의 신문과 광고지들이 묶음으로 먼저 배달이 되면, 그것을 풀어서 나누어 각 신문에 광고지를 넣고 배달을 하는 것입니다. 배달료는 2주에 한 번씩 지급이 되는데, 배달료의 근거는 각 신문의 페이지 수, 광고지의 장 수에 따라 결정이 된다고 합니다. 이곳 밴쿠버는 늘 비가오는 관계로, 기쁨이가 처음 배달 신청을 했을 때, 신문을 돌돌 말아서 고무줄로 고정을 시킨 후에 넣는 비닐봉지도 같이 받게 되었습니다.
자랑이는 비가오는 날이면 누나를 돕는다고 신문을 말아서 비닐봉지에 넣는 일을 즐깁니다. 금요일에는 광고지의 양이 무척 많아서, 우리 가족은 모두 기쁨이의 배달료가 많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거실에 잔뜩 신문과 광고지를 벌려놓고 서로 돕느라고 바쁩니다. 자랑이는 이렇게 가끔 도울 때마다 누나에게서 댓가로 얼마를 받습니다. 기쁨이가 자신의 용돈이 아깝거나 혼자 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이면 자랑이에게 돕지 말라고 미리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기쁨이 통장에는 이번 겨울 장만해야할 스노우보드 값이 모아져갑니다. 12월부터 스키장에 다니게 될텐데, 신문배달로는 보드 한 개 값도 모으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부츠와 바인더도 사야한다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한다고 초조해하는 기쁨이를 보면서 저는 어찌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이를 낳을 때부터 급격한 삶의 전환이 전개되지만, 키우고 같이 살면서도 매일 새로운 일로 도전을 받고, 갈등을 하고 늘 적절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자녀가 사춘기에 들고 부모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가족들은 새로운 갈등의 단계에 접어들게 되는데, 자녀를 이해하면서도 부모의 기대를 납득시켜서 절충점을 찾아내는 일이 커다란 도전이 되는 과제입니다.
기쁨이가 과거에는 저절로 생기는 용돈이나 필요한 물건들에 대하여 소중하게 여기거나 감사할 줄을 몰랐는데, 이제는 가끔 심부름을 해서 건네주는 1불짜리 동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저금통에 모아두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어제는 한국마켓에 가서 메로나, 바밤바, 팥빙수, 돼지바 중 하나를 먹고 싶다고 해서 사주려고 했는데, 먹고싶은 것을 참을테니 돈으로 달라고 해서 2불을 주었더니 그것을 다시 저금통에 넣었습니다.
기쁨이가 그 정도만 했으면 좋겠는데, 없는 시간을 쪼개서 다른 일거리를 찾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고 하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혼자 고민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