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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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eic Bridge 시험을 보다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제가 이번 학기에 듣는 과목 중 ‘영어능력평가’가 있습니다. 대부분 시험이란 형태를 통해 치루어지는 평가. 그것도 ‘영어능력평가’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정확한 평가의 기준이 성립될 것인가..등등에 관해 배우고 있는 중이지요.
교육과 평가는 어찌 보면 상호보완적이기도 하고,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의 교육현장을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교육이 평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현실이기 까지 합니다. 가장 큰 평가로는 대학수능, 또 그 수능을 위한 내신, 모의고사, 각종 경시대회 등등…. 그리고 수능보다 좀 더 궁극적이라 할 수 있는 입사시험, 승진을 위한 시험 등등… 그리고 교육일선에서의 모습은 모두 이 평가를 위한 것입니다. 중간고사도 좀 더 나은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위한 것이고, 수능모의고사는 말할 것도 없고, 가끔 있는 스피치 컨테스트나 과학경진대회 조차 입시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기 위한 경연장으로 여겨지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Toeic이나 토플 특강 같은 것도 모두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혹은 승진에 유리한 점수를 얻기 위한 학습이 되어 버렸지요.
네. 이렇게 보면 현재의 한국교육은 모두 이 ‘평가’에 초점이 맞춰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교육을 위한 평가가 아닌 평가를 위한 교육.
약간 얘기를 바꿔서… 어릴 때부터 유난히 극성(?)을 부리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엄마로 딱 이미지가 박혀버린 제게, 많은 분들이 질문을 합니다.
“아이에게 왜 영어를 일찍 가르치세요? 좋은 대학을 보내기 위해서?
유학을 보내려고? 이민가실 생각이 있으세요? 좋은 직장을 얻게 하려구요?”
글쎄요. 한 엄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또 낳고서 기르는 과정에서 ‘내 아이는 꼭 이런 이런 사람으로 키워야지.’라는 계획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세워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원래 되는대로 살아온 제게 있어서 아이의 대학진학이나 좋은 직장 같은 것은 별로 와 닿지 않는 얘기였습니다. 전형적인 소양인과 O 형의 특징을 보이는 인간이 되어 놔서, 그때 그때의 순간을 열정적으로 살면서 모든 것을 바치긴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실현시키는 능력은 별로 없거든요. 그냥 막연하게 이렇게 해야 하는데…이랬으면 좋겠네…정도 라고나 할까요.
재윤이나 혜윤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철 없기만 하던 제가 그나마도 엄마답게 뭔가 해줄 수 있고 또 해주고 싶었던 것이 영어였고, 그게 용케도 꾸준히 이어져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도 참 놀랍습니다. 한가지 시작하면 오래 가지 못하는 성격인데… 아이교육에 관해서만큼은 이렇게 유지를 해 왔다는 점이요. 하지만 아이와 영어를 함께 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면, 결코 계속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주었고, 그냥 그냥 그렇게 흘러오다 보니 초등학교라는 제도권 교육을 시작하게 되었고….
초등학생이 되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설렁설렁 노는 듯 공부하는 듯 해오던 영어학습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다는 거겠지요. 엄마가 읽어주던 그림책도 자신이 스스로 책을 선정해서 사달라고 하면서 읽게 되고, 영어만화 같은 것도 엄마가 별로 탐탁치 않아 하는 내용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혼자 찾아 보고, 학원에서도 집에서는 절대로 하지 않던 단어공부나 문법 공부 같은 것을 하고…
또 한가지, 영어수준만이 아니라 학교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시험에도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습니다. 그와 함께 저 역시 평가에 대한 욕심이 조금씩 생겼구요.^^;;
유아영어를 할 때에는 엄마와 대화가 자유롭게 되다가도 막상 외국인을 만나 얘기해보라고 하면 입을 꼭 다물고 얼어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된 평가도 힘들었고, 학습지 형식의 문제 풀기 같은 것도 접해본 적이 없으니 정확한 수준측정이 힘든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실제로 평가를 위한 교육을 해서도 안되는 시기였구요.
그리고 이런 말을 하면 웃으실지 모르겠지만, 전 학창시절 시험이 재미있었습니다. 시험을 치고 난 결과물 때문에, 혹은 그 결과를 준비하기 위해 괴로운 일이 생기더라도 시험을 치는 시간 자체는 즐겼다고나 할까요. 재윤이에게도 그런 기질이 보이는 것 같아 일단은 스탠포드 테스트부터 저질러보기로 했습니다.
스탠포드 테스트는 미국초등학생들의 수학능력을 테스트 하는 시험이라고 합니다. 작년부터 한국에 도입되어서 평가가 치뤄지고 있구요. 특이한 점은 미국 아이들의 평균점수와 비교, 백분율로 아이들의 수준을 나타내준다는 겁니다. (전부는 아니고 일부 분야에서만) 이 테스트는 수준을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재윤이는 작년 12월에 1-2 학년의 레벨로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일생을 계획성 없이 살아온 저인지라… 아이에게도 시험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도 없이 지내다가 그냥 일요일 아침 시험 당일날 아빠랑 아이 깨워서 일산의 시험장이 있는 학교로 간 게 전부였으니 얼떨떨한 상태에서 갑자기 교실에 덩그러니 놓여진 채 시험을 치게 된
재윤이를 보니 좀 많이 미안하더군요.
언뜻 기다리면서 밖에서 들어보니, 오우.. 리스닝 문제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듣는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리스닝에는 조금 자신이 있는 저조차도 확실하게 답을 얘기 못할 문제가 많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에 대한 요령도 사전지식도 없는 이 녀석, 그냥 모르는 문제는 손을 놓고 왔다고 합니다. 객.관.식.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정신없이 시험을 치고, 미국에서 채점을 한 답안지가 집으로 얼마 후 날아왔습니다. (1-2달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성적표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Total Reading, Language, spelling, listening 이렇게 네가지 영역이구요. 이중 Total Reading 과 Listening 쪽은 미국 아이들과 비교한 백분율 석차가 나와 있습니다.
리딩에선 총 130문제 중 127문제를 맞춰서 상위 1%에 포함된다고 나와 있구요. Language 에선 40문제 중 26문제를 맞췄지만 석차는 없습니다. Spelling 은 36문제 중 35를 맞췄지만 역시 석차가 없고, 리스닝은 총 40 문제 중 …음…재윤이가 공개하지 말라고 합니다.
-_-; 잘 한건 괜찮지만 못한건 안된다구요. 쩝. 죄송하지만 사진의 재윤이 스코어는 좀 지우겠습니다. (참고로, 평균보다 못나왔습니다..허허.)
리딩이 잘 나온 것은 기뻤지만, 리스닝 부분에선 아무리 연습이 없었고 열악한 환경이었다지만 좀 놀랍더군요. 사실 리스닝 능력은 어느 정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native speaker 아이들을 위한 테스트에서는 그 실력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겠지요.
그래서 다음 시험에는 제대로 준비해서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연습문제지도 사두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2회 시험 때는 일이 생겨서 못 갔네요. 어쨌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회의 매운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우물 안 개구리라는 느낌도 들고…. 어쨌든 더 분발해야지요.
그러고 나서 1년 이 지난 지금, 오늘은 Toeic Bridge 를 치고 왔습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초등학생을 위한 토익이 이상열풍이네 어쩌네 하는 얘기도 듣고 이곳 초등 게시판에서도 그런 글이 올라오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지만 실제로 서점에서 토익 브릿지 문제집을 보니 그다지 거부감을 가질만한 내용은 아니더군요. 더 이상 유치원생도 아닌 3학년인데, 이 정도라면 적당한 자극도 되고, 수준 측정도 되고 할 것 같아서 신청을 해두었던 거지요. 지난 번 스탠포드 때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 이번에는 그래도 준비를 좀 했습니다. 무려 시험 전날 모의 고사를 본 것입니다! 앞의 교재 내용은 하나도 안보고, 그냥 오디오와 시계 갔다 놓고 부부는 티비 보고 희희낙락 하면서 모의테스트를 치게 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빠는 괜히 참견해서 멀쩡히 맞는 문제 하나 틀리게 하고…ㅠ.ㅠ 네. 저희 집이 좀 산만합니다.
채점을 하다보니, 토익 브릿지와 스탠포드 테스트 사이에 차이가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리스닝 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던 스탠포드 테스트와 달리, 토익 브릿지의 리스닝은 너무 쉬워서 아이가 지겨워 할 정도라 만점이 나오더군요. 그에 비해 리딩 쪽은 틀린 문제도 몇 개 나왔구요.
자, 이제 연습도 해보았으니 실전을 치르러 갈 시간입니다. 일요일 아침 늦잠 자던 버릇 오늘은 뒤로 미루고, 온 가족이 고사장으로 갔습니다. 혜윤이는 덩달아 이 치열한 체험 삶의 현장을 느껴보라고 데려 갔지요.
;)
크…누가 처음 치는 시험 아니랄까봐 촌스럽게 고사장 앞에서 사진 찍었습니다.
수험자 명단을 보니 96년생은 재윤이 뿐이었습니다….그외 95년생과 94년생이 드문드문 보이구요. 이렇게 일찍 와 있는 아이들은 그나마 초등학생들이었고, 저 같은 극성엄마(?)들 몇몇이 걱정스러운지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좀 있다 열댓명 되어 보이는 중학생 형아 누나들이 우루루 몰려들어오니 아이들이 좀 기가 죽는 듯 하더군요. 척 보기에 한 반에 40명 정도되는 수험자들 중 중학생 반, 초등학생 (고학년 중심) 반으로 보였습니다. 헉. 이례적으로 78년생이 있길래 누군가 했더니 그 중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선생님이셨구요.
;)
그래도 기 죽지 않고 굿굿하게…수험표 들고 사진 한방 또 찍었습니다. 다른 사람들, 참 별나다 했을 겁니다.
학부모들은 모두 밖에서 기다리고, 아이들의 시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주의 사항을 듣는데 한 30분, 시험시간은 딱 1시간이었습니다. 현관문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수능이라도 치는 것 같은 느낌이…쿨럭.
시험을 마치고 나온 재윤이… 모의고사보다 조금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하답니다. 시험은 왜 치냐고 툴툴대던 녀석이지만, 성적표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역시 절 닮아서인가봅니다. 분명히 요 녀석, 시험을 즐기고 있는 겁니다. 허.허.허.
평가를 위한 교육인가, 교육을 위한 평가인가. 당연히 후자가 되어야 겠지요. 좋은 대학 보내자고 영어를 가르친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내 아이의 수준을 알아보고 싶다는 것은 솔직한 심정입니다. 180점 만점에 몇점을 받는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는 없겠지만 (토익 900점 맞는다고 영어에 능통한 것이 아니듯) 어느 정도는 사회적인 기준에 맞춰 능력측정을 해보고 싶었고, 토익 브릿지는 그런 엄마의 욕심에 의한 작은 시도였습니다.
한달후 성적이 나오면, 재윤이와 저는 재미있어 할까요, 아니면 더 욕심을 부리게 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