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선생님 편히 잠드소서..20070526 2007-05-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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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선생님이 어제 별세 하셨습니다.

향년 97세.

장수하셨지요.

허나...제게는 눈물이 아른아른 거립니다..

독서선생하면서 마음의 큰스승으로 섬기던 이오덕 선생님이 가셨을 적에도

차마 나오지 않던 눈물이었습니다.

그래요..

책이 귀하던 내 어린 시절..

이오덕 선생님도 몰랐고

권정생 선생님도 몰랐지만..

피천득 선생님의 그 주옥같은 수필들을 접하면서

소설도 아닌 것...

시도 아닌 것이 이토록 아름답고 힘이 세구나 느끼면서

막연히 그러나 참으로 당차게 수필가가 되겠노라 선언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필에서 만난 다정한 아버지로서의 선생님 모습이 미래의 남편상을 꿈꾸게 했고

어려서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런 어머니가 되고프게 했습니다..

 

영문학자인 그의 집에는 오고가는 사람들이 필요해서 준 덕분에 책이 별로 없다는 말에

책욕심에 겨운 자신이 참 부끄러웠던 기억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잠깐 만나건, 깊이 만나건

그 사람이 내게 작은 파문이 되어 마음에 남겨질 때

어김없이 나는 선생님의 수필집 '인연'을 선물하곤 했습니다.

지금도 내 책장에 두어권 미리 준비된 책입니다....

 

이오덕 선생님이 하늘로 가셨을 때...엉뚱하게도 저는..

아...피천득 선생님 살아 생전 꼭 한번은 뵙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는데

눈꼽 낀 모습으로 신문 일면에 난 별세 소식을 접했습니다.

허망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군요...

 

선생님이 그토록 예찬한 오월에 가셨으니...편히 잠드시길 기도합니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여 있는 비취 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한 살이 나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精痛苦

失了愛精痛苦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을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연한 녹색은 나날이 번져 가고 있다.

어느덧 짙어지고 말 것이다.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우거지리라.

그리고 태양은 정열을 퍼붓기 시작할 것이다.

밝고 맑고 순결한 오월은 지금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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