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쑥쑥, 도서관, 한우리 그리고 내 가방... 2004-10-1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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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일차 관문 통과다.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민간기업에서 시험만 보면 다 주는 그런 자격증 아니냐고, 자격증 딴 사람이 한두명이냐고 하면서 별일 아닌 눈으로 쳐다본다. 일부분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비록 현실이 그렇다할지라도 내가 그렇게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즐겁고 신나고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다. 그래서 내가 딴 흔한 그 자격증은 단지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이상이다. 결국 가치는 사회보다 먼저 그것을 대하는 각 개인이 만들어낸다고 나는 믿는다.

시험 합격을 확인하고 나는 이제까지의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그 곳의 처음에는 쑥쑥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쑥쑥을 알게 되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연히 알게된 이 사이트를 통해 유아영어를 알게 되었고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4년 가까이 영어품앗이를 해오고 있다. 그러다가 분에 넘치게 육아일기 코너를 맡으면서 내 인생의 전환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새끼들과의 일상이 소중해서 쓰던 것이 어느날부터인가 아이들 책이야기가 슬그머니 등장하더니 아주 그것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책을 정말 좋아했던 것이다~~!! 보통 책을 좋아하면 글도 잘 쓴다는 공식이 자연스러운 법인데 그것이 무리하게 적용된 것이 학창시절이었지싶다. 책을 좋아했지만 글에 대한 대외적 평가는 그렇게 좋지 못한 나는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고 그렇게 좋아하던 책읽기조차 숨죽이고 남몰래 하는 우스운 모습을 갖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내 글쓰기는 창작이보다는 다른 쪽이었는데 전문화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국어교육이 갖는 한계점을 어쩌지 못했는지도 모른다고 우격다짐을 해본다^^ 쑥쑥에서 독수리타법이었던 실력이 일취월장했으며 내 육아일기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이들로 통해 신이 나서 글도 썼다. 그것이 내게 힘이었다. 이번 팜플릿에 나와 은송이 사진이 실렸는데 그래서 나는 제일 먼저 쑥쑥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쑥쑥이라고 이름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 책에 빠지고 도서관에 다니고 다니면서 싸움도 하고 또 그러면서 도서관에 뿌리를 내렸다. 도서관은....내가 평생 함께 할 애닳고 아픈 존재이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뭔가 차원 높은 감정을 떠올리지만 우리네 도서관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아책이 많지만 유아가 충분히 빌려볼 수 없는 열악함, 책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는 현판이 있지만 도서관 전체가 입시와 입사를 위한 공부로 정숙이 가장 큰 덕목으로 자리잡아 책읽는 소리조차 조심해야 한는 아이러니, 수많은 책을 관리하는 사서인원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예산문제라는 말에 더이상의 진전이 없는 교육한국의 이면, 모든 것이 뻐걱거리는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싸움이라고 표현한 도서관운동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무서운 메세지다. 너무 작은 움직임이어서 눈에 뜨이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통해 아주 조금씩 변하는 도서관을 나는 믿는다. 그저 가만히 앉아서 불평불만만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그것..그것을 먼저 해야 한다.
시험 보기 이주일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 대출실 그 커다란 책상에 앉아 있었다. 시험 공부도 했지만 관련 책도 보고 머리를 식히느랴 아이들 책도 많이 보았다. 내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행복한 시간이 대한민국에서 일상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딱 삼일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을 하고 61기 독서지도사 개강식을 하는 날 허겁지겁 등록을 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다. 공부하는 내내 가족과 주위의 도움이 있어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먼저 공부하는 내 마음이 즐겁고 신났다.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공부가 좋다보니 어려움조차 강한 자극제로 작용했다. 힘들수록 더 하고자 하는 의욕이 났고 어려울수록 집중하려고 했다. 열심히 읽고 열심히 써냈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공교육 16년동안 느끼지 못한 희열을 나이 삼십이 훌쩍 넘어 알게 되었다. 공부하는 체질이 아닌가봐라고 아는 언니에게 농을 던지면서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다짐했다. 이제 더이상 주춤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자극은 강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이었다. 물론 아무나 강사로 세우지는 않겠지만 각각의 색깔과 분야가 다른데도 하나같이 넘치는 열정과 실력에 나는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물론 교육 후 참관수업을 통해 그런 열정과 실력은 소수이며 그런 선생님께 지도받는 아이들은 축복받은 아이구나 싶었지만 내게 지도받는 아이들이 그런 아이의 대열에 있게 하고 싶다.

책읽기의 생활화를 말하지만 여전히 책이라는 것이 교육에 있어 하나의 도구라는 생각은 아주 뿌리깊다. 책을 읽는, 읽히는 목적의 저 위에 자리잡은 목적은 우수한 성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독서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책을 많이 읽어서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독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목적이 되어야만 한다. 내가 하는 독서지도는 공부를 잘 하게 하는 독서보다 어떤 책이든 잘 읽어내어 유능한 독자가 독자가 되도록 이끄는 것이다. 유능한 독자란 저자의 의도를 해석할 뿐 아니라 자신의 배경지식을 활성화하여 그 의미를 재구성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삶에 반영하는 적극적 독자를 말한다. 이럴 때 공부도 잘 할 수야 있겠지만 처음부터 그것에 목적을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아야하는데 표면적으로는 십분 공감하나 내면적 갈등을 겪고 있는 이 땅의 부모를 어떻게 동지로 만들 것인지 그것이 요즘 고민이다^^ 진심으로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험이 끝나고 한달의 여유가 있었고 그리고 결과도 나기전에 교육연수가 있었다. 일주일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시간 한시간 빼고 쉬지 않고 진행되었다. 펑퍼짐한 아줌마에게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고문이었다. 강도높는 교육에 힘이 들었지만 그것이 실제구나 싶었다. 현장에서 빛을 발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실력을 또다시 만나는 것을 단순히 즐거워야만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내 모습이어야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의 모습, 특히나 엄청난 교육관련 결과물들에 놀라다가 오히려 맥이 빠지는 모습들도 속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들의 경력은 대개 10년 이상이었으나 우리가 접한 것은 그 기간동안 걸러지고 걸러진 완성에 가까운 모습이 아니던가...

연수기간 내내 남편과 주위 사람들 덕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발생했다. 목요일, 은송이가 난데없이 잘 가던 교회 사모님 댁엘 안가고 나를 따라간다고 울길래 마침 남편이 강의하는 곳 근처를 지나길래 은창이는 시간되면 문 잠그고 유치원버스 타고 나가라 하고 은송이와 함께 전철에 탔다. 은송이는 마냥 신이 났다. 함께 동태찌개로 아침을 먹고 나는 수업에 들어갔고 남편은 은송이를 데리고 집으로 갔다. 수업 도중 휴대폰을 꺼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부재중 전화가 5통이나 와있었다. 그런데 새로 장만한 휴대폰이라 아직 발신자표시신청을 안해 어디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메세지가 따로 남겨진 것도 아니고 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은송이가 다쳤다는 소리를 듣고 까무라치는 줄 알았다. 이야기인즉 은송이를 안고 탔는데 은송이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열리는 전철문을 따라 손이 끌려들어갔다는 것이다. 다행히 전철 맨 뒤에서 두번째 칸에서 발생한 일이라 재빨리 나와서 사태를 확인한 승무원이 문을 닫아도 손이 크게 다치지 않겠다 싶어 닫았고 바로 역무실로 가서 응급조치를 했단다. 그리고 정형외과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었단다. 가벼운 찰과상과 이후에 멍이 드는 수준이라고 말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날 저녁 바로 발신자번호신청을 했음은 당연하다.
금요일은...은창이가 소풍을 가는 날인줄 깜빡 잊고 그냥 유치원엘 보냈다. 김밥도 없이 돋자리도 없이 청바지에 흰티라는 단체행동복도 무시한 채로 말이다. 2시쯤 오는 은창이가 오지 않길래 남편이 유치원에 전화를 했더니 소풍이라며 4시에 데리러 오라고 했단다^^;; 남편한테 무지하게 깨진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런 상황에서의 은창이였다. 선생님이 도시락을 하나 주었더니 자기는 친구랑 먹으면 된다고 괜찮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친구가 같이 먹자고 했더니 처음에는 싫다고 했단다. 그래서 은창이가 친구끼리는 같이 먹는 거라고 말했더니 그러자고 했단다. 은창이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은창이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도 해본다. 이번 일로 느낀 것은 아이들은 일하는 혹은 바쁜 부모로 인해 그렇게 쉽게 힘들고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시적인 일에 확언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과의 양적인 시간보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핵심이겠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았건만 연수가 끝나던 금요일 저녁 나는 은창이 손을 이끌고 시내엘 나갔다. 몇 달전부터 봐준 가방을 사기 위해서였다. 시험에 합격하면 산다고 그곳에 갈 때마다 있나 없나 확인했던 가방, 자꾸 팔릴 것 같아서 에이 사자..는 마음을 꾹 참고 입맛만 다셨던 가방을 드디어 사러 갔다. 가방을 나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텅빈 가방을 척 매고 나오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비록 가방이 비어 내 몸에서 자리를 못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스운 꼴이었지만...
이 가방에 열정을 싣고 실력이 늘어갈 때쯤 가방은 많이 낡을 것이다. 나와 함께 할 가방에 나는 말한다. "우리 잘해보자...응?"

주일 아침이다. 교회에 가서 열심히 떠벌린 덕에 무슨 고시마냥 여겨 기도를 심으셨던 사모님과 집사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지....
찹쌀떡 사들고 온 은송이 영어모임 다니엘반에게도 고맙다고 사탕이라도 건네야지...
내게 가장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었던 도서관에 고구마라도 삶아가야지...
그러나 그 누구보다 내 가족, 남편과 은창,은송이에게 고개 숙여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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