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창이방] 나는 늙어가고 너는 강해져 가는구나(2007년3월) 2007-03-09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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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창이가 어느새 초등3학년 형아가 되었습니다.

날로날로 새록새록 크는 모습에 어떤 날을 깜짝 놀라기도 하는 나날입니다.

 

5교시인 월요일 오늘...

2시면 오는 집엘 4시가 다 되어도 오질 않습니다.

친한 친구들 집에 전화를 넣어 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은송이를 집에 남겨두고 때 아닌 3월의 눈보라 속을 헤치며 학교로 향했습니다.

날씨가 안좋아서인지 평소에는 고만고만한 녀석들로 북적일 학교길이

썰렁하고 을씨년스럽더군요..

훌러덩 벗겨지는 털모자를 눌러쓰고 가는데 불현듯 안좋은 생각이 들자

가슴이 콩닥콩닥...쿵쿵쿵....

학교까지 가는 10여분의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요.

오르막 계단을 오를 때는 그야말로 모진 눈바람에 앞이 분간되지 않더군요..

학교에 올라와서 본 오른쪽에 펼쳐진 장면...

그 눈보라 속에서 고학년 형아들과 함께 펄펄 날며 축구를 하고 있는 은창이를 발견했을 때...

그야말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부르지도 않고 서있는데 처음에는 몰라보던 녀석이 어느 순간 저를 발견하고 주춤거리더군요..

바로 오지 않아서 저도 그냥 멀리서 쳐다보고 있는데 그제야 달려옵니다...

그리고 제 코 앞에서 큰눈을 부릅뜨고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주먹까지 쥐고는 말합니다.

 

" 저...그냥 논 거 아니에요....장래희망을 이루기 위해 연습한 거예요.."

 

녀석의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결연한 모습이라니...

 

2학년 말이 되어 연락도 없이 노는데 정신이 팔려...종종 늦는 일이 있었고

일하는 엄마의 걱정과 안타까움에 엄하게 혼도 내고 종아리를 때리기도 했었습니다..

라디오 스타를 보며 울고

샬롯의 거미줄을 보고 또 우는 그런 여린 녀석이

엄마한테 뻔히 혼날 것을 알면서 번번히 운동장을 누비는 것을 볼 때

참 어이가 없었습니다..

남편과 친구는 그게 아이답고 건강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엄마인 입장은 또 그게 아니더군요...^^;;

 

그런데 오늘 녀석의 모습을 보고 한시름 놓았습니다.

사실은 놀았지만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녀석을 보면서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발레소년 빌리가 생각났어요..

그토록 발레를 반대하는 아빠 앞에서 몰래 발레로 노는 것을 발각되었을 때

소년 빌리는 도망가지 않고 그 두려움과 결연함이 범벅된 모습으로

춤을 보였습니다..

빌리의 떨리는 눈빛에 묻어있는 두려움과 용기...

그 영화의 백미였어요...

그런 모습을 오늘 아들 녀석을 통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열두번도 넘게 함께 본 빌리 형아의 영향이 끼친 탓일 수도 있겠지요..

저 역시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야...은창아, 빌리 좀 봐...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그런데 또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저렇게 춤을 출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엄마를 향해 축구선수가 되기 위한 연습이라고 말하는 녀석에게

무슨 말을 하겠어요...

 

"은창아...엄마는 정말 걱정 많이 했다..."

 

눈보라와 함께 날리는 제 눈물에 은창이가 울컥 하면서 하는 말...

 

"엄마...저 강해요...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멋지구리한 영화의 한 장면 찍고 돌아와서는

오늘 두 시간 구멍 나서 태권도 못간 것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수요일, 토요일 한 시간씩 하는 컴퓨터 게임 시간을 자진 반납을 하더군요.

그리고 축구할 수 있는 날을 위해 태권도를 주3일만 가고

화요일, 토요일과 주일 오후 중 시간을 내어 축구를 하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영화 보고, 책 보고 울기 잘하는 은창이지만...

10살 형아의 모습 속에 강하고 단단함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엄마는 몸과 마음이 늙어가는데 아이는 몸과 마음이 강해져 갑니다..

이게 인생인 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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