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흥미가 없는 아이 2012-01-1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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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어린 시절이 대부분 그러하듯 집안에 어린이용 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유일한 어린이용 전집은 50권짜리 어린이용 위인전이었습니다.

누런 갱지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혀있던 책이었지만, 저는 이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었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되어서는 친구네 집에 책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들어가니 도서관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어 학교 도서관도 많이 이용했고,

학교앞 서점은 제가 한 구석에 자리잡고 앉아 책읽는 곳이었어요.

 

사정이 이렇다보니 큰애를 낳자마자 독서교육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큰애는 저를 많이 닮아서 그런지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더니

휴식시간에 책을 즐겨보는 아이로 자라주었습니다.

다만 남자아이다보니 주로 만화책을 많이 보고,

자기가 좋아하는 특정 분야의 책만 한정해서 읽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 아이의 일상에 독서가 일부가 되었으니 만족스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둘째(7세)입니다.

이 녀석이 16개월쯤 된 어느날,

저랑 형이랑 둘이 정답게 책을 읽고 있는 소파로 다가오더니

읽고있던 책을 뺏어 바닥에 던져버렸습니다!

이때부터 둘째에게 책이란 자기와 엄마 사이를 갈라놓는 흉물(?)이 되어버렸죠!

 

하지만 형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둘째의 본능 덕분에

이 녀석도 책에 다소 관심을 갖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형처럼 뭔가 몰입하는 스타일이 아니다보니

책을 봐도 첫장부터 끝장까지 쭈욱~ 스토리를 따라가는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이 나오는 대목만 펼치고

끝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 나름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군요!

처음엔 이 녀석의 독서 스타일에 영 적응이 안되었습니다.

'왜 얘는 책만 펴면 엉뚱한 소리만 하는 것일까?'

 

게다가 첫째는 다소 긴 책을 읽어줘도 머리속에서 상상하며 이야기 흐름을 잘 따라오는데

둘째는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져도 금새 집중력이 흐트러지며 재미없다고 하니 좀 답답했습니다.

둘째라서 너무 책을 안읽어줘서 그런가 싶어 둘째에게도 장편 동화(300쪽)를 한달에 걸쳐 읽어주었습니다.

하지만 일일드라마를 보듯 흥미를 갖고 장편동화를 듣던 첫째와 달리 다소 지루하게 의무적으로 책을 듣더군요. 그래서 다시 짧은 그림책 읽어주기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둘째와 어떻게 책읽기를 해야할지 약간 가닥을 잡았습니다!

 

둘째는 평소 저랑 놀이하기를 좋아합니다.

배트맨 놀이, CCTV 놀이, 미장원 놀이, 세탁소 놀이, 영화관 놀이 등

다양한 주제로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마치 연극을 하듯 둘이 놉니다.

그리고 잠자리에서는 자신이 주인공이 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합니다.

 

이 녀석은 수동적으로 책 내용을 듣는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기가 등장인물이 되어서 이야기속에 참여해서

그 이야기를 책 내용과 다르게 이끌어가는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일단 책을 한번 읽어준 다음,

두번째 읽을때는 녀석을 등장인물로 넣어주어

저랑 마치 연극을 하듯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다르게 만들어갑니다.

 

실제로 며칠전 Dragon gets by 란 책을 읽어줬는데,

녀석이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내가 드래곤한테 그문은 밖으로 나가는 문이 아니라 옷장문이야 하고 말하면?"

"그럼 드래곤이 고맙다고 말해."

"엄마, 내가 드래곤한테 그 마루는 원래 흙이라서 더러운거야 하고 말하면?"

"그럼 드래곤이 그렇구나 하고 더이상 빗질을 안해."

 

The big hungry bear 를 읽어줄때

bear 대신 녀석의 <이름+monster> 라고 읽어주니

아주 좋아서 죽으려 들더군요.

그러면서 자신이 적극적으로 이야기 안에 들어가서

책 내용과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다른 결말로 이끌어가는 겁니다!

 

우리는 대개 아이가 책에 관심이 없으면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접근하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더라구요.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보여주면 대개 흥미를 갖기는 하지만,

그 밖의 주제를 다룬 책들은 여전히 낯설어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이가 어떤 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살펴본후

그 고리를 책읽기와 연결시킬때 비로소 아이한테 책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다가오는것 같습니다.

 

둘째는 사실 책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더 관심이 많고,

사람들 사이의 감정의 교류나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것도 좋아합니다.

버튼이 많은 기계나 복잡한 파이프 구조물, 그리고 악기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다보니 책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따분한것이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자기가 적극적으로 이야기속에 참여해서 이야기를 바꾸어나가기 시작하자,

그때부터 아이는 책읽기가 놀이의 연장이요, 유의미한 활동이 되었던 것이죠!

 

아이들이 커갈수록 엄마의 노력보다는 타고난 성향이 더 중요하다는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엄마의 역할은 아이가 부족해 보이는 자질을 억지로 보충해줄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미 태어나며 가지고 온 좋은 자질들을 발굴해서 꽃피울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큰애는 태권도를 하고 오면 얼굴이 밝아지고, 작은애는 피아노를 치고 오면 얼굴이 밝아져요.

이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잘 기억하며,

자기안에 있는 에너지의 불씨를 잘 살려주도록 지켜주는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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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벳 2012-01-13 21:43 

개구쟁이맘님 잘 지내시지요?^^*

CCTV놀이 어떻게 하는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칼럼글이 게시판에 자동으로 올라가지던데...이번에는 게시판에 안보여서 그냥 못읽고 넘어갈 뻔 했습니다.

아이의 안에 있는 불씨를 살려주고 지켜주는 엄마가 저도 되고 싶어요~^^*

두 왕자님들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반가워요~

추운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개구쟁이맘 2012-01-16 12:00:27
네~ 언니, 반갑습니다. ^^
우리 예쁜 ##는 카톡 사진으로 잘 보고 있어요. (공주 ##)
이번글은 유아에 어울리는것 같아 유아게시판에 따로 올렸어요.
언니야말로 영특한 딸내미한테 큰 욕심 부리지않고 잘 이끌어주시쟎아요!
늘 겸손한 모습이라서 저에게도 많은 귀감이 됩니다.
언니도 올 해 건강하시고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CTV 놀이는 별거 없어요.
엄마 졸업장 여러개를 티비옆에 세워놓고 그게 CCTV 라 하며
경찰이 출동하는 놀이에요.
호기심쟁이맘 2012-01-12 10:42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보여주면 흥미를 갖지만 그밖의 주제를 다룬 책들은 낯설어 하더라"는 말이 꼭 제 아이를 두고 하는 말 같아요.

제 아이는 이제 막 여섯 살이 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책만 읽어요.

다른 책을 넣어주려고 하면 엄마가 아이의 흥미를 끌만큼 재미있게 읽어줘야 혹~하고 관심을 둡니다.

그리고 그 책이 재미있으면 또 그 책만 반복해서 계속 읽어달라고 합니다.

스토리가 재미있어야 좋아하는 우리 아이를 다양한 분야의 책으로 관심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아직도 창작만 읽고 있어요....

개구쟁이맘 2012-01-12 11:07:35
창작을 좋아하면 글밥을 쫙쫙 늘려서 읽어줘보세요.
이제 겨우 6세니까, 50쪽 정도 저학년 문고판으로 시작해서
아이가 스토리를 잘 따라오는 느낌이 들면
100쪽, 200쪽 장편 동화들을 꾸준하게 읽어주세요.
(저도 작년 가을에 300쪽짜리 오즈의 마법사를 1달에 걸쳐 잠자리동화로 읽어줬어요)

창작 좋아하는 애들은 논픽션쪽은 또 잘 안봐요.
이럴때는 체험활동과 연계지어서 책을 보여주시면 좋아요.
이순신 박물관을 다녀오면 이순신과 거북선 관련 책을,
민속 박물관 가서 농기구나 전통 혼례등을 보고오면 그런 관련책을,
과학관에 가서 천체관이나 로봇, 우주 보고 오면 그런 책을.
아이가 자기한테 의미있게 다가와야 관련책도 보더라구요.
그러니 엄마가 시험스케쥴 관리하듯 억지로 읽으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면 순한 애들은 엄마 말대로 따라가긴 하지만,
길게 보면 책에 대해 흥미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아요.

저희 큰애(10세)도 심하게 창작과 만화책을 좋아해서
권장도서를 거의 못읽혔어요.
하지만 300쪽짜리 책을 혼자 읽으며 즐기니(독해력이 좋다는 의미죠)
괜챦다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것은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하는겁니다!
그러려면 억지로 의무적으로 보게 하지 마시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책이 재밌어서 볼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근데 그렇게 하려면 엄마가 욕심을 많이 버리고 아이를 잘 관찰하셔야 합니다.
호기심쟁이맘 2012-01-13 14:01:47
이렇게 좋은 답글을 남겨 주시다니 너~무 감사합니다.
방법을 몰라 헤맸는데 좋은 정보를 주셨네요.
올해는 체험 위주로 많이 다녀야겠어요.
민이맘 2012-01-11 14:26 

타고난 정신의 결이 다른것에 정말 동감해요...

지식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도 그런 성향을 타고난 것 같구요...

민이는 창작책에 흥미를 못느껴서 요즘은 제가 코믹에 가까운 얇은 책들을 골라주고 있어요..

감정라인을 못느끼면 유머라도 느껴라 싶어서요...

아이들 타고난대로 키우게 되는것 같아요...

바꿀려고 하는것 힘들죠

개구쟁이맘 2012-01-11 16:03:59
고집 센 아들 키우는 엄마들은
일찌감치 포기를 배우게 되죠.
어찌보면 이런게 아이 입장에서 좋은것일수도 있어요.
-엄마로서 뭔가 장악한다는 만족감은 떨어지지만.

그래도 민이맘님은 공주님이 있쟎아요!!
우리 빈이 많이 컸죠?
벼르시던대로 영어책 읽어주고 계시남요?? 궁금..
홍박샘 2012-01-11 14:18 

이제 완전히 독서전문가 다 되셨네. ㅋㅋ

전문용어로 QAR (Question - Answer Relationship)이 라고 해서

다양한 유형의 질문을 교사가 던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reader가 질문을 하게 만듭니다.

유형이 4가지인데 그 중 준수가 던지는 질문들 처럼

텍스트에만 의존하지 않고 텍스트에서 clue를 가져다

상상력을 동원해 질문을 만들게 하는 것도 아주 흥미로운 독서법이어요.

개구쟁이맘 2012-01-11 16:02:16
ㅋㅋ 실은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왠지 홍박사님께서 전문용어 붙여주실것 같았어요. ^^

아이한테 질문을 만들게 유도하는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상상력을 동원해서 질문을 합니다.
사실, 책 읽어줄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무지하게 질문을 많이 합니다.
호기심이 보통 아이들의 10배쯤 되는듯.
-제가 귀챦아서 적당히 대답하면
남편이 A4 5장 분량으로 성의있게 대답하라고 타박합니다. ㅋㅋ
유 니 2012-01-10 20:13 

많이 공감가는 내용이에요.

큰 아이는 엄마와 오롯이 책 읽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둘째 이하의 동생들은 상대적으로 첫째가 엄마와 나눴던 책 읽기 시간만큼 풍족하고 다채롭지 못한 게 동생들의 비애인 것 같습니다.

둘째는 형이 자기와 안놀고 책 보면 아직도 형을 위협(?)합니다.

헌데 둘째 역시 형만큼은 아니지만 책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더군요.

저와 첫째는 도란 얘기나누며 읽는 걸 좋아하지만 둘째는 온전히 본문에만 집중해서 읽어줘야 한답니다.

정말 각인각색이죠.

피아노 치는 둘째 너무 낭만적이에요. ^^ 제 이상형이 저를 위해 피아노 치는 남자인데..저희 집 아저씨.. 예중,고 출신의 누이를 둬서 피 소리만 나도 진저리를 칩니다.^^;

 

개구쟁이맘 2012-01-11 13:50:40
어머! 제 시누이도 음대(피아노과) 출신이에요!
근데 남편은 피아노도 꽤 잘 치고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둘째가 아빠를 많이 닮아서 음감이 있고 음악과 친숙해요.
하지만 절 닮은 첫째는 음악과 담을 쌓고 살죠. ㅎㅎ

사람마다 타고난 정신의 결이 다르니까
당연히 독서 스타일도 다른거겠죠!
두 아드님 모두 책이 주는 즐거움을 누린다니 참 좋으시겠어요.
책을 매개로 해서 첫째와 도란 도란 이야기 나누시는 모습이
왠지 한폭의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네요! ^^
시은맘 2012-01-10 10:45 

저는 아직도 저의 바램대로 아이들을 보며 이끌어 가는 거 같네요....

 

개구쟁이맘 2012-01-11 13:46:22
저도 크게 다를바 없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워낙 말을 안들어서 하는수 없이 아이한테 맞춰가는 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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