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탕골로 떠난 가족여행('이벤트'보다는 '일상'을 함께) 2002-06-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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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과 8일은 제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학교장 재량 휴업일이었습니다.



6일 현충일과 일요일(9일) 사이의 이틀간 휴업이라 4일 연휴가 되는 셈이어서

늘 그렇듯, 3월 개학후 이맘 때 쯤이면 서서히 지쳐가곤 했던 저에겐

정말 '구세주'같은-'꿀맛'보다 더 간절한- 휴일들이었습니다.



제가 3년간 휴직하는동안 변한 것들이 많은데

그 중 '학교장 재량 휴업일'과 '체험학습'제도는

우리 가족의 생활 패턴에도 파장이 미치는 것들입니다.



처음엔 '재량휴업일'이라든가 '체험학습' 같은 것들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재량휴업일이라도 뭘 했는지 모르게 지나가곤 했는데

이 새로운 제도들을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이용하면

아이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게 즐거운 '경험'과 '추억'을 가져다 줄 것 같습니다.



저의 휴업일과 큰 아이의 재량휴업일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체험학습'제도가 있어서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아서 참 좋습니다.



저 자신이 학교를 너무나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하면서 다녀서 그런지

우리 아이를 기회 닿는대로 자꾸만 '학교'에서 해방시켜주고 싶습니다.



아이들 아빠가 늘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계획했던 가족 행사들이( 아빠와 함께하는) 무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이번에도 정확한 스케줄을 잡지 못한채 짐도 싸는 둥 마는 둥

남편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과후 집에 와서 아빠를 기다리기로 했던 큰 아이가

귀가 시간이 꽤 넘었는데도 오지 않아서,

유치원에 있는 작은 아이를 데리고 가야하는 등 생각할 것이 많은 저로서는

각자 다른 장소에 흩어져 있는 가족들이 모여야 하는 상황이

좀 정신없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큰 딸네미가 아빠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서

학교 끝나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데리러 오라고 했답니다.



너무 스케줄이 빡빡해서 아이를 데리러 갈 틈은 없어보였던 남편이었지만

아이의 명령에 꼼짝 못하고 데리러 가는 중이랍니다.



그럼 아이데리고 조심해서 오라며 전화를 끊고나서

제 입가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느라 자꾸만 입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른이 다 되어서까지도 안된다고 하는 것들을 안할 뿐만 아니라

안될 것이라고 짐작되어지는 것들까지도 안하고 살아왔었기에

제가 낳은 딸이 저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생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당황스럽기조차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이라고 해야할지 '묘한 쾌감'이라고 해야할지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마음이 번져나오며 저혼자 '흐흐흐' 웃곤 합니다.



점심도 못 먹은 큰 아이와 남편은

작은 아이를 데리러 유치원으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제가 만든 샌드위치 한 쪽씩으로 점심을 때우고

드디어 엄마의 재량 휴업일에 큰 아이의 체험 학습일을 끼워 맞춘

가족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의 목적지는

남편의 바쁜 일정을 쪼개어 가느라 좀 급하게 결정되긴 했지만

예전부터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던

경기도 양평군의 '바탕골 예술관'( http://www.batangol.co.kr ) 이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바탕골로 이동합니다)



조수미가 부른 팝송 음반과 김광석의 '일어나'를 들으며

서울 강동구인 저희 집에서 출발한지 한시간도 채 안되어.

경기도 양평의 '바탕골 예술관'에 도착했습니다.



1인당 입장료 3,000원씩을 내고 언덕길을 걸어올라 관내로 들어서니

평일이라 그런지( 월드컵 기간이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한 건물에서 평균 두 가족씩 정도만 마주친 것 같습니다.



사람많은 곳을 참 싫어해서

여름바닷가는 절대 갈 생각을 하지않는 저였지만

이 곳은 좀 사람이 너무 없다싶었습니다.

주말엔 전혀 다른 풍경일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나중에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는

다음엔 사람이 좀 많더라도 주말에 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아무래도 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접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사실 미술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미술관 관람 경험도 별로 없는데다

그 날 본 전시물들 중 제 심상에 닿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아이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며 작품들을 보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아예 미술관내 설치미술 작품을 놀이 장소쯤으로 여기는 듯 해서

한 쪽 눈으로는 작품을 보며 한 쪽 눈은 작은 아이의 동선을 추적하느라

작품에 몰입할 수 없기는 했지만

이것이 저의 '무지'를 덮을 수 있는 핑게거리는 못되지 싶습니다.



음악이건 미술이건 자꾸 듣고 보아야 귀가 뚫리고 눈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음악이나 미술을 소위 중요 과목인 국, 영, 수 과목들의 곁들이 쯤으로 여겼던

저의 불행하고 암울했던 청소년 시절의 빈곤한 음악과 미술의 경험들은

어른이 되어서 메꾸려해도 쉽게 메꿔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경험은 아이의 경험까지도 제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면

예전의 어느 개그맨처럼

'내 인생 돌리도~~~~' 하고 외치고 싶기도 합니다.



제 기억에 가장 남는 작품은

한 쪽엔 통나무들을 위로 갈수록 약간씩 좁아지게 쌓아올렸는데

둥근 통나무들이 모여 직선 모서리들을 만들고 있고,

한 쪽엔 각목들을 위로 갈수록 약간씩 넓어지게 쌓아올렸는데

각진 각목들이 모여 곡선 모서리들을 만들고 있는

같은 작가의 두 작품이었지만,



큰 아이는 '두 얼굴'이라는 작품이 가장 인상깊었다고 합니다.



아이의 설명에 따르면 한 사람의 목에 두 얼굴이 있는 조각 작품이었다고 하는데

저는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물건을 사거나 작품을 감상하거나 할 때

저는 대칭요소가 있다든가 해서 뭔가 '안정'되어보이고 '패턴'과 '설명'이 있는 것들을,

아이는 뭔가 파격적이고 불안정해보이고(제가 보기에) 설명이 어려운 것들을

인상깊게 생각하고 선호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시관에서 내려와 아트샵을 둘러보고 아래층 한지 공방으로 갔지만

지도 교사외엔 한 사람도 없이 '텅~ ' 비어 있어서

빠꼼히 문만 반쯤 열고 동정을 살펴보니

어느 공방이든 개관시간내에서는 사람수나 시간에 상관없이

늘 활동을 해볼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큰 아이는 한지 부채에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넣는 작업을 선택했습니다.



작은 아이(44개월)가 하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 해서

큰 아이에게만 한지 부채를 쥐어주었더니

작은 아이의 낯빛이 변하며 불만스러운 얼굴이 되길래

부채하나 버린들 뭐 어떻겠냐는 마음으로(하나에 5,000원입니다. ㅠㅠ)

작은 아이에게도 부채를 주었는데,

그림을 다 그려놓고 보니

구상화인 큰 아이 작품보다 추상화인 작은 아이 것이 더 멋져보였습니다.



아이들이 한지 부채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남편과 저는 한지 공방 안을 휘이 둘러보았습니다.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와

닥나무로부터 헝겊처럼 벗겨내어진 껍질들,

이것으로부터 뽑아내어진 솜같은 뭉치들,

이것들을 물에 풀어 틀망으로 건져올려 말려서

종이를 만들기 위한 공정이 이루어지는 작업대등을 둘러보며



아주 오랜 옛날

종이가 되리라고는 꿈도 못꾸며 자랐을 어느 닥나무 하나가 베어지고,

베어진 나무가 적당한 크기로 툭툭 잘려지고,

처절하게 한 겹 한 겹 벗겨지고,

여차저차해서 온 몸이 솜처럼 풀어지어

틀망에 한겹으로 누워 서로 부둥켜 안은채 고스란히 말라서

한 장의 종이가 되기까지의 과정들과



그런 과정들을 온전히 '혼자서' 해냈을지도 모를

오래전의 어느 '사람'을 상상해보았습니다.



저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너무 '원시'에서 멀리 온 것이 아닐까?



매일매일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을

먹고, 입고, 쓰고 있는데

시작에서부터 내가 그것들을 얻기까지의 과정들이

절대 멈출일도 없고 잘못될 일도 없다는 듯 톱니바퀴처럼 맞물리어

'처거덕처거덕' 돌아가다

'툭'하고 마지막 구멍으로 빠져나온 최종 단계의 것들만

손에 쥐게 되는,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일상들이

아주 가끔씩은 알 수 없는 '소외감'과 '불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런 불안감을 없애려는 이유인지

어떤 과정이나 공정이든지 마지막으로 먹거나 입거나 쓰게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온전히 저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 두어가지쯤은 배워보고 싶다는,

아니 꼭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은 못보지만

AFKN에서 방송했던 세서미 스트리트를 아이들과 열심히 보았었습니다.



아이들과 영어공부 좀 해보자고 보기 시작했던 프로였지만

'영어 공부'외에 다른 '영감'을 얻게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제게 인상깊었던 한 장면은

유치원 아이들이 들판에 밀의 씨를 뿌리고

밀이 자라고, 다 자란 밀을 아이들 손으로 베어내서

아이들 손으로 밀을 갈아서 밀가루를 만들고,

만들어진 밀가루를 반죽하여 빵을 만들어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몇 달에 걸쳐 이루어졌을 이 작업들이

아이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자신들이 씨뿌리고 키운 밀로 빵을 만들어 먹던 아이들의 즐거워하는 얼굴을 보며




그 때는 너무도 감명깊어서

우리 아이들과 함께 저렇게 전 과정을 모두 해볼 수 있는 뭔가를 꼭 찾아내어

해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었는데,



아직까지도 그런 것을 찾아보지도 못한채

누군가에 의해서 다 만들어진 것들을 먹고 입고 쓰기에도 바쁜

초라한 현대인의 일상에서 한순간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영감'을 다시한번 일깨웠던 것은

쑥쑥에서도 얼마전 그림책과 함께 공구했던

Thomas depaola의- 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작품인

"Charlie Needs a Cloak"이라는 비디오 영어 동화였습니다.







href="http://www.suksuk.co.kr/shopmall/sub_content.php3?item_no=100107007&itemtype=영
어교재/교구&itemsubtype=비디오">(여기를 클릭하시면 비디오에 대한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나래이터의 설명외에 대사도 없이

이탈리아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음악이 참 인상적인,

너무나도 저를 매료시킨 비디오였습니다.



아주 낡은 망토를 걸치고 있던 양치기 소년 챨리가

자기가 키우던 양의 털을 깍아서 양잿물에 빨고

빗으로 빗어 정리한 후 털실로 만들고

붉은 색 열매를 따서 털실을 빨갛게 물들이고

몇날 며칠을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짜서

또 몇날 며칠동안 옷감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하여

드디어 빨간 새 망토를 입은 양치기 소년이 됩니다.



양털을 깎는 봄부터 염색을 하는 여름동안을 거쳐

가을내 옷감을 짜고 겨울내 바느질하여

( 털을 깍였던 양의 털은 그동안 어느새 또 자라고)

드디어 새로운 봄에 빨간 새 망토를 입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챨리,



늘 무언가를 소비하기만 하는 최종 소비자인 저로서는

그 모든 과정을 온전히 '혼자' 해낸 챨리의

그 '희열'이 무척이나 동경스러웠습니다.



물건을 소중히 여기고 아껴써야 한다고,

버리는 음식물이 없도록 싹싹 긁어먹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 싶어질 때

여러 계절과 지난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챨리의 새 망토 이야기는

엄마의 잔소리를 우아하게 대신해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있는 동안

아이들은 자기가 그림을 그려넣은 커다란 한지 부채를 들고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엄마 아빠에게 휘이 휘이 부채를 부쳐주었습니다.



궁녀들이 큰 부채들고 부쳐주었을

옛 임금과 왕비가 하나도 부럽지않았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나들이는 예정보다 처지기 마련이어서

별로 한 일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사전 준비나 정보가 부실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겠지요)

한지 공방을 지나 오솔길 산책로를 따라가

판화나 염색 작업을 할 수 있는 공방과 도자기 공방을 둘러보며



다음에 다시 방문 할 때는

한지를 직접 만드는 공정도 해보고

도자기도 빚고 그림도 그리고 채색도 하여 말리고 굽는 과정도 해보리라 마음먹었습니
다.



공방들을 휘이 둘러보고 작은 산등성이를 올라

커다란 차양이 쳐진 피크닉장에서 음료수를 마시자며 잠시 쉬었습니다.



큰 아이는 탄산음료라는 이유로 평소에 엄마가 안 사주는 사이다를,

아토피 때문에 먹거리에 제한이 많은 작은 아이는 게중 괜찮아보이는 오렌지 쥬스를,

아이들 아빠는 제가 제일 싫어하는 파워 에이드 마운틴 블라스트를,

각각 사들고 왔습니다.

(색깔이 꼭 황산구리같은 파워에이드 마운틴 블라스트와 팬돌이 블루,

색깔이 꼭 염화구리같은 파워에이드 타이달 블라스트 같은 음료수들은

제 취향으로는 아무리 갈증이 나도 도무지 마실 마음이 들지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물'외에 다른 색깔있는 음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저는

왜 생수를 파는 자동판매기는 없는 것인지가 늘 불만입니다.



사람 다니는 곳에 물을 파는 곳이 없을리가 없다고 굳게 믿고

피크닉장 옆의 바탕골 극장 건물내의 매점에서

생수를 찾아 사들고 와서 마시며



산들거리는 바람과 한쪽 끝에 세워진 솟대와

솟대를 더욱 솟대처럼 보이게 하는 파란 하늘을 감상하고 있는데,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아빠 뒤를
두 딸이 아기 염소들처럼 쫄쫄 따라갑니다.



낮동안 쨍쨍 쏟아지던 햇빛은

이제 서쪽으로 기울며 온화하고 자상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극장과 아트 갤러리 건물 사이로 보이는 파란 조각 하늘과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나뭇잎들,

먼 발치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나무로 깍아만든 조각품들,

그 사이로 역광을 받으며

앞서가는 아빠와 그 뒤를 쫄쫄 따라가는 아이들의 실루엣은

그대로 '그림'이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하는 딸들은 얼마나 든든할까요.



저는 말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그 장면을 제 마음속에 새겨두었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회사에 놔두고 챙겨오지 않은 남편과

미리 일러두지 못한 저자신을 탓하면서도

(저희 부부는 늘 이렇습니다)

한편으로는 저의 신통챦은 촬영기술로

그 때 제 망막에 새겨진 그 '그림' 이상의 것은

나오지 않았을거라고 믿어졌습니다.



샌드위치 한쪽으로 대충 점심을 때운 남편과 큰 아이 때문에

좀 이른 저녁을 먹어야했습니다.



'바탕골'을 나와 양평대교 쪽으로 조금 달리니

건물 외관은 이집트풍인데

간판에는 '퓨전 한정식'이라고 써있어서

분위기는 좀 애매했지만 가족의 입맛을 골고루 만족시켜줄 같은

식당 한 곳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큰 아이는 피라미드 건물에 왠 한정식이냐며 계속 궁시렁대더니

동생의 아토피 때문에 덩달아 못 먹어왔던 스파게티를

아빠에게 애원했습니다.



아이들은 약한 부분을 참 잘도 압니다.



못 먹게 하는 엄마 때문에

자장면과 스파게티에 대한 큰 아이의 열망은 점점 더 간절한 것으로 되어서

이모에게는 자장면을 아빠에게는 스파게티를 애원하곤 합니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그럭저럭 괜찮다고 평가하며 식사를 마쳐갈 즈음

하룻밤을 양평에서 지내기로 했던 남편이 좀 미안한 표정으로

"미안한데, 사무실로 좀 들어가봐야겠는데.......

아무래도 일이 좀 많이 밀려서......" 하는데,

저도 실망이 컸지만 큰 아이의 실망이 대단했습니다.



남편의 약속위반을 야속해하면서도 어쩌지못하는 저와 달리

큰 아이는 실제적인 저지행동에 들어갔습니다.



아빠에게 맹비난을 퍼붓더니

온 가족의 벗어놓은 신발을 어디론가 숨겨버린 것입니다.



신발을 숨겨놓고 씩씩대는 큰 아이나

미안함과 난처함으로 어정쩡해진 남편이나

왜그런지 안스럽기만 했습니다.



결국 아빠가 아이에게 져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협상을 하고,

식당에서 얻은 자동차 극장 할인 쿠폰에 있는 극장의 위치를 확인한 뒤

우리 가족이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배고플 때는 식당만 보이더니

잘 곳을 찾으려니 숙박업소들만 보입니다.



이 주변에 소위 '러브 호텔'들이 많다던데

러브 호텔과 러브 호텔이 아닌 곳은 어떻게 확실하게 구별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녁식사를 했던 식당에서 양평대교를 지나기 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힐 하우스라는 호텔만이 확실히 러브호텔이 아닐 것으로 보였습니다.



옆에 딸린 정원이 너무나도 예뻐서

아침에 산책할 욕심도 나고,

아이들 데리고 더 멀리 잘 곳을 찾으러 다니기도 무리인 듯 해서

그곳에서 큰 아이가 쟁취한

'아빠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객실로 들어서자

컨트롤 박스를 이리저리 조작해보는 등

아이들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느라

노트북으로 계속 작업하는 아빠에 대한 방해공작도 미미했습니다.



이부자리를 깔아놓으면 늘 그러하듯

아이들은 까르륵 끼르륵 원없이 까불어댑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평소보다 짧아서

큰 아이는 금새 골아 떨어졌고

유치원의 하루를 모두 리바이벌하고서야 잠이 드는 작은 아이도

흥얼거리던 노래소리가 잦아들더니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남편과 저는 살짝 빠져나와

아까 익혀 두었던 자동차( Drive in) 극장인 양평극장에서

영화 '집으로'를 보았습니다.

(강변에 스크린 뒷면의 양평극장이라는 글씨는 큼지막하게 보이지만,

정작 들어가는 입구는 놓치기 쉽습니다)



아이들은 일전에 할머니 댁에 갔을 때 이미 본 영화였고

밤늦은 시간이기도 해서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서 부부끼리 영화를 보려니

마음 한구석 찜찜한 불안감은 있었습니다.



작은 아이를 낳고부터

우리 부부의 문화생활은 좀 한심해져서

'쉬리'와 '타잔'을 구민회관에서 보는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보았다면

아이들의 표정도 살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눠가며 볼 수 있었을텐데

그점이 참 아쉬웠습니다.



자동차 극장은 자동차안에서 영화를 보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과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 눈치 볼 일 없어서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노천 스크린이라 저녁때 이후에야 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외화보다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데다

제가 좋아하는 깜찍한 한국 영화인 '미술관 옆 동물원' 감독의 작품이라

꼭 봐야겠다고 별러왔으면서도 정작 실천력이 부족한 탓에

이렇게 시골 자동차 극장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웃어야 할 것 같은 장면에서도 그냥 눈물만 나옵니다.



먼저 영화를 봤던 아이들에게서

이런 '눈물'의 흔적은 볼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 9살, 5살 아이들에겐 당연한 일일까요?)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리 큰 아이는 상우( 주인공 남자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저는 상우 외할머니를 동일시한 탓이겠지요.



손자에게만 자장면을 먹이고

허리춤을 뒤져 몽땅 꺼낸 천원짜리, 백원짜리들을

손바닥 가득 종업원에게 펼쳐보이던 할머니,



손자가 심술부리며 먼저 타고간 버스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서

먼지 풀풀 날리며 회차하는 버스 뒤로 먼지속에 모습을 보이시던 할머니,



마지막에 손자를 떠나보내고 돌쌓인 산등성 길을 무상하게 올라가며

점점 작아지던 할머니.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와도

늘 저희 엄마와 다투셨던 기억밖에 없는 친할머니와도

살가운 '정'을 나눠본 기억도 없는데,

말못하시는 상우의 할머니께서 미안하다는 뜻으로

가슴께를 손으로 빙글빙글 돌리실 때마다

저도 자꾸 가슴이 쓸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나서 훌쩍거리며

마찬가지로 훌쩍거리고 있는 남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들도 이런거 알까?"



남편은 대답합니다.



" 그럼, 그 이상도 알지. 말로 표현 못할 뿐이지."



저는 늘 '......일까? ...할까?'하는 '의문'을 품으며 '의심'하곤 하는데

아이들 아빠는 무관심의 포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럼....... 당연히 .......하지. 그 이상으로 더 ........하지.'라며

'믿음'과 '여유'를 가집니다.



너무 바쁜 탓에 무늬만 아빠라며 비난하면서도

제가 우리 아이들의 '아빠'를 자꾸만 아이들 곁에 끌어다 놓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 보니

나란히 뉘어놓았던 아이들이 아주 어려운 자세로 뒤엉켜

잘도 자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 어때요, 이정도면 오늘 아빠 노릇 톡톡히 한거지요?" 했고



저는

"글세~ 중요한건 일회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조금씩 쌓아가는 '일상'
이라니까요~"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빠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일상'을 함께 하세요" 라고.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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