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쓰기 슬럼프에서 탈출하다...2005/03/31 2005-04-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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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 제목을 뭘로 할까요?”

“글쎄...무엇이 좋을까....”


아...은창이가 일기쓰기에 슬럼프가 드디어 온 것 보름 전쯤이었다.


올해 1월 1일이 되면서 쓰기 시작한 일기였다.  교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엄마인 입장에서 100% 만족해왔던 은창이의 일기쓰기였다. 비록 글씨도 괴발개발이고 비문에 맞춤법도 엉망인 일기일망정 아이답게 정직하여 건강한 그 일기들을 은창이 본인보다 내가 더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지내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혹시, 아니 반드시 찾아올 위기를 앞서 걱정했던 나였다.

무언가 새로운 접근 내지는 도움이 필요했다. 사실 그동안도 가끔은 색다른 시도를 겸하기는 했다.

 

(전에 올린 글과 중복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해해주시기를..)

 


1.밀린 일기는 쓰지 않는다.


언젠가 미처 일기를 쓰지 못한 날이 있었다. 전날의 고단함을 이야기로 나누고 그냥 넘기기 아쉬워서 글감을 주어 짧은 글을 쓰도록 했다. 전날 만났던 어떤 친구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었다. 결국 글감만 보면 밀린 일기라고 볼 수 있지만 은창이가 쓴 글은 친구에 대한 느낌글이었다^^;;



2.다양한 글쓰기 시도


내가 발견한 글감 중 좋은 것 하나가 바로 <나는 누구인가>이다. 이것은 처음 수업을 시작한 초등고학년 여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도 사용한 것인데 이를 통해 아이들의 관심사, 가족관계 또 나와의 공통점까지 발견하게 되었다. 이로써 이야기거리가 생기고 살짝 마음의 문을 열었다.

은창이의 경우도 어느 날 던진 이 글감을 처음에는 낯설어 했는데 번호가 뒤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고학년에 비해 심도있는 내용도 아니고 중복된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은창이는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새로운 자극이었다.



3.풍부한 느낌말의 세계


어휘지도의 중요성을 알지만 엄마의 입장에서 도와주는 일이 쉽지 않다. 아니 좀더 솔직히 말하면 우리 집 아이들은 방치되다시피한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필요한 부분이 보일 때 적은 양일지라도 바로 지도를 하자는 것이었다.

여러 말들이 난무하지만 일기쓰기에서 지도가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바로 날씨와 느낌말, <재미있다>가 아닐까...

은창이는 한창 여러 느낌말을 잘 쓰더니 어느 날엔가 <재미있다>를 썼다. 난 그저 지나가는 말로 그 일이 정말 재미있었나 싶어서 되물었다.


“은창아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어?”

“아...아니다, 뛸 듯이 기뻤다...이렇게 써야지...”


은창이는 <재미있었다> 대신 <뛸 듯이 기뻤다>와 더불어 몇 가지 패턴의 말을 반복적으로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재미있으면 재미있었다고 써야지...뛸 듯이 기뻤다가 뭐냐...

그게 더 정확한 네 마음이지...”


이후로 은창이는 신나게 <재미있었다>를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하나 조금 고심을 했다. 뭔가 방법이 있겠지 싶었지만 바쁜 일상에 하루하루가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너무나 다행인 것은 며칠을 그렇게 끄트머리에 재미있었다로 일관하던 녀석이 어느날부터인가 <즐거웠다>, <기뻤다>, <조금 힘들었다>, <화가 났다>, <좋았다>, <아시웠다>, <심심했다> 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에의 허용...그것이 오히려 생각의 다양화를 가져왔다. 그 때 이때다 싶게 다양하고 풍부한 느낌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재미있다>와 비슷한 말들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가끔씩은 힌트도 주고 어떤 말은 내가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말들도 나누었다. 공책 한 바닥이 금세 꽉 찼다. 은창이는 느낌말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렇게 잘 써간다 싶었는데 일기장을 앞에 놓고 제목을 물어오는 은창이...어떻게 해야하나...그런데 구세주는 바로 코 앞에 있었다....



4.장군...고맙습니다~~!!


어느날 은창이가 <난중일기>를 만났다.

내가 속한 연구회에서 요즘 교과서 분석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 일환으로 역사관련 책들을 비교하고 있다. 이순신에 거의 빠져서 사는 은창이가 떠올라 나는 네 권의 난중일기를 선택했고 내가 책과 씨름하는 있는 사이 은창이는 난중일기의 의미와 그 엄청난 일기를 제가 좋아하는 불멸이 이순신 장군께서 쓰신 일, 그것도 제가 쓰고 있는 일기라는 것을 장군도 썼다는 사실에 무척 신기하고 놀라워했다. 그러다가 챙겨보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는데 얼마전부터 그 장면....장군께서 일기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은창아 저거 봐...이순신 장군도 일기 쓰네...”


오직 그거 하나면 되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었다. 제가 좋아하는 장군이 의젓한 모습으로 일기를 쓰는 모습은 어미가 쏟아놓는 잔소리보다 훨씬 훌륭한 기준과 모델이 된 것이다^^

장군...고개 숙여 감사드리옵나이다~~~!!!!


특히 파란자전거의 난중일기가 좋았는데 날씨에 대한 간결하나 정확한 표현은 은창이에게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 되었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와 아들 면이 죽었을 때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참 많이 울었다. 우리가 충과 효의 표상으로 여기는 장군 이순신 역시 가족의 죽음 앞에 눈물을 쏟는 약한 인간이었다.


“아니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겨우 백원짜리 동전에 등장하다니...

말도 안돼...이거 고쳐야돼..안 그래?“


“제일 많이 사용해잖아....아이들 손이 제일 많이 만나는 돈이잖아...”


나의 핏대 세운 항변에 남편의 선문답 같은 말...

그래 많이 보면서 많이 기억하고 본받으라고 그랬나보다....

이런 좋은 말이 왜 나는 생각나지 않는 거지...^^;;




4.다시 궤도에 오르다


연초에 시작한 일기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은창이는 쓰는 일에 좀더 진일보했고 즐거움도 커졌다.


“은창아. 엄마가 네 일기 보는 거 어떻게 생각해?”

“좋은데...왜요?”


은창이는 제 일기를 엄마가 보고 거기에 짧은 코멘트를 달아주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일종의 우리의 생각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일기는 일기니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어..원래 일기는 혼자만의 것이거든...

혹시라도 나중에 엄마가 안보았으면 하는 일기내용이 있으면 표시를 해둬.

빨간색 포스트잍을 붙이던가 공책 끄트머리를 접어두던가...

그러면 그걸 보고 아, 오늘 은창이 일기는 보지 말아야겠구나 생각하고 안 읽을게...”


속 깊은 여자 아이도 아니고 엄마랑 알콩달콩 나누는 대화가 마냥 좋은 은창이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일기쓰기는 모든 쓰기의 기초가 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보면 꽤 잘 읽어내는데도 그것과 비교해 많이 못 쓴다. 그들의 머리 속에 담긴 쓰기의 개념과 이론들이 자기들의 쓰기에 적용이 되질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 어렵고 힘들어한다. 읽기와 쓰기의 불균형이 심하다. 일단 쓰는 것에 자신감을 주기 위해 우리는 대화노트를 마련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일단 반응이 좋다. 모든 사람은 자기 표현의 욕구가 있다. 그 욕구에 가장 쉬운 접근이 쓰기인데 그마저도 서성대는 모습을 돕고 싶다....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끄적이는 모습에서 쓰기의 즐거움이 시작되고 있다고 믿는다..


 

은창이는 보통의 독서력을 갖고 있고 쓰기의 시작은 여러모로 늦었다. 하지만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연필을 놓지 않으려고 애쓴다. 언제부터 쓰기를 시작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쓰기 시작한 후로 쓰기가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오히려 넉넉히 기다려주면서 쓸거리가 차고 넘쳐 쓰기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는 것...그것이 좋다.


은창이의 일기장은 은창이의 쓰기 공책이어서 온갖 글감으로 어지럽다. 영화 포스터가 붙여있기도 하고, 엄마가 받아적은 느낌말이 어지럽고, 적은 여백에 엄마랑 주고받은 말들이 빼곡하다...

내가 은창이 일기에 100% 만족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감상일지도 모른다. 향상의 욕구가 있는 아이한테 좀더 나은 교육을 할 수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것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창이도 즐겁고 나도 즐거운 이 이상하고 웃긴 일기쓰기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은창아..네가 하는 일 중에 제일 좋은 게 뭐야?”

“일기...^^”


두 번째 일기장을 위해 문방구에 나가봐야겠다....




2006년 3월 25일 금요일 바람이 쎄게 불었다.

<<가게놀이>>

낮에 큰 방에서 가게 놀이를 했다.

사세요~~ 크게 소리 지르며 놀았다.

손님은 은송이밖에 없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심심했다.

엄마 미워...흥.

-->그래도 엄마는 다음에는 같이 하자는 소리를 꾹 참았다. 발목 잡힐까봐...아유...^^;;


2005년 3월 28일 월요일 아침부터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은창이가 아프다>>

학교에서 돌아온 은창이가 아프다면서 자겠다고 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많이 아픈가 했다.

이불을 펴주었더니 금새 잠이 들었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학교에서도 아파서 보건실에 가서 누워 있었단다.

태권도장에서도 뒤에서 누워 있었단다.

아프면 집에 바로 오지 왜 도장까지 가서 힘들었을까...

은창이가 이 밤을 잘 견디고 이겨냈으면 좋겠다.

-->은창이가 너무 아파서 일기를 못쓴 날 저녁, 은창이 일기장에 엄마의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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