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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아이, 급한 엄마

글쓴이 지나샘

등록일 2015-03-23 08:26

조회수 2,065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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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기 강사인 김창옥교수가 “소나기 -소통을 나누는 이야기”에서 한 강연은 내게 ‘자기 존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경희대 성악과를 다니던 시절, 서울대 성악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지방대 음대를 낮춰보았던 심리 저 밑바닥에는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 깔려 있었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을 무시하므로 자기가 이룬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았으며 또 거기서 비롯된 열등감을 잣대로 나보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구분 짓다 보니 상처가 되는 말에 더 민감해 지더라고 했다.

 

열등감은 그릇된 비교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못하고, 내 능력이 모자란다는 생각. 그런데 문제는 항상 그 다른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지만 비교대상은 불특정 다수이며 항상 나의 모자라는 부분만 그 여러 명의 잘난 부분들과 견주어진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점수화된 평가제도로 사람들의 순서를 매기고 나의 서열을 숫자로 확인하게 하는 사회가 아닌가. 오죽하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풍자가 나왔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속도까지 더해져서 남들보다 더 빨리 이루어내지 못하면 영영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사회이다.

 

누구 집 아이는 세 살에 한글을 깨쳤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늦을까, 하나를 가르쳐 열을 알아도 모자랄 것 같은 세상에 하나도 빨리 못해내는 것 같은 내 아이에 대한 엄마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마음이 급한 엄마의 성화에 주눅이 든 아이는 서서히 자신감을 잃게 되고 결국 자존감을 상실하고 만다. 이런 아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좌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잘해내는 아이들의 경우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거는 주변, 특히 부모의 지나친 기대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행여 그 기대에 못 미칠세라 불안해한다. 내 아이가 잘하면 당연하지만 잘못하면 야단이 나는 부모 때문에 부모의 성에 차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정당한 노력이 아닌 속임수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지난 주, 번역수업을 준비하면서 프랑스의 인기작가인 다니엘 뻬낙의 글을 다시 읽었다. 그가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 받았던 성적표를 책의 뒤표지로 삼은 것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국어인 프랑스어 과목에는 ‘명랑한 아이지만 서글픈 학생임’, 수학은 ‘기초가 부족함’, 제2외국어인 영어에는 ‘말은 많이 하나 영어는 한마디도 못함’, 기술은 ‘수업시간 중 아무 것도 안하며 숙제도 전혀 안 해옴’ 등으로 적힌 각 과목 선생님들의 평가는 작가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학교생활을 했을 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전적 소설인 “학교는 괴로워”에서 작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 알파벳 첫 글자인 a를 익히는 데만 일 년이 걸렸던 일을 회고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번의 낙제와 유급, 재수, 삼수에 걸친 대학입시, 등의 실패를 겪는다. 그런데 그때마다 늘 아버지 특유의 격려, ‘뭐가 문제냐, 26년이면 알파벳을 다 익히게 될 텐데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알파벳은 알다시피 26자이다’, 또 그가 1968년 대입에 가까스로 성공하자 ‘대학 들어가는데 혁명(68년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시작한 사회개혁운동을 말한다)이 필요했으니 앞으로 교사자격증 따려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되겠구나’ 하는 식의 유머가 곁에 있었다고 추억한다.

오늘날 그는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비중 있는 소설가가 되어있다.

 

믿고 기다리는 힘을 그대로 보여준 다니엘 뻬낙의 아버지를 통해 나는 좀 ‘더딘’ 아이에게 ‘급한’ 엄마가 요구하는 세상의 속도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반성한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그것 밖에 못하냐며 아이의 자신감과 자기 존중감을 열등감으로 바꿔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채찍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지금도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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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ineviolet 2015-03-25 09:58 

아...

반성 많이 하고 갑니다...

주위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고 천천히 가는 법...

이런 여유는 어떻게 얻을수 있을까요?

계속 되새김질 해야하겠죠? ㅠㅠ

Happy way 2015-03-23 22:47 

저도 7살 아들...어찌나 성격이 유유자적인지...

근데 그게 제 학교 다닐때의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참 보기 싫습니다.ㅜㅜ

부끄럽게도....늘 다그치던 엄마의 모습이 제게도 있어요.

느려터진 그 아이가 이제 자라서 다그치는 급한 엄마로 변했어요.ㅡㅡ

반성합니다. 아이만의 속도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대구허니맘 2015-03-23 11:59 

제 가슴이 찔립니다. 요즘엔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자꾸만 7살 큰아이한테 상처를 주는것 같아 미안해지거든요.

이제 7살이니까 이정도는 할 수 있다, 해야한다, 100일된 동생도 있으니 언니니까 더 잘해야한다..등등..

자신감을 키운다고 엄마는 허니를 믿는다고 입에 달고 살았던 말들이 때론 부담이 됐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마음에 허니를 위한 공간을 조금 비워두고 허니의 말을 천천히 담아봐야겠어요~^^ 

 

 

지나world 2015-03-23 20:24:26
7살도 애기예요. 정말 이쁠때 이지요. 무조건 잘한다 잘한다 해보세요. 약효과가 아직 있을 나이 아닌가요?^^
효자매맘 2015-03-23 10:35 

세상에 100의 아이가 있으면 100의 교수법이 있다고 하지요..

다 저마다 개성과 성향.. 받아 들이는 속도 등도 다 틀릴진데..

우리 나라 교육은 개성과 다양성 보다는

한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아이를 획일성과 성과 주의로 내몰지요.

그래서 엄마들은 더 조급함을 가지고 아이들을 비교하게 되고..

믿고 기대려 주는 힘을 보여준 다니엘 빼낙의 아버지 같은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늘 기도해야겠어요..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오늘도 조급한 마음들 경계하면서 워~ 워~ 해봅니다..

 

 

지나world 2015-03-23 20:23:03
맞아요. 개성이 무시되는 교육 환경이 진짜 문제이지요. 공교육에서 해결해주지 못하는 이 문제를 어찌해야할지...
기다림에 관해서는 뻬낙의 아버지 반만이라도 따라가려고 노력합니다.
sanit124 2015-03-23 10:27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니... 수시로 이런 강의나 글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제 자신을 점검하고 노력해야겠지요~ 오늘도 다짐해봅니다~좋은 글 감사드려요~^^
지나world 2015-03-23 20:18:14
알고 있다는 것부터 굉장히 중요한거지요. 아무래도 실천을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요. 👍👍
관심과여유 2015-03-23 09:54 

저도 김창옥 교수님 강의 좋아해요.

일단 넘 우껴서... 웃다가 느끼는 마음의 울림... ^^

좀 뭐든 빨라서 잘 하는 아이든, 느린 아이든.. 엄마의 기대치가 높은 건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도 힘들지만... 사실은 엄마가 더 힘들 수도 있는 것 같아요.

현실을 인정하기 싫으니까요. ㅎㅎ

 

아직 어린 아들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지만

역시.. 그냥 아이랑 마구 웃고 놀때가 제일 행복하네요.

학습! 이라는 단어가 엄마 머리 속에서 떠 오르는 순간..

아이는 우찌 알고 도망을 가는지.. ㅋㅋ

 

아이가 학교를 가고, 공부를 시작하면 엄마 마음이 또 달라지겠지만

아이의 마음 읽기에 좀 더 집중하면서

다이엘 뻬낙님의 아버지같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봐야겠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

지나world 2015-03-23 20:16:29
마음이 조급해질때 '내 아이는 대기만성형이야'하고 최면을 겁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걸 저는 진짜로 믿으니까요.★★★
홍박샘 2015-03-23 08:41 

뛰어난 아이를 훈장삼던,  완장 삼던 많은 젊은 엄마들이 겸손한 중년 여인이 되었습니다.

추종 엄마들을 데리고 휘젓던 커피 숍을 떠나 집 안에서 칩거 중인 어머니도 계시네요.

자녀에게 가했던 지나친 채찍. 저 역시 휘둘렀겠지요.

지나world 2015-03-23 20:11:19
홍박샘이요? 채찍 스탈이 아니신듯. 귀한 아들이다 보니 노심초사이셨을지는 몰라도....
잘컸잖아요. 훈남 엄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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