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정말 작은. 아주 작은 간호사였어요.
저를 직접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제 체구도 정말 작거든요.
간호사 면접 볼 때 그 몸으로 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런 저보다도 그녀는 더 작았습니다.
중환자실의 자동환자침대는 늘 그녀에게 높았고
날렵하고도 당차게 의자를 끌어다 올라가서 수액을 거는 모습은 그녀만의 유일한 특기였어요.
그녀는 우리들 사이에서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답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외모인데다 자신은 나이가 아~~주 많다고도 했다가 어리다고도 했다가..
저와 동기였는데도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였죠.
아무도 그녀의 나이를 몰랐어요.
황소만큼 눈이 컸던 그녀는 무척 경건하면서도 무척 호들갑스러웠어요.
두 단어를 동시에 쓴다는 게 참 이상하지만 그녀는 분명 경건하고도 호들갑스러웠답니다.
그녀와 기숙사 같은 방을 사용했던 후배의 말로는 늘 책상에 기도용 촛불을 켜고 새벽 기도를 한다고 했어요.
교대근무라 불규칙한 생활에도 밤 근무가 아니면 어기지 않고 말이지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녀는 개신교인 저에게도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힘든 상황이 닥치면 ‘우리의 그분'에게 기도하자고 말하던 그녀였지요.
그런 그녀도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야기 할 때에는 그 큰 눈을 이리 저리 굴려가며 한 옥타브를 올려 수선스럽게 떠들어대는 겁니다.
작은 손으로 입을 가려막고 '호호호' 웃어가면서요.
그녀가 아무리 동작을 크고 화려하게 해도 마치 어린 아이의 율동이나 벌새의 날개짓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녀는 우리들의 연애사를 들으면서 공감해주고 응원해주었지만 자신의 연애사에 대해선 'secret'이라고만 했어요.
애인이 없군요.. 하면 지금 호주에 가 있다고 말하곤 했지만 그 진실 여부는 끝끝내 알 수가 없었지요.
중환자실은 간호사 1명이 환자 2-3명을 맡아 봅니다.
그런데 간 이식 환자나 전염력이 강한 환자가 있을 때에는 1대1로 맡기도 했어요.
그런 환자를 볼 때는 가운을 한 겹 더 입습니다.
정말 귀찮고 답답합니다.
이식 환자의 경우는 외부의 균을 막아주기 위해서, 전염력이 있는 환자는 간호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어쨌거나 착용하는 것이 많아지니 불편하기 그지 없었지요.
그런데 그 멸균가운이라는 것이 사이즈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그녀가 걸치면 땅에 질질 끌릴 정도였어요.
그러면 그녀는 옛날 여인네들이 일 하기 위해 한복을 휙 돌려 매듯이 그것을 돌려 허리를 질끈 동여 매는 겁니다.
한번은 그녀가 간 이식 환자를 담당할 때였어요.
이식을 받고 나면 거부반응을 막기 위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약을 먹게 합니다.
그런데 그 약이 종종 정신착란을 일으키거든요.
그 날 그 환자가 그랬습니다.
갑자기 횡설수설 하더니 거친 말과 함께 난동을 부리기 시작한 겁니다.
간 이식 환자는 수술 후에 몸에 달고 있는 줄이 한 두 개가 아니에요.
각종 모니터링 줄에서부터 심장 근처까지 들어가 있는 주사바늘. 몸 안의 불순물이 나오는 배액통. 소변 줄. 물론 수술 부위가 아물지 않았으니 그게 터져도 큰일이고요.
면역 억제제 부작용으로 환자가 미쳐 날뛰면 간호사 한 명의 힘으로는 제압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격리실엔 자그마한 그녀 혼자였고 밖의 동료들을 부르러 나가기에는 환자의 상태가 너무 위험했던 거죠.
묶어 놓았던 환자의 손이 풀리고 순식간에 그가 폴대(수액 걸어놓는 막대)를 잡아 뽑아 휘두르던 찰나.
그녀가 한 행동은 실로 놀라웠습니다.
폴대를 휘두르는 팔을 두 손으로 탁 잡고 엄청나게 큰 소리로 외쳤답니다.
“환자분! 기도 합시다!!!!”
그러고선 정말로 그 손을 부여잡고 기도를 했대요...
나중에 얼이 빠진 그녀를 위로하고 도닥이며 자초지정을 듣다가 그 순간에 그런 행동을 했다는 데에서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어쨌든 초딩 체구의 그녀가 제 정신이 아닌 한 덩치의 남자 환자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도 저는 그녀가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그가 휘두르는 폴대에 맞을 수도 있었거든요.
하지만 그 순간에 자신보다는 그 환자의 상태를 더 걱정했던 거지요.
사실 간호사들은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해요,
에이즈 환자, 정말 아니 보고 싶습니다.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균이 나오는 환자, 진짜 피하고 싶어요.
토 나올 것 같은 가래 소리, 듣기도 싫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누군가의 가족이잖아요.
밀어낼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자그마한들 당장은 그들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그러한 이유로 메르스로 전국이 공포로 떨고 있는 이 시간에도
방역복을 착용하고 메르스 환자를 보고 있는 의료진들이 있습니다.
몇 년 후 그녀가 외국에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녀 말대로 호주에 있는 남친을 따라 간 것인지, 자신만의 꿈을 따라 간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어딘가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경건하게 누군가를 도우며 살아가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드네요.
보고 싶네요. L.E.S간호사님...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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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향유
초4 에릭 늦게나마 올려요~
병원 이야기 다섯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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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인간의 조건-한승태>이 떠오르네요.
-이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거인 L.E.S. 간호사님은 지금도 어디선가 최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겠지요.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나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