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와요 ∼∼∼" 2003-05-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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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역군' 시대가 지난지 오래건만
아직도 '한국의 아빠'들은 바쁩니다.

친정나들이에 아이들만 데리고 가서
함께 못 온 남편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을라치면
친정부모님께서는 이 한마디로 딱! 정리하시죠.
" 남자는 그저 바빠야해"

며느리보다 사위를 더 어려워하고 후한 점수를 주게 마련인 친정 부모님들,
'니가 이해하렴'하는 '위로'의 의미일수도 있고,
'그렇다고 바가지 긁지말아라'하는 '쐐기'의 의미일수도 있겠지요.

요즘 텔레비전 광고에서 이병헌이 달콤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때로는 '일'보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때로는'

저는 이 단어에 상당히 주목합니다.

왜 이 세상의 남자들에게 '사랑'이나 '가정', '가족'이 일보다 중요한 것이
'때로는'이어야하는가 하는 점이죠.

비단 남자뿐만 아니라 소위 '일'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일'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면
공사를 구별못하거나 진취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 쉽상입니다.

저 자신도 실천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무시한,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제게는 '일'과 '가족-사랑-가정 등등'이 이륜마차의 두 바퀴인것만 같습니다.

신혼 초, 서로간에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던 때에
(사실은 남편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저혼자 신경 곤두세웠다는 표현이 더 적
합할겁니다 ㅠㅠ)
남편이 "뭐 좀 도와줘요?" 하고 물어오면
"왜 '도와준다'고 하지요? '집안일'을 왜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건
가요?" 하고 쏘아붙이곤 했습니다.

남편으로서는 참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겠지요.

사실 대한민국의 남편으로서 도와줄거 없냐고 묻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것, 저도 압니다.

하지만, '이해'는 되나 '용서'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거지요.

바쁜 남편에 대해 투정이라도 할라치면
시어머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합니다.
" 술 먹고 딴짓하느라고 늦는 것도 아니쟎냐∼∼"

예, 우리 아이들의 아빠는 친정 부모님 말씀처럼 '그저∼ 바쁜 사람'이고,
시어머님 말씀처럼 술먹거나 딴짓하느라고 늦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구체적 실천은 못할지라도
['가정'보다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지 말 것]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틈틈이 짬짬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 것]

이런 '남편(아빠) 윤리 강령'으로 시시때때로 남편을 압박합니다.

승호 아빠님과 가은 아빠님등
쑥쑥의 빛나는 아빠님들을 무기삼은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남편은
"그 친구들은 언제 일하고 언제 그런 글까지 올린데? "
"글로만 봐가지고 실상을 어떻게 알아"
하며 약간 기분상해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미안해하고, 때로는 "한국 남자들 다 그렇지 뭐"하면서
저의 갖은 압박에도 '만만디', '하오하오'하며 속터지는 대국적 자세만 취하더
니 드디어 작은 딸 아이에게 연거푸 스트레이트를 맞고야 말았습니다.
(강아지와 아이들은 정말 정확합니다.)

밤샘작업하느라 집에 못들어 오거나 아이들 다 잠 든 새벽녘에야 들어와서
들어왔어도 별 점수를 못따는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

남편은 여느 때 처럼 새벽에 들어왔다가 오랜만에 아침나절 잠깐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야광 별자리 돔도 조립하며 한시간 남짓 놀아준
아이들 아빠가 이제 아빠는 일하러 가야한다며 현관에서 주섬주섬 신발을
신고 있는데 작은 딸 아이가 열심히 손을 흔들며
(아이들은 거의 '들어오는' 아빠보다 '나가는' 아빠를 보기 때문에
작별의 손 흔들기는 정말 잘합니다)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와요∼∼∼"
@@;; @@;; .......................... -_-;;;

아이들 아빠와 제 눈 빛이 교차하는 그 짧은 순간,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고,
한 방 크게 먹은 사람처럼 공허한 표정으로 멈칫하다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남편의 축처진 어깨가 안되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남편에게 작은 아이의 이 한마디는 10여년간의 저의 압박을 일격에 마무리
하는 결정타였습니다.

그 후로도 "아빠는 왜 자꾸 우리 집에 놀러와요?"하는 등 딸아이의 연타가
이어졌습니다.

큰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시장가느라 유모차를 밀고 나가면
이웃 집 대문간에 앉아계시던 할머니분들께서 측은한 듯 쳐다보실 때마다
'퀭'하니 마른 여자가 커다란 유모차 밀고 가는게 안스러워서 그러려니 했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분들께서 저를 남편없이 혼자 애키우는 엄마로
생각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도 있었고,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는 아예 사람들이 저를 무슨 '정부'처럼 보겠다며
농담반 독설반으로 남편을 공격해보기도 할 정도였으니
딸 아이의 이런 말들이 아주 황당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루는, 작별인사에 익숙해있던 아이들이 어찌된 일인지
회사가려고 나서는 아빠의 옷을 잡아끌며
"아빠, 회사가지마세요 ∼∼" 하며 둘이 합창을 하더니,
바빠서 빨리 가야한다며 집을 나서는 아빠 뒤를 맨발로 따라나서며
열린엘리베이터 문을 잡아멈추고
윗층 아래층 다 들리게 꺼이꺼이 울어서 옆집할머니께서 나와 보시고,
한참 실랑이한 끝에 엘리베이터를 타긴 했으나
큰 아이가 아파트 입구까지 울며불며 아빠를 따라나서서
아이들 아빠가 아주 곤혹을 치른 적도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는 작은 아이의 연타중에
남편에게 또 한번 충격을 안겨 준 것은
작은 아이가 부부침실의 욕실 문에 붙여둔
'엄마 방에 있는 <아빠 샤워하는 영역>'이라는 쪽지였습니다.

'엄마 방에 있는'

아빠가 샤워하는 곳이긴 한데 '엄마 방에 있는'이라네요.

작은 아이의 유치원에서 영역별 활동을 하는데
영역마다 무슨 영역, 무슨 영역하고 팻말이 붙어 있고
영역을 옮길 때마다 아이들이 자기 이름표를 활동하려고 하는 영역에 갖다
붙이는 것이 아이에게 퍽이나 인상적이었던지
작은 아이는 한동안 집안 곳곳에 '잠자는 영역', '식당 영역', '옷 입는 영역',
'밖으로 나가는 영역'등 자기 나름으로 영역을 구분하여 팻말을 만들어 붙여
놓고 온 집안 식구들의 이름표를 만들어 활동하는 영역이 바뀔 때마다
이름표를 옮겨 붙이도록 했습니다.

저는 수시로 안방에서 거실로, 욕실로 움직여야하는데
그 때마다 이름표를 옮겨놓으라고 해서 좀 귀찮기도 했지만
아이가 자못 진지하게 챙기고 주의까지 주는 모습이 귀여워서
아이가 감시(?)할 때는 협조를 잘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아침에 회사가려고 준비하며 아침에 샤워하는 모습이
집에서 보는 아빠의 모습의 대부분이었으니
아빠의 영역은 '샤워하는 영역'으로 한정되었으며
그것도 '엄마방에 있는'아빠 샤워하는 영역이 되버린 것입니다.

또 한 방 크게 먹은 아이 아빠가 자못 섭섭한 듯
"지선아, 아빠 영역은 여기밖에 없어?"하고 물었더니
그 날 저녁엔 우리 부부가 자는 침대 중 아빠가 자는 쪽 헤드보드에
'아빠 잠자는 영역'이라는 팻말을 붙여놓았습니다.

'크윽, 더 이상 잃은 점수를 만회할 기회는 없는 것인가'하는 표정으로
그 팻말을 쳐다보고 있는 남편에게
"거봐요, 아빠 영역이 샤워영역과 잠자는 영역(그것도 정확히 침대 반쪽)밖
에 없쟎아요. 아이들 마음속에도 마찬가지라구요"
하며 득의만면하게 말하긴 했으나 남편이 받은 충격이 워낙 '묵직∼' 한 듯
해서 공격의 고삐를 단단히 조일 호기로 이용하는게 너무 잔인한 일인 것
같았습니다.

어찌되었건
"아빠∼, 우리 집에 또 놀러와요 ∼"와
'엄마 방에 있는 [아빠 샤워하는 영역]',
이 때문에 아이들 아빠는 그 후로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피나는' 노력을 하
고 있습니다.

엊그제 스승의 날, 같은 학교 선배 교사분 중에 한 분이
"오늘이 마누라 생일인데 오늘 받은 꽃바구니중에 하나 갖다주면 스승의 날
받았던 거 주는건 줄 다 알고 안 좋아하겠지? 매 년 생일에 비싼 꽃다발이
나 꽃바구니 사다줘도 하나도 고마운 줄을 몰라요 우리 마누라는∼∼, 내가
술 좀 먹고 맨 날 늦게 들어가기는 하지만 말이야.그래도 가끔 비싼 식당에
서 외식도 시켜주는데 말이야 " 하시길래

우리의(세상 부부들의) 위대한 스승님이신 존 그레이의 말을 빌어

남자들은 사랑을 '총점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평소에 잃은 점수를 몇 번의 기회로 만회해서 총점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여자들은 평소에 차곡차곡 조금씩 쌓아가는
그 '작은' 점수들을 더 기뻐한다고 말하며

제가 이전의 한 다이어리에서도 애기했듯

"글쎄∼, '이벤트'보다는 조금씩 쌓아가는 '일상'이 더 중요하다니까요∼"
하고 일침을 놓았습니다.

'이벤트'보다는 '일상'을 함께 하는 것,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기위해서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기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감히 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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