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옆 장애인회관..2004/09/01,수 2004-09-0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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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서는 도서관길이었다. 2주만에 나선 길은 햇살이 여전했지만 그 여름의 것과 사뭇 달랐다. 이제 가을이구나 싶게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선 길이라 입안이 개운치 않았다. 커피 생각이 났다. 다소 퀘퀘한 느낌의 도서관 자판기보다 도서관 가기 전에 있는 장애인 회관의 자판기가 산뜻하니 나를 당겼다. 동전 두 개가 들어간 자판기에서 커피가 나오자 가방을 잠깐 내려두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도서관 갈 때 자주 이용하는 까페겸 식당인 <다드림>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도서관 식당과는 달리 깨끗하고 밥인심이 좋은 곳이다. 커다란 유리창에 예쁜 글씨로 공지같은 글이 눈에 띄어 다가섰다.
“이 곳은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시설입니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비장애인인 나는 갑자기 가슴이 벅차 올랐다. 자칫 이 사회가 비장애인의 일방적인 도움과 배려로 유지될 수 있는 양 떠들어왔던 것과는 다른 참으로 아름답고 당당한 요구에 강한 힘이 느껴졌다. 말은 쉬운 함께하는 사회가 실상은 아직도 먼 이야기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이용하기 불편한 생활, 교통, 문화, 사회 시설이 아직도 너무 많다. 굳이 장애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조금만 생각하면 알게 된다.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우려지는 모습은 이벤트성이 강한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저 한번 쯤 속상해 하고 가슴 아파 하고 이 나라가 뭐 그렇지로 끝나는 일상이 반복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 비록 장애인 회관이라는 제한되고 구체적인 어떤 곳이었지만 그곳에서 흐르는 그 건강하고 당당한 기운을 느끼면서 나는 이 나라의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여기 다드림은 점심 시간에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그 외에는 베이커리 까페로 운영된다. 빵은 이 곳 장애인회관에서 훈련받는 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것들로 가격과 맛이 그만이다. 나는 그 중에서 삼각토스트를 가장 좋아한다. 식빵을 두툼하게 썰어 튀긴 다음에 설탕시럽을 묻힌 것으로 커피와 함께 찢어 먹으면 정말 환상적인 느낌이다^^ 약간의 도움을 받아 까페 운영도 장애인들이 직접 한다. 도움을 주는 이들은 그들의 교사가 아닌 친구로 있다. 어떤 날 신나게 물총놀이를 하는 그들 속에 끼고 싶어 하는 은송이 때문에 난감했던 기억이 난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물총이 없었다.
장애인 회관과 도서관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 나있는 오르막의 도서관길도 좋지만 장애인회관 로비를 지나 뒷문으로 연결된 이 계단을 오르는 것도 좋다. 전에 은송이랑 오르면서 세어보니 한 쉰개쯤 되는 계단은 비가 와서 촉촉했을 때가 더욱 좋다. 오늘은 은송이도 없이 손에 두툼한 가방을 들고 올랐다. 그렇게 혼자서 무얼 한다는 자체가 참으로 낯설었다.
칸막이가 있는 책상은 학생때부터 싫어했다. 보통 여섯명이 앉게 되는 그 널찍한 책상이 좋아 2층 관외대출실에 자리를 잡았다. 그 시간이 보통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 외에는 자리한 이가 없었다. 윤이 나는 책상에 가지런히 미끄러지는 햇살이 부드러웠다.
두시간쯤 책을 보다가 이번 달 책벌레 주제책을 찾으려고 일어섰다. 수첩에 명절에 대한 책 제목이 조르륵 쓰여있다. 대동놀이, 견우 직녀,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 할머니의 단오 부채...그리고 가을관련책도 골랐다. 은송이를 위한 동요책과 패턴책도 집었다. 그렇게 또각거리는 샌들소리를 조심하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은창이가 들어섰다. 집을 나설 때 유치원에 전화해서 도서관으로 바로 오도록 일러두었던 것이다. 도서관으로 오라고 했지만 어떤 층인지 말하지 않아 이 녀석이 제대로 찾아올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잘 찾아왔다.
“어떻게 여긴줄 알았어?”
“어린이실에 가보니까 없어서 올라왔지..뭐..”
12권의 책을 들고 대출을 하려고 하는데 사서가 어떤 책에 시선이 멈춘다. 대동놀이였다.
“대동놀이는 바로 대출이 안되는데요..바로 전에 대출을 하셔서 삼일 이후에나 재대출이 가능하거든요..그리고 보니 벌써 대동놀이를 세 번째 대출하시네요..다른 분도 읽으셔야 해서 그런 규정이 있으니 다음부터는 바로 재대출을 안되요..^^”
만약 은창이가 대동놀이 또 본다...고 좋아라 하지 않았다면 아쉬운 마음을 접었을지 모르겠다^^;; 사서는 은창이를 보고 한 번 웃어주더니 우리에게 대동놀이를 내주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사야할 듯 싶다...
책들을 챙겨들고 어린이실로 내려갔다. 그 곳에서 한 삼십분 책을 더 보다가 나왔다.
오던 길에 들렀던 장애인회관의 까페 다드림에 들러 빵과 우유를 사먹었다. 유리벽 너머로 현수막 작업이 한창이었다...뭘까...나와보니 매주 수요일마다 야외무료영화 상영을 한다는 안내 현수막이었다. 매주 수요일 아이들 손잡고 올 일이 생겼다. 신나고 즐거웠다.
오는 길에 아이들 치약과 두부, 팽이버섯을 샀다. 나는 이미 가방이 두개라 그것을 은창이가 들게 했다. 한창 걸어오는데 가방을 열어야한다고 길가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은송이한테 무엇을 주어야 한단다.
“그러면 집에 가서 열면 되잖아...이제 금방 집인데...”
“아니야. 여기서 꺼내야 돼.”
그러면서 길한복판에 검정 비닐봉지 내려놓고 노란 가방을 열어 도시락, 수저통, 물병을 차례로 꺼내 죽 늘어놓는다. 아이는 이미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안방인양 앉았다. 도대체 무얼 꺼낼려고 저럴까....모든 것을 꺼낸 다음에야 주섬주섬 아이 손에 이끌려 나온 것은 물에 젖고 구겨진 노랗고 파란 은행잎 몇 개였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다 구겨졌네. 우리반 서인이가 이거 은송이 갖다 주라고 했는데..말리면서 가야겠다..”
그러면서 그 까맣고 작은 손에 네 개쯤 되는 은행잎을 가지런히 잡았다.
집에 돌아온 은창이는 그 흉물스런^^ 은행잎을 선물이라 내밀고 은송이는 잠에서 방금
깬 얼굴로 고마워..한다.
놀이터로 줄행랑치기 전에 방금 빌려온 따끈따끈한 책을 펼쳤다. 견우와 직녀을 본 은송이는 너무 재미있겠다고 박수까지 친다. 요즘 은송이는 전래동화의 재미에 푹 빠졌다. 가끔 밤에 들려주는 입말의 전래동화는 은창이가 좋아하고 은송이는 아무래도 알록달록 그림이 있는 책으로의 전래동화를 더 좋아라 한다.
몇권을 읽어주고 잠깐 사이..아이들이 쉬쉬하면서 뭔가 속닥거리길래 모르는 척 했더니만..살금살금 문간을 나선다. 너희들...이라고 돌아보기가 무섭게 놀이터로 후다닥 뛰어나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내 어릴적 모습이다.
한 삼십분쯤의 여유가 있어 빌려온 책들을 꼼꼼히 살폈다. 오늘의 으뜸 수확은 바로 이 책. 요리조리 맛있는 세계 여행이다.




작가 최향랑씨의 애씀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멋진 책이다. 요리를 통해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소개된 요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거기에 각국의 특색있는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가 결코 양념격만은 아닐 정도로 놀랍고 재미나다.중국요리 마파두부가 ‘곰보할머니가 만든 두부’ 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 걸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알고 있을까. 아주 어린 아이들과는 힘들겠지만 직접 요리를 해볼 수 있도록 요리법도 소개되어 있다. 마들렌카를 보고 좋았던 사람들이라면 이 책도 좋아할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은 우리나라 작가의 것이 아니던가...
그림은 역동성을 위해 과슈물감을 사용했고 엄마의 요리수첩은 색연필로, 각 나라 등장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 장면은 점토 인형과 콜라주 기법으로 왁자지껄한 느낌이 나도록 꾸몄다.
나중에 살펴보니 제7회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 수상작이란다^^
도서관 옆 장애인회관을 두고 사는 나는 행복하다. 이 행복이 언제까지 될지 불안할 정도로 행복하다. 사람사는 일이 뜻대로 계획대로만은 안된다지만 지금 내가 사는 이 모습을 고집한다는 것이 과연 욕심인지 잘 모르겠다. 현재 우리는 집을 내놓은 상태가 못내 아쉬운 까닭이다. 오늘 밤은 아이들과의 책읽기가 더욱 풍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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