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추억하며(터키 사람들, 쇼핑, 기념품, 갖가지 에피소드들) 2005-07-2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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ꁰ 여행을 추억하며

 

 터키 사람들

  듣던 대로 터키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게다가 터키의 남자들은 참 잘 생겼고, 여자들은 참 예쁩니다.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순하고 선하게 생겼습니다. 사람들을 닮아서 길거리를 나다니는 개들도 정말 순하고 착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터키에는 작은 강아지들은 없고 모두 큰 개들만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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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99 그랜드 바자르에서 타블라를 즐기던 상인들.

                            우리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타블라 게임을 설명해주었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이렇게 대부분 타인에게 호의적이고 낙천적으로 보였습니다.

 

  저처럼 6,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학교나 어른들의 이야기로부터 들어서 ‘6,25 참전국’ 중의 하나로 알고 있는 정도이고, 한동안 우리와는 먼 나라인 듯 잊혀졌다가 2002 월드컵 이후로 우리의 젊은이들도  ‘축구에 열광하는 나라’로 터키를 조금 알고 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 중에 도움을 받은 우리는 터키를 그냥 ‘참전국’이라 하지만 15,000명이 참전하여 770여 명의 귀한 아들과 손자들을 한국에 바친 터키인들은 우리를 ‘칸 카르데시’(피를 나눈 형제)라 합니다.

  버스를 타고 다니며 피상적으로 터키를 다녀 온 열흘간에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월드컵 때 한국과 터키의 3,4위전 경기가 벌어지는 경기장 스탠드에서 총 중량 2톤에 달하는 거대한 붉은 터키 국기가 수많은 관중들의 손에 의해 아래로 아래로 펼쳐지던 그 때의 그 감격을 터키인들은 잊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터키와 터키 사람들은 참 편안했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을 여행하며 느꼈던 뭔지 모를 위축감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선하고 순한 이슬람 사람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에 의해 정치와 종교의 분리 정책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터키인의 98%이상이 ‘무슬림’들이기 때문에 터키 사회 전반에 걸쳐 이슬람 문화의 뿌리가 깊습니다.

  서구인들에 의해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Quran)'이라는 말로 단순화 되고 왜곡된 이미지로 덧칠 되어버린 이슬람 사람들은 사실 그 대부분이 나눔과 봉사를 미덕으로 아는 ‘선하고 순한’ 사람들이랍니다. 책에서 읽어 피상적으로 알던 무슬림들을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해 제 마음과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항에서, 시장에서, 식당에서, 터키의 그 어느 곳에서도 폭력이나 강압, 불안의 그림자를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터키인들은 우리와도 비슷하게 때로 다혈질의 냄비 근성도 보인다지만, 그래서 더 한국과 한국인과의 동질감이 있다고도 하지만, 제 눈에 비친 터키인들은 명랑하고 낙천적이면서도 순박하며 낯선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모습이어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터키에서의 의사소통

  오래전 유럽 여행을 하며 일본어로는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한국어로는 나오지 않는 사실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엔 알프스 등정 열차를 비롯하여 웬만한 유명 관광지 시설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곳이 많고, 관광지 안내원이나 상인들도 간단한 한국어 몇 마디쯤은 할 줄 안다고 하니, 그만큼 한국 관광객이 많다는 뜻이겠지요.

  저에게 터키어는 그 글자도 소리도 모두 아주 낯선 것이고, 알량한 실력이나마 할 줄 아는 외국어라고는 영어밖에 없었기 때문에 주로 영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사실 영어마저도 그리 쓸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단체 관광이라 기본적으로 각종 수속 절차를 가이드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묵묵히’ 기다리기만 해도 별 문제가 없고, 현지인과 생생하게 부딪칠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영어거나 바디 랭귀지거나 의사소통을 위한 노력 자체가 그다지 필요치 않습니다.

  열흘간 터키를 다니고도 뭔가 ‘헛헛함’이 남는 것은 이렇게 현지인들과 눈 맞출 일도, 이바구 할 일도 별로 없어서 ‘사람’을 느끼지 못했던 탓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터키의 관광지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한국말이 잘 통합니다. 특히 그랜드 바자르의 상인들 중엔 서울, 인천, 대전, 부산 모두 아는 사람을 비롯하여 터키어나 영어가 거의 필요 없이 한국말로 대강 흥정이 가능한 놀라운 상인들도 있습니다.

  다만 어디서 배웠는지 ‘비싸?’, ‘안 비싸~’하는 ‘반말’투의 한국말과 ‘싸모님’, ‘싸장님’등 다소 점잖지 못한 표현들이 거슬리긴 합니다.

  그래도 고객인 제게 ‘beautiful lady'는 한국말로 뭐라고 하느냐 등등 한국말 표현을 이것 저것 물어보며 한국어 표현을 익히는데 열심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한국어 표현을 궁금해 하는데 정작 우리는 어줍잖은 영어를 쓰거나 대충 표정과 제스츄어로 때우기도 합니다.

  상인들이야 물건을 팔려는 사람들이니까 당연히 ‘판매’를 위해 고객의 기분을 맞추기 마련이겠지만, 터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타국인에 대해서도 대단히 호의적인 것 같습니다.   

  그들과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시간이 좀 지나자, ‘음~ 이게 이럴 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의사소통을 위해 우선 영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한국말을, 그것도 ‘제대로 된’ 한국말을 영어 표현에 뒤이어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험 삼아 한두 번 실제로 그렇게 해보니 ‘타문화에 대한 터키인의 호기심과 호의’에 대한 제 예상은 적중한 듯 했습니다. 영어에 뒤이은 한국말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면서 다시 되물어가며 따라해 보기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 열흘이 너무 짧습니다. 더 많은 터키인들에게 더 많은 한국말을 가르칠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의사소통’의 핵심은 언어적 기술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터키에서의 식사

  아테네에서는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 일반적인 호텔 조식 두 끼와 한국 식당에서 저녁 두 끼를 먹었기 때문에 그리스 특유의 음식을 맛보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삶은 계란을 너무나 좋아하는 제 딸아이는 아침마다 나오는 삶은 계란에 열광하며 아침마다 네 다섯 개씩의 계란을 먹어치우며 무척 행복해했습니다.

  그리스의 계란은 한국의 계란보다는 좀 작아보였는데, 그리스도 그렇고 터키도 그렇고 또 다른 나라들을 여행해본 경험으로도 그렇고, 한국인들이 유난히 크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먹거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고 먹음직하고 예쁜 먹거리가 나쁠 리야 없겠지만, 그렇게 보기 좋고 크게 만드느라 가해졌을 인공적인 물질들과 노력들이 우리 몸에 또 어떤 왜곡을 가져올 지 사실 많은 걱정이 됩니다.

  아테네 호텔 음식 중에서 사람들이 뚜껑만 열어보고는 ‘웬 청국장 냄새?’하며(청국장은 우리가 늘 먹던 음식이 아닌가요?)안 먹는 음식이 있었는데, ‘색다른 음식’에 호기심이 많은 저는 한번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뭔지 모를 야채 익힌 것을 계란으로 덮은 듯한 오믈렛 같은 음식이었는데 맛은 괜찮았습니다. 청국장도 냄새는 고약하지만 맛은 있지 않습니까?

  음식 이름이 궁금해져서(신비로운 이국적 이름을 기대하며) 웨이트리스에게 물어보니 ‘허무하게도’ spinach pie(시금치 파이)라고 합니다. 제가 좀 황당해서 잠깐 멍청한 표정을 지었는지, 제 이해를 돕기 위해 뽀빠이가 먹었던 그 시금치라며 부연 설명을 해줍니다.   

  우리의 식탁이 아직 서구화되지 않았을 때는 외국여행의 가장 큰 어려움과 향수병 중의 하나가 ‘음식’문제였겠지만, 요즘엔 워낙 세계인의 입맛이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를 필두로 표준화를 향해 가다보니 ‘아주 낯선’음식도, ‘아주 못 먹을’음식도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행 준비를 위해 터키 관련 책자들을 읽다보니 터키의 음식이 프랑스, 중국과 더불어 세계 3대 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의 음식’이 세계 문화 유산감이라 생각하는 저로서는 좀 불만이지만 어찌되었거나 터키의 음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답니다.

  하지만 관광지 호텔의 음식은 서울의 호텔이나 이스탄불의 호텔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었고, 차라리 호텔 밖의 현지식이 더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터키의 음식’으로 떠오르는 것 세 가지는 케밥과 챠이 그리고 요구르트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도 터키 음식 전문점이 하나 둘씩 생기며 터키의 대표적 음식인 ‘케밥’이 유명해졌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숯불구이’ 쯤에 해당하는 케밥은 이번 여행에서도 여러 번 맛볼 수 있었는데, 이국에서 먹는 음식으로선 꽤 우리 입맛에 맞는 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함께 곁들여 나오는 야채가 싱싱해서 고단한 여행으로 입안이 깔깔해진 여행자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요구르트의 원조 국가답게 유제품을 많이 먹는 것 같습니다. 호텔 조식이나 뷔페 등에서 제공되는 갖가지 치즈들 중엔 우리 입맛에 안 맞는 것들도 있었지만, 흔히 ‘요플레’라고 하는 ‘떠먹는 요구르트’는 참 맛있었습니다. 특히 꿀과 함께 먹었던 요구르트는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꼭’ 볶아져 나오는 퍼슬퍼슬한 안남미 쌀밥은 아무래도 적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식사 후 챠이를 한 잔 마시고 나면 입안이 개운해집니다.       

  마시는 물 하나도 다 돈을 받는 식당에 주눅이 들어서, 싱싱한 미나리를 좀 더 달라고 해도 될까 눈치보다 조심스레 물어보니 ‘허무하게도’ 선뜻 더 얹어 줍니다.

그래도 안심이 안 되서 무료냐고 확인성 질문까지 하고나니, 따지고 보면 얼마 안  되는 돈에 소심해지는 제 모습에 스스로 무안해집니다. 

  여하튼 낯선 곳을 여행할 때는 ‘질문’과 ‘확인’을 귀찮아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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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0.  속이 텅빈 일종의 공갈빵 라마쉬.       그림 101. 터키인들이 하루에 열 잔 이상도 마시는

                         담백하고 고소합니다.                                터키식 홍차, 챠이. 맛이 깔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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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2. 밥은 항상 올리브 오일에 볶은             그림 103. 아다나 케밥.

               볶음밥(필라프)입니다.                                      고추로 맛을 낸 매콤한 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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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4. 터키 사람들이 즐겨 먹는 시밋                그림 105. 꿀과 섞어 먹는 요구르트

                 (simit,깨빵)                                                       맛이 정말 좋습니다.

 

엄마의 쇼핑과 딸의 컬렉션

  외국 여행을 처음으로 나갔을 때는 모든 것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해서 유리 공예품이며 각종 민예품들을 사들고 오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간이나 끌고 다녀야 하는 여행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도 여행자에겐 좀 짜증스런 일이고, 집에 와서도 한두 달 분위기 내다가 결국 처치 곤란의 물건들이 되곤 했던 경험이 있어서, 여행지에서의 물건 구입에 좀 더 신중을 기하게 되고 웬만한 것들은 그냥 ‘눈’에다만 담아둡니다.

  그래도 나라마다 그 나라 특유의 특산품이나 두고 두고 쓸 수 있는 실용품 같은 경우엔 질 좋은 상품 몇 가지 정도는 미리 계획해서 구입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깐깐한 눈높이와 구매력을 갖춘 우리 한국인들이 아닙니까? 그런 한국의 높은 시장성 탓에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도 신상품 출시 전 한국인들의 호응도를 먼저 살펴볼 정도인 그런 곳에서 살다보니, 이제는 점점 외국을 나가도 ‘너무 신기한’ 물건이나 ‘너무 좋은’물건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가전제품들도 그렇고 특히 의류의 디자인과 품질의 평균 점수는 한국이 세계 최고인 것 같습니다.

  여행 전 그리스나 터키에서는 그다지 살만한 물건들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와 게중 가죽제품은 질이 좋은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터키를 갔으니 터키석 하나 쯤 구입하는 것도 ‘나만의’ 의미는 있겠다 싶어서, 그리스와 터키에서 쇼핑할 품목으로 가죽 쟈켓과 터키석 장신구 정도를 염두에 두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더구나 단체 버스 관광 여행 상품의 특성상 자주 들리는 쇼핑몰에서 그냥 빈 손으로 나오기는 힘들고 뭐 하나라도 사들고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저로서는 놀라운 자제력을 발휘하여 올리브 비누, 냉장고 부착용 자석 장식품, 작은 아이를 돌보느라 수고한 제 동생에게 선물할 꽃무늬 자수 블라우스 등 선물용 몇 가지와 제 두 딸을 위한 2달러짜리 터키 분위기 물씬 나는 모자와 제가 두를 파시미나 숄 정도를 구입하고, 대부분의 돈과 열정은(쇼핑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인지 다를 아시지요?) 가죽 쟈켓과 터키석 구입에 쏟았습니다.           

  제 친정 아버님(비싼 옷과 무거운 옷은 질색하십니다.) 칠순 잔치 때 터키에서 구입한 ‘실크 레더’라고 불리는 아주 얇게 무두질한 가벼운 가죽 사파리 쟈켓을 선물하고 나니 그냥 저 혼자 마음이 뿌듯합니다. 저로서는 눈물이 나다 못해 숨까지 막히게 비싼 옷이었지만(저도 제 아버님도 우리 집 식구 그 누구도 입어본 일이 없는 그런 가격의 옷이었답니다.) ‘일생에 한번’이라는 마음으로 거금 ‘6억 리라’를 투자했습니다. ‘거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화폐 개혁 과도기인 터키 리라의 구 화폐 단위로 말하니 모두들 ‘억!’소리를 냅니다.

  백만 리라가 우리 돈 천 원 정도이고,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25만 리라, 밥 한 끼 그럴 듯하게 먹으면 천만 리라 정도를 내야 하니, 터키를 여행하는 동안 우리 일행은 ‘백만’이라는 숫자를 아주 우습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젠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 터키 구 화폐(한국에선 터키 화폐를 한화로 환전할 수 없습니다.) 몇 장을 기념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이즈미르(Izmir)의 한적한 곳에 공장 직영 매장으로 보이는 가죽 제품 매장에서 우리 일행을 위해 패션쇼도 보여주었습니다. 관객 중 남녀 각각 한사람씩을 무대 뒤로 데리고 들어가 제품을 입히고 가발까지 씌워 함께 워킹하는 모습에 우리 일행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했습니다.

  쇼의 피날레로 모델들 손에 터키 국기와 한국 국기기 나란히 들려져 올라갔습니다. 일본 관광객들 앞에서는 일장기가 들려 올라갈 것이라는 것, ‘원초적 애국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이라는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래도 어쨌거나 머나먼 나라에서 예상치도 않게 보게 된 태극기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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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6.  가죽 의상 패션쇼의 피날레로 모델들이 터키 국기와 태극기를 나란히 들었다.

 

   엄마가 생애 최고의(비용면에서) 쇼핑을 하는 동안 딸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푸른색의 페르시아 스타일 작은 손가방 하나로 만족하고 더 이상 이것 저것 사달라 하지 않습니다. 제 두 딸 모두 뭘 사달라고 조르는 일이 별로 없어서 엄마인 제가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제 큰 아이는 특이하게도(그런데 이런 취미를 가진 아이가 의외로 많다네요.) ‘돌’을 수집합니다. 밖에서 놀다 들어 올 때도 주머니에 돌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고, 어디를 여행하건 꼭 그 지역의 돌들을 수집합니다. 기회를 봐서 제가 슬금슬금 버려서 그렇지 아이가 주워 온 돌들을 다 모았으면 미니 박물관 하나 정도는 꾸밀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소 냉소적이고 건조하여 인형 놀이도 별로 안 즐기는 제 딸아이가 돌을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면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여행 중에도 호텔에서 샤워할 때마다 돌들도 씻기고 자기가 로션 바를 때 돌들도 로션을 발라주는가 하면 돌들이 낮잠 잘 시간이라며 보물 상자에 조심스럽게 돌들을 넣고 뚜껑을 살며시 닫아줍니다.

  상상력이라곤 빈약하여 만화읽기가 오히려 힘든 저로선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이런 식의 ‘환타지’를 가지고 있는 게 정상인가 싶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돌인데 함께 여행하던 다른 아이가 아테네 공항의 대리석 바닥에 휙 던져 깨져버린 사건이 발생해서, 딸아이가 공항이 떠나가라 울었습니다. 며칠 후 올리브 나무 숲 속에서 주운 올리브 나뭇가지로 엮은 승리의 월계관을 남자 아이가 또 망가뜨려서 또 한번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아이가 언제 어른이 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대답이 좀 궁해서 길가다 넘어졌을 때 울면 아직 어린 아이이고 넘어져도 안 울게 되면 그 때가 바로 어른이 된 거라고 둘러댄 적이 있는데, 속상할 때 울음을 삼키지 않고 그대로 울어버리는 걸 보니 아직 제 딸은 어린아이인가 봅니다.

  어린 시절 맘껏 울지 못했던 저는 이렇게 우는 제 딸의 모습을 볼 때 속이 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왠지 모를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하여간에 제 딸아이는 자기가 전생에 필시 암석학자였을거라 말할 정도로 돌에 집착합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버스를 타고 휘몰아치듯 다닌 여행이라 아이가 돌을 주울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그리 많은 돌을 줍지 못한 것이 아이의 큰 불만입니다.

  줍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가 항상 궁금할 정도로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제 생각이겠지요.) 돌들과, 떨어진 무화과 열매, 파묵깔레에서 얻은 목화, 대리석 마블 등이 제 딸아이의 이번 여행 콜렉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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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7 그리스와 터키에서의 쇼핑

                            (보물 상자, 파시미나 숄, 특이한 멋이 있는 목걸이, 가죽 동전 지갑,

                            호적 문양의 팔찌, 터키석 장신구, 올리브 비누, 자수가 놓인 블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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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8. 돌을 수집하는 딸아이의 터키 콜렉션

                     (대리석 마블, 카파도키아의 응회암, 무화과 열매, 파묵깔레의 목화 등)

 

여행의 묘미, ‘느닷없는 사건들’

  여행의 묘미 중 하나가 바로 여행 중 발생하는 ‘느닷없는 사건’이 아닐까 합니다.  그 황당함은 여행자들을 당혹스럽게 하지만 여행을 추억할 때는 가장 많이 생각나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사건 1. 화재경보기 사건

  아테네에의 호텔에서 두 번째 아침 식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습니다. 너무 ‘침착한(?)’ 한국인들은 미동도 안하고 하던 식사를 계속 합니다. 그런데 계단참에서 제 딸과 또 다른 사내아이의 목소리가 간간히 들리며 뭔가 부산스럽게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제 딸아이가 “야~ 그걸 누르면 어떻게 하니~”하고 사내아이가 또 뭐라 뭐라 하는 말소리가 아래인지 위인지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로부터 사건의 개요를 들으니 호기심 많은 사내아이가 화재경보기인 줄 모르고 누르면 뭔가 카드 같은 게 나올 것 같이 생긴 것이 있길래 눌러 보았더니 경보기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의 말을 듣고 객실 문마다 옆쪽 벽에 딱 아이들 키 높이에 붙어 있는 화재경보기를 보니, 아이들 말대로 누르면 정말 카드가 나오게도 생겼습니다.        

  ‘정황 참작’은 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므로 아이의 아빠는 아이에게 손들고 서있는 벌을 서게 했습니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사람 많은 식당에서 벌을 서는 게 좀 무안해진 아이는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아이가 모르고 한 것이니 벌 세우지 말라고 옆에서 거들기도 했지만, 거드는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 마련이지요.

  아이들에 대한 훈계를 마치고 짐을 꾸려 로비로 내려가니 먼저 내려와 있는 일행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뭔가 조용히 가만히 있어야 하는 분위기입니다. 프론트 데스크에서는 소방서로부터 걸려온 확인 전화에 응답하느라 뭔가 부산한 분위기입니다.

  사태파악이 좀 됩니다. 아까 우리 일행 아이가 잘못 누른 화재경보기는 바로 소방서로 연결되게 되어 있어서 소방서로부터 확인 전화가 오고 호텔 측은 또 상황을 파악하고 화재경보기들을 일일이 점검하는 중인 것입니다. ‘잘못 눌러진’ 화재경보기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이 멀고도 먼 아테네에서 국제적 망신을 당할 판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중학교에서도 두어 달에 한 번 정도씩은 아이들의 장난으로 화재 경보기가 울리기 일쑤고, 심지어는 장난 전화로 소방차가 출동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화재경보기가 울릴 때마다 아무도 ‘동요’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또 장난쳤어’라고 생각하며 하던 공부, 하던 업무를 계속 합니다.

  결국 번번이 고장이거나 장난으로 밝혀지는 화재 경보음에 너무 익숙해진 탓입니다. 경보음을 들으며 교무실에서 업무를 보면서도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논하곤 합니다.

  분위기상 입 다물고 조용히 있다가 호텔을 떠나 왔지만, 사실은 우리 일행 중 아이가 잘못 눌러서 그렇게 되었다고 먼저 알렸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이 뒤늦게야 들었습니다.

  잘못한 아이를 적절히 꾸짖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리 실수라도 자신이 한 일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칠 수 있는 생생한 교육 현장 하나를 놓쳤다는 것도 아쉽고, 무엇보다도 밝혀지지 않은 이상 가만히 앉아있으면 사건이 은폐되고 책임을 피해갈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아이들이 가지게 되는 건 아닐까 그것이 더 걱정입니다.        


사건 2. 가이드를 화나게 만든 화장실 사건 

  아테네의 고대 올림픽 경기장 앞에서 육체적 한계를 경연하는 숭고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감동으로 버스에 오르려는 찰나, 일행 중 한 분이 화장실이 급했습니다. 가이드는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의 위치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여기까지를 바로 눈 앞에서 목격한 저는 ‘전운’이 감돌 기미라고는 손톱만큼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먼저 버스에 올라타고 앉아서 화장실 다녀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비가 툭툭 떨어지는 버스 차창으로 아테네의 우중 거리를 감상하며 잠시 몽롱해져 있던 참인데, 갑자기 버스 앞쪽에서 “뭐라구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하는 고성이 돌발적으로 들립니다.

  무슨 일인지 짐작이 안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오고가는 대화로 짐작해보니 가이드가 가르쳐준 화장실을 다른 곳으로 잘못 알고 한참을 헤맸던 일행 분이 뭔가 좋지 않은 말씀을(사실 상당히 인격적 모욕감을 느낄 정도의) 가이드에게 하신 것 같습니다.

  가이드는 그냥 기분이 언짢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격분한 모습으로 급기야는 가방을 들고 버스를 내리려고 합니다. 난생 처음인 아테네 거리 한 복판에서 비오는 거리에 가이드 없이 버려질 단체 버스 여행객들의 상황은 그야말로 ‘재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행 중 연륜과 경륜을 갖추신 교감 선생님께서 중재에 나섰습니다. 여행 내내 이분의 도움을 알게 모르게 상당히 받았습니다. 젊음과 패기 못지않게 연륜과 경륜이 중요함을 새삼 깨닫습니다.

  한국에서 온 여행사 가이드와 일행 중 총무 역할을 하셨던 대표 선생님까지 소위 대표자들이 총 출동하여 저 멀리 올리브 나무 밑에서 설왕설래하는 동안 버스 안의 나머지 여행객들은 ‘도대체 이게 뭔 일이야’하며 멀뚱멀뚱 앉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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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09 저 멀리 올리브 나무 밑에서 화난 가이드를 달래고,

                                          영문을 모르는 일행들은 하염없이 버스에 앉아 기다리고......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선 충분히 길었을 시간이 지나고, 가이드가 담배 한 대 피워무는 모습이 보입니다. 사건이 종결되려나 봅니다. 이럴 때 ‘담배’는 참 고마운 소도구입니다. 버럭 화낸 사람이나 화를 불러온 사람이 미처 말로 하지 못하는 마무리를 담배 한 대 피워 무는 것으로 ‘무언의 종결’을 선언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여행 내내 아이들이 이 장면을 들추어내서 어른들은 참 곤혹스러웠습니다. 아이들은 ‘듣고’ 배우기보다 ‘보고’ 배운다는데, 어른들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말았습니다.

       

▶ 언제나 사건 진행 중 - 문제없는 객실이 없다?

  아무래도 단체 관광은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추게 마련이다 보니 비행기 좌석을 비롯하여 호텔이나 식당 등을 아주 고급스러운 곳으로 정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 자신도 자거나 먹는 것에 호사를 누리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럭셔리’ 호텔이나 식당은 원하지 않습니다.

  어찌되었거나 sightseeing은 눈과 귀와 머리와 가슴이 충만해지는 일에 최우선적으로 주력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 자유의지로 거지같이 살며 ‘안빈낙도’를 구가하며 배낭여행을 즐기던 20대의 젊은이가 이제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단체 관광을 하게 되니, 여행 안내문에 써 있는 ‘호텔 투숙 및 편안한 휴식’이라고 쓰여 있는 글귀의 ‘호텔’이라는 단어에 어느 정도 기대하는 바는 있었습니다. ‘편안한 휴식’을 위한 기본적인 설비와 서비스에 관해서 말이지요.       

  같은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이라 해서 그 시설과 서비스가 다 같지 않다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최하 별 3개 이상의 호텔들에 투숙했던 이번 여행에서 어찌된 일인지 ‘문제없는 객실’이 없었던 것 같은 기억입니다. 

  단체관광은 처음인 사람이라 현실을 잘 모르는 생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한번 더 단체 관광을 가보면 ‘현실’을 정확히 알 수 있을지 모르지요.

  하여간에, 헤어 드라이어가 작동되지 않는 비교적 사소한 문제부터 욕조의 물이 잘 안 빠져나가는가 하면 뜨거운 물이 잘 안 나오기도 하고, 히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방도 있었고, 심지어는 여닫이 창문이 잠글 수도 없게 망가져 있어서 한밤중에 창문이 벌컥 열리고 커튼이 휘날리며 폭풍의 언덕에나 불 듯한 스산한 바람이 몰아쳐 들어오기도 하는 등, 머무는 호텔마다 크고 작은 트러블이 이어지니 ‘편안한 휴식’이 아니라 ‘문제 해결력 고취 훈련’이라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문제로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하는 일이 싫은 사람인데(수화기 자체를 싫어하는 지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터키에서 해야 하다니...... 하지만 어차피 ‘릴랙스’하려고 떠난 여행길도 아니고, ‘문제’는 ‘해결’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좀 귀찮기는 해도 밤새 안녕하려면 ‘항의’와 ‘요구’를 해야 했습니다. ‘우는 아이 젖 준다’는 말처럼 당한 사람이 나서지도 않는데 알아서 도와주는 법이란 없으니까 말이지요.

  제가 묵는 방마다 우연히 ‘재수가 없어서’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어서 일행의 다른 객실들도 들러보니 방마다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연세 있으신 분들도 계시는데 가이드가 좀 더 ‘공격적인 서비스’를 해주면 좋을텐데 하고 궁시렁거리며, 어려움의 현장을 목격하면 도움을 드리곤 했습니다.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으면 아주 신나는 제 딸은 괜히 들떠서 쪽지 심부름도 하고 하릴없이 각 방을 순례하며 게임이라도 즐기는 듯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흥분을 즐기는 아이이기에 밤마다 곯아떨어지는 노곤한 일정을 겪고 나서도 다음 번 여행에도 엄마와 동행하다며 사전 예약을 해놓습니다.   


여행 중 최고의 유행어들

 

단 열흘간의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일행들 사이에 ‘유행어’가 있었습니다.

 

* 피니쉬?

  “Have you finished your meal?"

터키 식당에서 이렇게 완벽한 문장은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주어도 목적어도 다 생략하고 시제도 무시한 채 그냥 ‘피니쉬?’입니다. 나중엔 웨이터가 묻기 전에 우리가 먼저 ‘피니쉬!’했습니다.

 버스 단체 관광이라는 것이 자고, 먹고, 버스타고, 보고, 또 먹고, 또 버스타고 하는 일정이다 보니 ‘먹는 일’이 큰 일로서 기억을 차지하게 되고, 하루에 두 번씩은 꼭 듣게 되는 ‘피니쉬’는 우리 일행에게 이번 여행 최고의 유행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 인샬랴

  터키어로 ‘신의 뜻대로’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일신인 ‘하느님’의 계획하신 바에 따라 우주 만물과 세상 이치가 돌아가는 것이라 믿는 것이므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압축할 수 있는 말로 ‘인샬랴’ 이상의 것을 찾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인샬라’에 상응하는 우리말 표현으로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비 기독교인들도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 ‘주님의 뜻이야’도 덩달아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이야’, ‘인샬랴’

자꾸 듣고 말하고 하다보니 새삼스런 깨달음 때문인지 체념한 탓인지 인간의 마음을 참 편안하게 만드는 말인 것 같습니다. ‘신의 뜻’이라는데 뭐 더 이상 보탤 말이 있겠습니까?                        

  30년만의 이상 기후로 비바람이 몰아치는 아크로폴리스에서 파르테논 신전 주위를 웅웅거리는 바람 속에서 ‘제우스’와 ‘헤라’를 느꼈던 것, 그 비바람으로 크루즈 배가 출항할 수 없어서 고린도로 여행지가 바뀐 것, 그리하여 사도 바울의 초대 교회 문고리와 사도 바울이 짚었던 재판정의 돌을 부여잡고 울컥 눈물을 쏟는 한 인간의 모습을 앞에 두고 또 알 수 없는 뜨거운 마음이 되었던 것, 알고 간 것은 아니지만 마침 여행 기간이 바이람 기간이어서 이슬람 명절 특유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던 것 등등, 우리가 기대하고 꿈꿨던 계획들이 엇나가는 그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저마다 ‘인샬라~’, ‘주님의 뜻이야~’ 하며 편안히 체념할 수 있었습니다.


* 마담!(Madam!)

  한국에서도 질펀한 시장판에 가면 여자는 누구나 ‘싸모님’이 되고 남자는 누구나 ‘싸장님’이 되지요. 터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랜드 바자르에서는 저마다 우리를 ‘사모님’이라 하고 간혹 언짢은 표정을 보이면 ‘언니’라고도 하더니, 조금 고급스런 보석점이나 가죽 제품 판매장 점원들과 호텔 직원들은 또 우리를 ‘마담’이라 부릅니다.

  원래 여자를 약간 정중하게 부르는 호칭인 ‘마담’이 한국에 와서 본의 아니게 그 이미지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그들이 안다면 그렇게 입버릇처럼 마담, 마담하지는 않을지도 모르지요.

  처음엔 좀 어색하게 들렸던 ‘마담’소리도 자꾸 들으니 나중엔 제법 적응이 됩니다.

고가의 가죽 제품을 파는 판매장에서는 그 자신이 상당히 우아한 차림새의 한 여직원이 처음부터 저를 붙잡고(아무래도 저는 소위 ‘찍힌’것 같았습니다.) 제게 ‘딱’맞는 제품이 있다며 보여주는 것을 그리 시간 끌지 않고 샀더니, 부모님은 함께 안 왔느냐, 남편과 아이들도 왔느냐 하며 속된 말로 저를 아주 ‘봉’으로 아는 것이었습니다.(그 점원의 고객 응대는 사실 상당히 우아한 것이었습니다만) 그 매장에서만도 ‘마담’소리를 수십 번도 더 들은 것 같습니다.      

  마담 소리를 듣던 며칠이 지나고 파묵깔레에서 안소니 퀸 닮으신 할아버지께서 연신 우리에게 lady, lady하니 또 기분이 새롭습니다.

  여하튼 ‘마담’이 유행어가 될 정도면 우리 일행이 얼마나 많은 쇼핑몰에 끌려 다녀야 했는지 짐작이 가실겁니다.


* 완 돌라, 텐 돌라

  한국에서도 가장 만만한 게 천원, 만원이지요. 엄청난 인플레이션 탓에 자국 화폐보다 US 달러를 더 선호하는 터키 상인들도 웬만한 물건 값은 완 돌라(1 달러), 텐 돌라(10 달러)를 부릅니다.

  터키어로 ‘달러’표기는 미국식의 dollar가 아니라 dolar로 그 발음도 정말 ‘돌라’입니다. 기념품점에서 파는 자그마한 물건들은 균일가 판매라도 하는 것처럼 가격을 물어보는 족족 ‘완 돌라’, ‘텐 돌라’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터키의 일반적 물가가 한국의 절반 정도라고는 하지만 관광지에서 부르는 가격은 동네 시장보다는 많이 비쌀 것입니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제 딸아이가 11살 나이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가방이었지만 갖고 싶다고 말하는 가방이 있어서 가격을 물어보니, 제가 보기엔 3,4천원 (약 3, 4달러)정도가 적당해 보이는데 주인은 ‘텐 돌라’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부를 가격보다는 저렴할 것도 같습니다.

  카파도키아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도 웬 꼬마 아이가 호적 문양 장식의 팔찌들이 수북이 담겨있는 커다란 쟁반을 들고 “완 돌라, 완돌라”합니다. 

비바람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아테네에선 이렇게 물건을 팔러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보지 못했는데, 터키에서 좀 시골스러운 지역으로 들어서니 이렇게 행상을 다니는 아이들을 여러 번 목격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여러 대도시들에서도 대체로 보기 힘든 일이고, 이태리 집시 아이들이 물건도 팔러 다니고 간혹 소매치기도 시도하는 모습이 좀 생경스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터키에 오니 또 이런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까지 놀라운 자제력을 보였다고 자부해오던 참인데 이렇게 추운 날 무거운 쟁반을 들고 서 있는 아이를 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되어 아이 것과 제 것으로 ‘완 돌라’짜리 호적 무늬 구슬 팔찌 하나씩을 샀습니다.

  물건만 사고 돌아서기가 어쩐지 안 된 마음이 들어서 아이에게 몇 살이냐, 이름이 뭐냐, 엄마 아빠는 어디 계시느냐, 학교는 다니느냐 물어도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완 돌라’라고만 합니다.

  그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제가 우스운 사람이지요. 외국 여행을 하다보면 영어가 안 통하는 나라에서도 영어를 쓰고 있는 저 자신이 우스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에겐 영어나 한국어나 못 알아듣기는 마찬가지니까 차라리 한국말 한 마디라도 더 들려주는 게 나을 것인데 말입니다.

  팔찌를 사고 돌아서면서도 제 작은 아이만한 그 아이를 자꾸 다시 쳐다보게 됩니다. 조금 망설이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물으니 제법 턱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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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10.  거리에서 팔찌를 파는 아이

 

   ‘그래 얘야, 그렇게 턱을 치켜 들 때도 있어야 한단다. 네가 커서 네 부모가 울타리에 항아리 하나 올려두었을 때 네 항아리를 돌 던져 깨줄 동네 착한 청년 하나쯤은 있겠지?’

  우리에겐 ‘없어져도 그만’인 ‘완 돌라’가 그 아이와 그 아이의 가족에겐 ‘생계’의 의미가 될테지요.


* 어머나

  대중가요를 거의 듣지 않는 저 같은 사람도 ‘어머나’라는 노래 몇 마디가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이 노래의 대중적 파워를 가늠하고도 남을 만 합니다.

  그 가사의 내용을 듣자하면 사실 제 아이가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다니는 것이 그다지 마뜩치는 않은 일이지만, 대중문화에 대해 제 아버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그 따우’(그 따위도 아니고 꼭 ‘그 따우’입니다.)로 폄하되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아무리 자식이라도 그 부모가 아이의 느낌과 감정까지를 통제하고 규정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에 아주 몹쓸 것이 아니라면 아이가 즐기는 문화에 대해 부모로서 이러쿵 저러쿵 하는 논평은 삼가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대중문화에 대한 식견도 없고 제대로 즐길 줄도 모르는 부모 밑에서 텔레비전도 그다지 많이 보지 않는 아이인데도 다른 아이만큼의 공감대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의 세상’은 부모 외에도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가 ‘어머나’라는 노래를 흥얼대는 것보다 정작 제게 더 놀라웠던 것은 제 딸이 일행의 다른 아이와 함께 버스 안에서 쉬고 싶은 어른들께 군소리도 들어가며 엠피3를 무한 반복으로 설정해 놓기까지 하면서 달리는 버스 안에서 지치지도 않고 ‘어머나’를 반복해서 들으며 연습했다는 것입니다. 아이들만큼의 집중과 열정으로 세상에 못할 일이 없지 싶습니다.

  여행 내내 두 아이가 하도 그 노래를 불러서인지 노래 가사 외우는 일을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로 여기는 저마저도 가사를 다 외울 지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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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11. 여행 내내 연습한 ‘어머나’를 에페스 유적지 대극장에서 초연하는 꼬마 여행자들

 

터키를 다녀온 후

 엄마가 터키로 여행을 가려하는데 함께 가겠느냐고 했을 때 아이는 아주 신나하며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3년 전 보스톤과 뉴욕을 여행했을 때 현지에 사는 아이 이모와 삼촌 덕에 특별하게 고생한 기억이 없어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제법 고생스러웠던 터키 여행을 다녀 온 후에 ‘다음에 엄마가 외국 여행 갈 때 또 함께 하겠느냐’고 물으니 흔쾌히 그럴거라고 합니다.

  어디가 제일 인상 깊었냐고 물으니 그랜드 바자르라고 합니다. 은근히 성 소피아나 카파도키아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저는 푸후훗 웃음이 납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이 주워온 돌들을 이리로 옮겼다가 저리로 옮겼다 하고, 여행 전 건성으로 읽는 것 같던 ‘낯선 곳으로의 열정’ 시리즈를 다시 펴드는가 하면, 별로 친하지 않은 일기장에도 뭔가 끄적거리는 것 같고, 아이 방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주워 보니 터키 여행을 주제로 한 3분 스피치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아이에게 뭘 느꼈느냐고 묻고 싶어 입이 간질거리지만 ‘교과서적인 매끈한 대답’을 기대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아이 나름대로 여행 ‘후풍’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그냥 지켜봅니다.

  세일러 문이나 할로윈 복장 등으로 꾸미곤 했던 아이들의 ‘dress up' 놀이는 터키를 다녀온 후 커다란 스카프를 이용해 ’차도르‘분위기를 내거나 두 자매가 터키 모자를 쓰고 낄낄거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설에는 터키식 명절 인사도 해보았습니다. 터키인들도 새해가 되면 우리가 세배를 올리듯 가족이나 이웃의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합니다. 터키식 새해 인사는 어르신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춘 후 그 손등을 자기 이마에 갖다 대며 ‘이 바이람라르’(iyi bayramlar) 하고 ‘좋은 명절되세요’라는 뜻의 인사를 올립니다.

  세뱃돈을 주는 것도 우리와 비슷합니다. 저희와 함께 여행했던 현지 터키인 가이드도 우리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신 교감 선생님께 터키식 새해 인사를 올리고 세뱃돈을 받았습니다.

  버스를 타고 여행하다 어느 마을에선가 한 청년이 할머니께 이렇게 인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낭여행이었다면 그 광경을 좀 더 밀착해서 생생하게 볼 수도 있었을 것이고, 저 자신이 직접 그런 인사를 터키 어른들께 해 볼 수도 있었을텐데, 여행자의 아쉬운 마음을 알 리 없는 무심한 버스는 그저 달리기만 했습니다.

  곶감을 좋아하는 제 입맛엔 터키에서 사 온 말린 무화과도 정말 맛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사 먹었던 수입 무화과들은 작고 동그랗고 좀 딱딱했었는데, 터키에서 파는 무화과는 모양이 곶감 비슷하고 단 맛은 더 강한 듯한데 자잘한 씨들이 토도독 씹히는 맛이 아주 그만입니다.

  시골길을 가다 불현듯 눈에 들어온 과일 노점상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는 ‘버스 스톱!’을 외치며 차를 세워 말린 무화과 60여개 들이 한 팩에 2달러를 주고 샀는데 호텔에서 먹어보니 너무나 맛이 있어서 선물로 더 사가려고 공항 면세점을 들렀더니 10개 정도를 고급스럽게 포장한 것이 10달러나 되었습니다.

  터키에 대한 추억은 또 이렇게 입맛 다시며 아쉬워지는 달콤한 무화과 같은 것으로 남으려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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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12 우리 나라 곶감 비슷한 모양의 반건조 무화과.

                                      너무 맛있어서 아껴가며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터키를 간다면  

  제가 제 남편과 여행에 관하여 꿈꿔본 것이 있다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야영을 해보는 것과, 로마와 파리와 프라하를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보는 것과, 미국대륙을 렌트카로 동서로 횡단해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터키를 다녀오고 나니 제 꿈에 ‘터키’가 하나 더 추가 되었습니다.

 특히 이스탄불은 버스도 아니고 택시도 아닌 제 두 발로 샅샅이 걸어 다녀 보고 싶습니다. 

  교회 권사님으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신 제 친정 어머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성지 순례’차 꼭 한번은 터키와 그리스 땅을 밟아 보시길 꿈꾸고 계십니다.

  ‘무늬만 교인’이었고 이젠 그마저도 아닌 저 같은 사람도 울컥하게 만들었던 고린도를 제 어머님께도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제 동생들과도 언젠가 한번은 꼭 가보자며 언제 이룰지 알 수 없는 약속도 했습니다.

  단, 터키는 꽤나 넓은 나라이기 때문에 도시 간 이동거리도 상당히 길어서 터키를 여행하는 일엔 무엇보다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아직 못하는 수영을 언젠가는 꼭 배워보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참인데, 이 참에 수영을 배워서 틈틈이 체력보강을 하여 다음번 터키 여행에서는 무겁게 늘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버스 단체 관광이어서 호텔 외엔 머무를 수 없었지만 다음에 또 터키를 간다면 ‘진짜’ 터키 사람이 사는 집에 머물러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우리의 역사 속에 ‘터키가 흘린 피’도 있었음을 상기하며 그들에게 ‘터키와 터키인들에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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