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극-역지사지...060809 2006-08-14 22:02
2163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44/25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지난 토요일에 교회에서 학생부 수련회가 있어서 갔다왔어요. 수련회라... 10년만이지요.
결혼전에 아동부에서 한5년, 고등부에서 1년 교사로 봉사를 했다가
결혼하고  10여년만에 다시 중등부 교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참으로 적응하기 힘들더군요^^;;
제 열정이 십년전만 못한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이번 수련회에 가기가 어찌나 부담스럽고 힘들던지요.

그래도 어른이고 교사라고 그런 내색 안하고

제가 맡은 조원들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문자메세지 보내면서

함께 갈 것을 독려하고 부축하고...

 

기본적으로 제가 준비해야 할 것은 새벽마다 있을 공과와 프로그램 하나였어요.

딴에는 뭔가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아는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더니 알려준 것이 ‘역할극’이었어요.

그것을 들었을 때는 아, 맞다 이거야...하는 마음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했지만

막상 준비에 들어갔더니 더 큰 문제와 고민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일단 제가 마음으로 그린 역할극은

‘사이코드라마’에서의 한 부분인 ‘역할전환’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구성요소인 주인공, 연출자, 보조자, 관객, 무대가 필요합니다.

사이코드라마에서는 대본의 주인공이 되는 일반 연극과는 달리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즉흥적으로 연기를 합니다.

연출자인 치료자는 충분한 준비단계를 거쳐 행동과 마무리를 책임지는데

주인공이 문제를 탐색하고 저항을 다루어 나가고

종국에는 그가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돕는 역할이지요.

보조자는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주인공이 극을 진행하는데 촉진제역할을 합니다.

관객은 주인공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집단으로 극을 함께 합니다.

 

제가 선택한 갈등상황은 부모와 자녀간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역할극 당시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을 전제했고

보조자는 학부모 한 분을 섭외, 연출자는 저였습니다...

 

준비단계:

충분한 준비단계가 있어야 자발적인 참여가 가능합니다.

준비하면서 제일 고민했던 부분이지요.

그런데 생각보다 아이들이 잘 집중해주어서 식은땀 흘릴 일은 다행히 없었어요..^^

 

-에피소드 하나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덕구 이야기

 

-수수께끼 하나

다음의 인간관계는 누구와 누구의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요?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혈연적인 관계, 본능적인 애착이 강한 관계, 선택의 여지없이 숙명적으로 주어지는 관계, 가장 수직적으로 종속적인 관계, 인격형성에 가장 중요한 관계, 주요한 교육의 장, 세월이 흐르면서 관계의 속성이 현격히 변화(자녀가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독립적 관계-->부모가 의존하는 관계)

 

-부모와 자녀 관계에 있어서의 갈등과 대립의 상황 나눔

이 부분에 있어 사전에 몇몇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나누어서 원활한 진행에 도움이 되었어요. 자기 이야기(경우에 따라 이름을 밝히기도 안밝히기도 함)를 듣는 아이들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면서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행동단계

-여러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중 한명을 무대로 초대해? 본격적인 ‘역할전환’를 시도합니다. 아이들에게 사전에 공지된 것이 전혀 없어서 아이들은 무척 신기해하면서 반응이 뜨거웠어요.

 

-간단한 소품(자녀는 캡모자,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에 대한 인지에 도움이 됩니다.

 

-무대에 오른 학생은 고3인데 고2때 자퇴를 한 학생이었습니다. 준비단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비교적 솔직하고 자세하게 여긴 탓에 주위에 호응에 힘입어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일정한 시간을 두고 부모와 자녀의 역할을 하도록 했고 어느 순간에 두 역할을 바꾸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또한번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와..저럴수가..하는 반응이었지요..

 

-역할이 바뀐 두 사람은 각자가 맡은 역할에 충실할 것을 주문해야 했는데 제가 초보자이다보니 그것을 깜빡했어요. 그래도 두 사람 모두 심취해서 잘하더군요^^


마무리:

부모와 자녀간의 역할연기를 통해 서로의 입장이 되어본 소감을 나누면서 정리합니다

 

-이 역할극의 이름은 ‘역지사지(之)'였습니다. 처음에 공개하지 않고 마무리 단계에서 질문을 통해 알렸습니다. 이 극의 목적을 생각게 하고자 하는 의도였지요.

 

-준비단계에서의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덕구’ 이야기에서 덕구가 찾은 답은 “삶은 계란”이라는 말을 해주면서 마음을 좀 편안히 갖게 하려고 했는데 연이틀을 생각할수록 웃긴다는 은창이와는 달리 썰렁해져서 아주 난감했어요..그런데 마무리단계에서 삶은 계란이다. 왜냐하면.....이란 코너를 넣어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건 아주 기발한 의견들이 나오더군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삶은 계란이다. 왜냐하면...겉은 거칠고 딱딱하지만 그 안은 부드러운 힌자와 노란자가 있는 것처럼 우리 삶도 거칠고 어려운 면도 있지만 알고보면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면도 있기 때문이다.

 

삶은 계란이다. 왜냐하면 구워 먹을까 삶아 먹을까 후라이해 먹을까 늘 고민하니까..

 

삶은 계란이다. 왜냐하면 깨어야지 병아리가 되어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무언가를 깨야한다..


 

무턱대고 덤볐다가 준비하는 과정 내내 고생하고 진행하는 동안 난감하기도 했지만

참으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학생들의 말을 들으면서 제 학생시절이 오버랩되었고

더욱 그 주인공 역할을 했던 남학생이 자살을 생각하면서 했던 말은

그 옛날 저 역시 품었던 생각의 한자락인지라 순간 가슴이 싸했지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어요. 정말 죽고싶다는 생각만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삶과 죽음이 스위치를 켰다가 끄는 불빛처럼 아무 것도 아니고 한순간이라고 생각이 들더라구요...그래 아무것도 아니야...금방 지나갈거야....”

 

 

아쉬웠던 것은 보조자 역할을 했던 어머니분이 주인공보다 극에 너무 몰입을 해서

주인공이 코너에 몰리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학생이 그러는 와중에도 꿋꿋하게 자기 의견을 말했지만

의도하고자했던 주인공의 카타르시스에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역할전환 시에 주인공은 생기를 갖고 극에 임했습니다.

보조자가 극의 성격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한 탓이었고 그것은 결국 제 잘못이었습니다.

 

마무리 이야기나눔에서 주인공을 했던 학생이 엄마 역할이 아주 쉬웠다고 말했지만

그건 스스로 착각이었음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학생은 엄마 역할을 할 때 궁지에 몰릴 때마다 남편을 불렀고

막판에는 그럴거면 나가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엄마는 쉬울지 모르지만 제대로 엄마를 하려면 어려운 것이다.

제대로 자녀 노릇, 제대로 엄마 노릇 둘다 어렵고 힘든 것이라고 말하자

학생들도 교사와 학부모들도 모두 공감했지요..휴...


사실 이 극은 정통 사이코드라마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요.

아무래도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준비하는데 부족한 점도 많았고

완전한 주인공 중심의 극이 아닌 미리 상황을 전제한 것 등에서 말이지요.

다행히 가장 걱정했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져서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운 마음입니다.

아이들을 대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거부가 아니라 무반응이거든요.

 

지구방위대 조장이었던 그 주인공 학생은

다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꿈이 없어(사실은 아직 찾지 못한 것이지요) 힘들다는 학생의 말이 귀에 맴돕니다.

그렇게 밝게 그렇게 열심히 우리 조를 이끌던 열혈소년(본인의 닉네임^^)이

멋진 꿈을 찾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제가 2박3일동안 저보다 덩치가 큰 녀석들과 힘겹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집에서는 호된 목감기(처음에는 뇌수막염이라고 해서 놀랬어요)을 앓는 은창이와

떼쟁이 은송이 돌보느라 남편도 아주 힘겨운 시간을 보냈답니다..

돌아오니 그래도 청소는 하고 살았는데 먹는 것은 아주 엉망인 듯한 모습을 보면서

왜 저는 기쁨을 느꼈을까요?

그래...허접한 엄마라도 엄마가 있어야 돼...ㅋㅋ

 

"엄마....엄마가 돌아오니까 이제 집이 썰렁하지 않아..

아주 환해졌어..정말 좋아...."

 

아무데도 안갔는데 갔다온 사람보다 더 까만 우리 아들 은창이의 말이었습니다^^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