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선생님을 그리며...20070526 2007-05-26 22:53
1564
http://www.suksuk.co.kr/momboard/BFA_044/27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네이버밴드 페이스북 트위터
쑥쑥닷컴 - 파일 다운로드

파일을 다운로드 합니다.

댓글 남기기
 

사실 그 유명한 '인연'보다 처음 읽었던 때부터 그 아릿한 아픔이 가시지 않는 글은

'엄마'입니다.

 

처음 '엄마'를 읽었을 때는 선생님의 마음이 되어 푹 빠지더니...

이제 진짜 엄마가 되어서는 '엄마'의 마음을 읽게 되어 훌쩍훌쩍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하늘 가는 그 순간까지 맑고 단아하게 사셨던 선생님...

이제는 엄마 곁에서 행복하셔요~~!!


 

 

 

 

엄마

 

 

 

피천득

 

 

 

 

마당으로 뛰어내려와 안고 들어갈 텐데 웬일인지 엄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또 숨었구나!' 방문을 열어 봐도 엄마가 없었다. '옳지 그럼 다락에 있지.' 발판을 갖다 놓고 다락문을 열었으나 엄마는 거기도 없었다. 건넌방까지 가 봐도 없었을 때에는 앞이 아니 보였다. 울음 섞인 목소리는 몇 번이나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마루에서 재각대는 시계 소리밖에는 아무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주춧돌 위에 앉아서 정말 엄마 없는 아이같이 울었다. 그러다가 신발을 벗어서 안고 벽장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날 유치원에서 몰래 빠져나왔었다. 순이한테 끌려다니다가 처음으로 혼자 큰 한길을 걷는 것이 어떻게나 기뻤는지 몰랐었다. 금시에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잡화상 유리창도 들여다보고, 약 파는 사람 연설하는 것도 듣고, 아이들 싸움하는 것 구경하고 그러느라고 좀 늦게야 온 듯하다. 자다가 눈을 떠 보니 캄캄하였다. 나는 엄마를 부르면서 벽장문을 발길로 찼다.

 

  엄마는 달려들어 나를 끌어안았다. 그때 엄마의 가슴이 왜 그렇게 뛰었는지 엄마의 팔이 왜 그렇게 떨렸는지 나는 몰랐었다.

 

  "너를 잃은 줄 알고 엄마는 미친년 모양으로 돌아다녔다. 너는 왜 그리 엄마를 성화 먹이니. 어쩌자고 너 혼자 온단 말이냐. 그리고 숨기까지 하니. 너 하나 믿고 살아가는데, 엄마는 아무래도 달아나야 되겠다." 나들이 간 줄 알았던 엄마는 나를 찾으러 나갔던 것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그저 울었다.

 

  그 후 어떤 날 밤에 자다가 깨어 보니 엄마는 아니 자고 앉아 무엇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엄마 옆에 앉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장롱에서 옷들을 꺼내더니 돌아가신 아빠 옷 한 벌에 엄마 옷 한 벌씩 짝을 맞춰 차곡차곡 집어넣고 내 옷은 따로 반닫이에 넣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슬펐지만 엄마 품에 안겨서 잠이 들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엄마는 아빠를 따라가고 말았다.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내가 타고난 영광이었다. 엄마는 우아하고 청초한 여성이었다. 그는 서화에 능하고 거문고는 도에 가까웠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는 나에게나 남에게나 거짓말한 일이 없고, 거만하거나 비겁하거나 몰인정한 적이 없었다. 내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요, 내가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그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한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비단이나 고운 색깔을 몸에 대신 일이 없었다. 분을 바르신 일도 없었다. 사람들이 자기보고 아름답다고 하면 엄마는 죽은 아빠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여름이면 모시, 겨울이면 옥양목, 그의 생활은 모시같이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같이 깨끗하고 차가웠다. 황진이처럼 멋있던 그는 죽은 남편을 위하여 기도와 고행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폭포같은 마음을 지닌 채 호수같이 살려고 애를 쓰다가 바다로 가고야 말았다.

 

  엄마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내 이름을 부른 것이었다. 나는 그 후 외지로 돌아다니느라고 엄마의 무덤까지 잃어버렸다. 다행이 그의 사진이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삼십 시대에 세상을 떠난 그는 언제나 젊고 아름답다. 내가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 온 것은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이요, 햇빛 속에 웃는 나의 미소는 엄마 한테서 배운 웃음이다. 나는 엄마 아들답지 않은 때가 많으나 그래도 엄마의 아들이다.

 

  나는 엄마 같은 애인이 갖고 싶었다. 엄마 같은 아내를 얻고 싶었다. 이제 와서는 서영이가 아빠의 엄마 같은 여성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의 간절한 희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엄마와 나는 숨기내기를 잘하였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를 금방 찾아냈다. 그런데 엄마는 오래오래 있어야 나를 찾아냈다. 나는 다락 속에 있는데, 엄마는 이 방 저 방 찾아다녔다. 다락을 열고 들여다보고서도 "여기에 없네"하고 그냥 가 버린다. 광에도 가 보고 장독 뒤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가. 하도 답답해서 소리를 내면 그제야 겨우 찾아냈다. 엄마가 왜 나를 금방 찾아내지 못하는지 나는 몰랐다.

 

  엄마와 나는 구슬치기도 하였다. 그렇게 착하던 엄마도 구슬치기를 할 때는 아주 떼쟁이였다. 그런데 내 구슬을 다 딴 뒤에는 그 구슬들을 내게 도로 주었다. 왜 그 구슬들을 내게 도로 주는지 나는 몰랐다.

 

  한번은 글방에서 몰래 도망왔다. 너무 이른 것 같아서 한길을 좀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왔다. 내 생각으로는 그만하면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자 엄마는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물었다. 어물어물했더니, 엄마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막 때린다. 나는 한나절이나 울다가 잠이 들었다. 자다 눈을 뜨니 엄마는 내 종아리를 만지면서 울고 있었다. 왜 엄마가 우는지 나는 몰랐다.

 

  나는 글방에 가기 전부터 '추상화'를 그렸다. 엄마는 그 그림에 틀을 만들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추상화가 없을 때라,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아마 우리 엄마가 좀 돌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엄마는 새로 지은 옷을 내게 입혀 보는 것을 참 기뻐하였다. 옷 입히는 동안 내가 몸을 가만두지 않는다고 야단이었다. 작년에 접어넣었던 것을 다 내어도 길이가 작다고 좋아하였다. 그런데 내 키가 지금도 작은 것은 참 미안한 일이다.

 

  밤이면 엄마는 나를 데리고 마당에 내려가 별 많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북두칠성을 찾아 북극성을 가르쳐 주었다. 은하수는 별들이 모인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나느 그때 그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행히 천문학자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그 후부터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엄마는 나에게 어린 왕자 이야기를 하여 주었다. 나는 왕자를 부러워하지 않았다. 전복을 입고 복건을 쓰고 다니던 내가 왕자 같다고 생각하여서가 아니라 왕자의 엄마인 황후보다 우리 엄마가 더 예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쁜 엄마가 나를 두고 달아날까 봐 나는 가끔 걱정스러웠다. 어떤 때는 엄마가 나의 정말 엄마가 아닌가 걱정스러운 때도 있었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달아나면 어쩌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때 엄마는 세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영영 가 버릴 것을 왜 세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는지 지금도 나는 알 수가 없다.


 

***********************************

 

미처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나

자료만 보고도 충분히 그려지는 모습들입니다^^

 

막내딸 서영씨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선생님은 서영씨가 시집가기 전날 하도 울어서..

다음날 도저히 식에 참석하지 못했다는 일화까지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물리학 교수로 있는 서영씨가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싶습니다...

 

 

[서영이와 난영이] 일부

 

나는 아빠입니다. 지금은 늙은 아빠입니다.

엄마 노릇을 해 보지 못한 것이 언제나 서운합니다.

그리고 엄마들을 부러워합니다.

특히 젖먹이 아기를 가진 젊고 예쁜 엄마들이 부럽습니다....

 

내가 우리 딸에게 사다 준 인형이 있습니다.

돌을 바라다보는 아기만한 인형입니다.

눈이 파랗고 머리는 금빛입니다. 소위 '블론드'입니다.

얼굴은 둥근 편, 눈이 그다지 크지 않아 약간 동양적인 데가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웃는 낯입니다. ....

 

난영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살  테니까 한국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한국에서 사는 개들에게 서양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참 이상한 일입니다.

우리 집 개들은 갑돌이와 갑순이입니다.

동생이 없는 우리 서영이가 난영이를 처음 안을 때의 광경을

영리한 엄마들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서영이는 초등학교를, 중고등학교를, 그리고 대학을, 그리고 시집갈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난영이를 두고 떠났습니다.

그것도 난영이 고향인 바로 뉴욕입니다.

난영이는 언니 따라 자기 고향에 얼마나 가고 싶었겠습니까.

 

서영이를 떠나 보내고 마음을 잡을 수 없는 나는

난영이를 보살펴 주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낯을 씻겨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목욕을 시키고

머리에 빗질도 하여 줍니다.

여름이면 엷은 옷, 겨울이면 털옷을 갈아입혀 줍니다.

데리고 놀지는 아니하지만, 음악은 들려줍니다.

여름이면 일찍 재웁니다.

어쩌다 내가 늦게까지 무엇을 하느라고 난영이를 재우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난영이가  앉은 채로 뜬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는 참 미안합니다.

내 곁에서 자는 것을 가끔 들여다봅니다.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난영이 얼굴에는 아무 불안이 없습니다.

자는 것을 바라보면 내 마음도 평화로워집니다.

젊은 엄마들이 부러운 나는 난영이 엄마 노릇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MBC의 한 특집프로그램에

피천득 선생님이 나오셨다.

선생님 댁에 김제동과 김지영 아나운서가 찾아갔었는데,

집안에는 곰인형들과 안대가 여러개 있었다.

김제동이 안대를 들어 보이면서 선생님께 여쭈었다.

 

김제동 : "선생님~! 이 안대는 뭐하는데 쓰시길래 이렇게 많나요?"

피천득 : "곰인형들은 눈을 감을수가 없으니깐 밤에는 잘수있게

꼭 안대를 채워 줘야 돼요..."

김지영 : 어머~~ 선생님 너무 소년같으세요~~


그리고 피천득 선생님께서 재직했었던 서울대에 방문해서

마지막 강의를 했다.

한 교수가 질문을 했다.


"인생에서 사시면서 가장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피천득 선생님은 대답하셨다.


"모든 걸 버려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는

그 자신에 대한 자존감,

물질은 포기해도 나는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일세."


반포에 위치한 이 구순의 노수필가의 집에는

이웃에서 소란스러울까 염려하는 마음에

벽에 걸리지 못하고 바닥에 놓여저 있는 액자들이

여러개 있다고 한다.


평생은 영문학자로, 시인으로, 수필가로 살아오시며

92세라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동화책을 새로 발간하시는 모습은

꺾여가는 20대라고 떠들던 나에게

영롱한 충격을 던져주었다.


잘못걸려온 전화에도

세상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는

피천득 선생님.


 

네이버에서 검색한 내용임.
 


마이 페이지 > 스크랩북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글에 감사 댓글 남겨주세요.

     
로그인 후 덧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