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느리게 그러나 쉬지 않고 가는 사람들..0427 2005-09-09 09:55
1447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44/23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참으로 많은 책을 대하지만 마음에 울림이 되는 책은 따로 있게 마련이다.

교사로서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고학년 아이들 때문에 읽어야 할 책, 우리집 꼬맹이들 때문에 읽게 되는 책...그렇게 바쁘게 만나는 책들, 그러나 너무나 신기한 일은 내 마음에 울림을 주는 책은 하나도 바쁘지 않은 책들이었다.


몇몇 책들의 감동이 정리가 안된 채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책을 읽어오다가 결국 브레이크를 건 책이 전면에 떠오르고 비로소 나는 막혔던 숨통이 터지듯이 고개를 들었다. 아..바로 이거구나...이들의 느린 걸음, 그러나 이들의 고집 센 걸음...나는 그들 앞에 한없이 부끄럽지만 기쁘고 즐거운 마음도 어쩔 수가 없다.

 


헨리는 피치버그까지 걸어서 가요

 

도서관 수첩을 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빌린 지 꽤 된 책인데 이제야 보았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은창이가 읽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도 나는 별 느낌이 없었다.

은창이가 다 읽었다고 제 일기장에 두 권의 책이름을 써놓았길래

지나가는 말로 어떤 책이 더 좋았냐고 물었다.

 

“헨리 책이요...”

 

그 말을 들으면서 펼쳐본 책...

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한 페이지에 한 줄의 문장... 다정하고 부드러운 그림...

그러나 너무나 강력한 메시지...

그것은 바로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이야기였다.

목적지를 향하는 두 사람의 전혀 다른 행로...

헨리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지팡이를 만들고 꽃을 꺽어 책 속에 끼우고

뗏목으로 강물까지 건너더니 벌꿀과 딸기까지 실컷 먹는다.

 

친구는 장작을 나르고 바닥을 쓸고 풀을 뽑고 울타리를 칠하고

밀가루를 나른 돈으로 기차표를 사서 빽빽이 들어찬 사람들 틈에 끼어

헨리보다 일찍 피치버그에 도착한다.

지친 몸을 의자에 맡긴 친구가 친구가 말했다.

 

“기차로 오는 게 더 빨랐어.”

 

"알아.“

 

헨리는 배낭에서 조그만 통을 꺼내며 웃었어요.

 

“나는 딸기를 따느랴 늦었어.”


이 책을 덮으면서 내 마음에 커다란 울림이 되었던 책들을 떠올렸다.

 

 


얼마 전에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이 바로 우체부 슈발이었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 없는 우체부 슈발이 33년에 걸쳐 그만의 궁전을 짓는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대개 무엇의 완성된 형태에 익숙하다.

그 안에 깃든 시간과 노력에 둔감하여 그 엄청난 양과 크기 앞에 절망도 쉽다.

그러나 우리처럼 평범한 우체부 슈발을 만나면

문뜩 삶에 대한 의욕이 새로워지고

그를 변화시킨 돌부리를 찾듯 경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우직한 33년의 시간이 녹아있는 슈발의 꿈의 궁전, 우리의 삶에도 그런 궁전을 짓고 싶다.

 

 


나무를 심은 사람 고집스럽다.

도토리 열매를 일일이 손으로 고르는 모습부터 진작 알아보았지만 자기 땅도 아닌 그 넓은 곳에 도토리 열매를 뿌리는 일에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 도대체 왜 그럴까...자기 한 사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고집스런 노인네 부피에...

그러나 내 심드렁하고 삐딱한 마음과는 달리 세상은 달라졌다. 황무지가 변하여 삼림이 우거진 숲이 된 것이다. 예상치 못하고 기대하지도 않은 상황...부피에 노인의 그 우직하고 변함없는 노력이 나를 무너뜨렸다. 그 때도 나는 창피했지만 마음은 뜨거워졌다....

 


책읽는 교실은 현직 교사로 수십년간 아이들 독서지도에 열정을 쏟은 선생님의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은창이 담임선생님께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또 차마 그러기가 쉽지 않은 마음은 왜일까...

독서지도에 관한 책이라 그냥 일거리처럼 집어든 면도 없지 않은데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했다.

독서 지도를 하지만 그건 겨우 책이나? 많이 읽히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이들을 지극히 사랑해서 책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거였다.

내용 전체를 다 흉내낼 수는 없겠지만 그 마음만은 온전히 따르고 싶다...

하여 오늘 아이들과의 수업은 그 어떤 날보다 즐겁고 신이 났다.

스스럼없이 거짓말에 대한 사연을 털어놓고

머리 쓰다듬어 주니 잔잔한 미소가 퍼지는 얼굴...

내 귀한 아이들, 내 사랑하는 아이들,,, 늘 처음처럼 그렇게 사랑하리라....

나중에 아주 나중까지도 우리는 책을 통하여 친구로 만날 수 있으리라..


요즘도 나는 곧잘 효율성을 말한다.

바쁜 시간에 쫓기는 자가 으레 말하는 생활의 지혜로 말이다.

그렇게 똑똑한 척, 잘난 척 하다가 이런 책들을 만나면 심히 부끄럽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고

그 부끄러움 뒤에 따뜻한 기운이 돌면서 나는 위로를 받고 희망을 얻는다.

야무지게 걷던 발걸음을 다시 쉬고 개나리, 목련, 철쭉이 한창인 우리 동네를 바라본다.

 

언젠가 읽은 박완서님의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이 아무리 바쁘게 계획을 하고 부지런을 떨어도

소리없이 제 할일을 하는 자연의 부지런함을 따를 수가 없다고...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봄은 이미 와있는데 그것도 모르고 세월이 지나갔다.

오늘 수업 시간에 동요책을 챙겨가서 우리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는 봄에게 노래선물을 했다.

많이 늦지 않기를 바라면서..


사방에서 엄청난 속도와 양을 말한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그것에 뒤지면 큰일날 것처럼 우리를 현혹한다.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자주 느린, 그러나 쉬지 않는 걸음들일 때가 많다.

내게 느리게 다가오는 사람들...

나도 그들처럼 느리게 가고 싶다. 그러나 쉬지 않고 말이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