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산산이 부서진 땅, 과테말라를 탈출한 소년과 여동생이
작은 카유코(카약)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는 23일간의 놀랍고도 감동적인 이야기
오랜 내전으로 평화가 산산이 부서진 땅, 과테말라. 주인공이 사는 작은 인디오 마을 도스비아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티아고는 한밤중에 닥친 군인들이 온 마을을 불태우고 가족과 이웃들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마을에서 살아남은 건 열두 살 소년과 네 살짜리 여동생 안젤리나뿐이다. 두 남매는 살기 위해, 살아서 이 ‘붉은 밤’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탈출한다. 이 이야기는 어린 남매가 작은 카유코(카약)에 의지해 유카탄해협을 건너는 23일간의 표류기다.
붉은 밤을 날아서 희망의 땅으로 가는 작은 카유코
이 이야기는 《나무소녀》에 이어 과테말라 내전을 배경으로 한 벤 마이켈슨의 작품이다. 작가는 중앙아메리카 지역을 여러 차례 답사하고 난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그런 까닭에 이야기는 사실적이고 묘사는 눈으로 보듯 생생하다. 모든 전쟁은 참혹하고 잔인하다. 하물며 하룻밤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아이들에게는 어떨까. 그 고통과 두려움의 깊이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듣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재미있고 따듯하다.
‘붉은 밤’을 뒤로하고 도망치던 날부터 오빠 산티아고는 어린 동생을 위해 놀이를 시작한다. 몰래 숨어든 트럭에서 노래 만들기, 달리는 차 연료통에 말똥 집어넣고 뛰어내리기, 바다에서 나비 찾기, 나뭇잎으로 모자 만들기, 돌고래와 인사하기…… 이 모든 게 다 ‘살아남기 놀이’의 일부다. 산티아고 남매를 보면 자연스레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귀도(로베르토 베니니 분)와 조슈아가 떠오른다. 독일의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간 아버지와 아들. 귀도는 수용소에 도착하면서부터 조슈아에게 자신들은 특별히 뽑힌 사람이며 이제부터 신나는 놀이를 하는 거라고 속인다.
물론 안젤리나는 안다. 엄마, 아빠, 두 오빠와 언니 그리고 할아버지와 삼촌까지 모두 다시는 볼 수 없음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것을……. 오빠 산티아고가 소리를 내지 않도록 자신의 입을 막았지만 두 눈과 귀까지 가려 주지는 못했으므로. 그렇게 산티아고는 여동생을 위해 ‘살아남기 놀이’를 시작하고 안젤리나도 제 분신인 인형을 돌보면서 슬픔을 놀이로 치환한다. 망망대해에서 작은 카유코를 타고 배고픔과 잠, 외로움 그리고 폭풍에 맞서는 동안 산티아고는 서서히 지쳐 간다. 게다가 큰 부상을 입고 정신을 잃는다. 그런 소년을 돌보고 다시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것은 천진난만하고 귀여운 아가씨, 안젤리나다. 마야인의 후예로 자연에 순응하며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지혜를 배우며 자라서일까. 안젤리나는 어리고 여린 여자아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강인한 모습을 보여 준다. 둘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희망의 땅에 가까워져 간다.
전쟁과 평화, 책임과 연대를 이해하는 디딤돌, 《붉은 밤을 날아서》
하지만 작가의 메시지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평화와 반전을 말하고 붉은 밤을 경험한 아이들에게 위로와 관심을 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산티아고와 안젤리나가 마침내 도착한 평화의 땅, 미국. 앞서 작가의 말에서 보듯 미국 정부는 과테말라 내전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붉은 밤을 경험한 아이들 앞에 어떠한 변명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실수를 잊지 않고 어떤 이유로도 절대로 붉은 밤하늘을 보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전쟁은 지구 어느 편의 먼 나라 이야기, 뉴스에 나오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외면하는 청소년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안 듣고 안 보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할 수도 있겠다. 한편으로 나는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계의 ‘시민’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심을 가지고 톺아볼 일이다. 어쩌면 전쟁을 경험한 다른 나라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갖는 데도 상당한 용기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벤 아저씨가 들려주는 《붉은 밤을 날아서》가 그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